결혼정보업체를 둘러싼 풍속도

2009.11.24 09:34:27 호수 0호

‘돈·명예·작업·섹스’ 모두 통한다!

남녀의 만남에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결혼정보업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일단 ‘회사 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검증이 확실하게 이뤄질 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 횟수 등도 모두 일일이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해준다. 물론 값비싼 회원 가입비용이 있기는 하지만 결혼만 확실하게 할 수 있다면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런데 이런 결혼정보회사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이른바 회원들의 등급을 구별해 놓는 ‘등급표’의 존재, 만남 자체를 ‘작업’으로 여기는 남성들이 순수해야 할 결혼시장의 ‘물’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이런 풍속도는 우리 사회의 황금만능주의와 이성을 ‘섹스파트너’만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결혼’과 ‘결혼정보’를 둘러싼 은밀한 내용을 집중 취재했다.

각 항목별로 철저하게 ‘점수화’ 회원들 관리 중
일부 업체들 회원 등급화에 ‘물질만능주의’ 비난


결혼정보업체는 우리사회의 결혼 풍속도를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그전에는 중매 혹은 소개로만 이어졌던 남녀의 만남을 체계화해 놓았고 그만큼 서로에게 맞는 상대를 최적의 방식으로 ‘매칭’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이 급한 사람들은 상당수 이 결혼정보업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등급으로 ‘인간’
구별하는 세상



그런데 일부 결혼정보업체들이 앞장서서 회원들을 등급화하고 있어 ‘물질만능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위한 과학적 매칭’이란 명분으로 각 회원들의 재산, 학력, 본인과 부모의 직업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등급을 나누고 있다.
때문에 ‘조건’에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 결혼의 기본적인 법칙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지나치게 세분화된 조건을 통해 철저하게 등급을 매기고 ‘물 관리’를 한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의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업체에선 이런 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대부분 결혼정보업체의 홍보 관계자들은 “그런 리스트는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작성하지도 않았고 작성할 이유조차 없다. 다만 서로가 원하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커플 매니저 스스로들이 알아서 할 뿐이며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치화해서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표현을 달리 한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실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리스트’는 이미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들은 각 항목별로 철저하게 ‘점수화’를 해놓고 있으며 이를 통해 회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학벌’의 경우 서울대를 나오면 25점, 연고대는 20점, 포항공대나 카이스트는 15점을 가산한다. 지방국립대나 서울 소재 대학은 10점 수준이다. 직업의 경우 판검사나 기업의 사장급은 30점, 변호사나 의사는 25점, 변리사, 회계사 등 전문직은 20점, 대기업 재직은 15점, 공무원이나 교직 종사자는 10점이다.

재산도 철저하게 구분해 놓았다. 본인연봉 5000만원에 부모님의 재산이 20억원 이상일 때는 20점, 본인연봉 4000만원에 부모재산 10억원 이상일 때는 15점이라는 식이다.
가장 가혹한 점수 중의 하나는 외모다. 이들 결혼정보 업체에선 ‘비고’란을 통해 ‘호감 가는 인상이 아니면 외모 점수 0점’이란 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장남인 경우일 때와 남자 나이 35세(여자 30세)가 넘어갈 경우에는 전체 점수에서 5점을 감하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총점이 65점이 되지 않으면 회원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실격’인 셈이다. 예를 들어 지방대를 나오고 비정규직에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20대의 여성은 아예 등록이 힘들다.
과연 이런 ‘등급화’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직장인 최모(33)씨는 “사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이미 ‘등급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학교, 직업, 재산 등에 있어 철저하게 구획된 등급이 있으며 또한 보다 높은 등급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 바로 ‘교육’이 아니었던가”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이어 “그런 점에서 비슷한 등급의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등급이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생각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사람들끼리는 결혼을 해도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자신의 등급을 인정하고 그 등급에 맞춰 생활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피력했다.

“우리 사회의 천박성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등급화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단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를 적극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 김모(29)씨는 “등급이란 것은 모든 것을 객관적인 것에 의해 평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주관적인 요소도 없다. 개인의 마음, 발전하고싶어하는 욕구, 미래에 대한 희망, 열정… 이 모든 가치들은 깡그리 무시된 채 오로지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만 사람을 평가하겠다는 것이 바로 ‘등급제’라고 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김씨는 이어 “물론 그런 등급화가 주는 플러스적인 요인도 있지만 ‘사랑과 믿음’이 결혼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봤을 때 천편일률적인 등급화는 오히려 이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만들고 정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인간등급표’는 꼭 결혼정보회사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실제 결혼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과 맞거나 혹은 더 높은 등급’의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총점 65점 안 되면 회원가입 자체 불가능
일부 남성, 여성을 ‘섹스파트너화’ 하기도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회사의 입장이란 것은 늘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많은 여성들은 남성의 직업을,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본다. 그런 상황에서 ‘고객만족’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사람을 연결시켜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그것은 업체들이 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객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들은 단지 그것을 회사적인 차원에서 시스템화할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높은 등급의 남성’을 만나려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일부에선 ‘은밀한 제안’도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름 아닌 일부 결혼정보회사 직원들이 의사 등의 전문직 남성들에게 접근해 ‘돈도 벌고 데이트도 하고 손해 볼 일 없지 않냐’라는 식으로 꼬드겨 여성들과의 맞선을 주선한다는 것.

이른바 ‘VIP남성’들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지 못한 업체들은 이런 편법을 통해서라도 여성들에게 전문직 남성을 소개시켜 줌으로서 회사의 위상을 올리고 홍보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가는 은밀한 제안
다른 목적이 있다?

문제는 일부 남성들의 경우 이런 결혼정보회사를 ‘다른 목적’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결혼 상대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위한 데이트를 ‘작업’으로 이용한다는 것. 이들 남성은 대부분 30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층들로서 안정적으로 여성과의 만남을 제공받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특히 매너와 경제적인 여유를 동시에 갖추고 있기에 여성들의 마음을 뺏는 것에 매우 능수능란하고 자연스럽게 잠자리까지 하게 되면서 상대 여성을 ‘섹스 파트너화’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각 개인들 간의 애정문제에 대해선 결혼정보업체도 더 이상 간섭을 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이들 ‘작업 남성’들의 작업 전선에는 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일부 업체들에선 이 같은 남성들에 대해 별도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일단 한번 가입을 하게 되면 최소 20명에서 30명의 여성을 만날 수 있다. 솔직히 ‘부킹’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는 투자비용 최대의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그냥 길가다가 만나는 여성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검증을 받은 여성이라는 점이 더욱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관계자는 이어 “그러나 일부 바람기가 있는 플레이보이들은 아예 회원으로 등록한 후 안정적으로 여성에게 작업을 한다. 사실 우리 회사의 입장에선 물을 흐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못해서 인터넷에 ‘회사에서 소개시켜 줬는데 알고 보니 바람둥이였다’라는 글이 뜨기라도 한다면 결국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사실 결혼정보회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풍속도는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외모와 돈, 섹스와 ‘작업’이란 가장 자극적인 요소들이 결혼이라는 것에도 여지없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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