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흔적 지워지는 ‘청량리588’ <현장르포>

2009.11.24 09:29:41 호수 0호

7080의 아련한 향수 “이젠 안녕”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625번지 일대. 이곳은 일명 ‘청량리 588’로 불렸던 곳으로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집결지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 거리에 붉은 조명은 더 이상 없다. 철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은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철거된 지역은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완공 예정은 내년 8월로 도로 확장 공사가 내년 봄 완료되면 이 일대 지도가 바뀐다.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청량리588’의 변신 현장을 찾았다.

“청량리 588? ‘청량리 588’은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전농동 굴다리까지 이어지는 2차로(폭 25m)를 따라 늘어선 건물 78동에 밀집해 있던 성매매집결지를 가리키는 거야.”
지난 11월18일 오후 2시쯤 한창 철거되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한모(53)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일부 철거작업이 진행됐고 이곳을 가로지르는 2차로를 8차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아직 일부업소는 영업 중”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제법 매서웠다. 간간히 불어 닥치는 찬바람이 행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었다.
동네 주민 강모(56·여)씨는 “철거가 많이 끝났어. 한 40동 정도 될 걸 아마. 나머지 동은 보상협상이 진행 중이야. 올해 말까지 보상합의가 끝난다지. 도로가 만들어지는데 좀 시원섭섭해”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곳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강씨도 아쉽다고 했다. 젊은 시절 아가씨들과 장사를 하면서 겪었던 사연도 숱하단다.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회상에 잠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답십리 굴다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 답십리 굴다리에서 청량리역으로 이동하려면 폭 8m의 2차선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역 주변의 왕산로와 답십리길은 늘 정체에 시달리고 있다. 이 도로는 폭 32m의 8차선으로 확장될 예정으로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588 일대 민자역사 접근 도로 확장으로 막바지 철거 한창
54층 빌딩 등 초고층 5동 건립…역사 옆 철도터엔 문화공원
 

철거된 현장도 눈에 들어왔다. 당초 도로 확장을 위해 철거해야 하는 철거대상 건물은 80여 개. 이 중 청량리 방향 도로 좌측 21개 건물의 철거가 끝났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지금은 도로 우측 건물 중 도로 편입 관련 보상이 끝난 건물들이 철거되고 있다고.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현재 답십리 굴다리에서 청량리역으로 이동하려면 비좁은 2차선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며 “역 주변의 왕산로와 답십리길도 늘 정체에 시달리는 등 주변도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 아직도 이곳에선 영업이 이뤄지고 있을까. 주민 주모(52)씨는 “일부 업소는 문을 열어놓고 있어. 하지만 개점휴업상태지. 업소가 85개 정도 될 거야. 일하는 사람은 대략 120여 명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 대부분 습관처럼 지내는 모습이지… 아직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 시작되면 종적을 찾기 힘들걸.”

또 다른 주민 장모(49)씨는 “이곳은 애환도 많고 사연도 많은 곳이야. 지금 생각하면 눈에 선하지. 술도 안 마시고 이야기도 없이 섹스만 가능해 한때 대한민국 청년들이 동정을 떼던 곳이기도 하지. 특히 군에 입대하려는 친구들이 거쳐 가야 할 곳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는데…”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옆에 있던 심모(47)씨는 “골목마다 넘쳐나던 아가씨들의 호객행위는 이제 찾아볼 수도 없어. 몇몇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단속이 심해서 더더욱 보기 힘들지. 하지만 집창촌이란 오명에도 이곳에 터전을 뒀던 사람들은 떠나기 싫어해. 추억과 사연이 잔뜩 담겨 있으니까”라고 아쉬워했다.

무너지는 ‘588’에 추억만…

기자는 이 일대의 청사진을 알아보기 위해 관할 구청으로 향했다. 그곳의 분위기는 자못 달랐다. 본격적인 공사가 임박하면서 생기가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가 완공되면 청량리역 주변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이 일대 재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동대문구청의 분석이다.

동대문구청 한 관계자는 “내년 봄 도로 확장이 끝나면 이 일대 지도가 상당히 바뀌고 청량리역 주변의 풍경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특히 이 일대는 앞으로 하루 유동인구가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런 변화에 따라 기존 ‘성매매 거리’로서의 이미지를 벗고 서울 동북부의 중심상권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청량리 주변 지역은 서울 동북부의 교통 요충지라는 특성을 살려 동대문구의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계획안에 따르면 호텔, 판매, 업무, 주거 등 복합 기능을 갖춘 54층 높이의 랜드마크 빌딩 1동을 비롯해 30∼44층짜리 건물 5동이 청량리역 주변에 건립될 계획이다. 또한 역사 옆 철도터 3만3000m²(약 1만 평)에는 문화공원과 녹지가, 지하화되는 경원선 구간에는 공원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노후한 청량리역사 역시 달라지고 있다. 민자를 유치해 연면적 18만m²(약 5만4000평), 지하 3층, 지상 9층 규모로 증축하고 있어서다. 현재 공정은 69% 정도 진행된 상태. 내년 8월 문을 열면 백화점, 영화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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