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분의약품 마구잡이 처방 의사들<천태만상>

2009.11.24 09:27:05 호수 0호

“어떤 게 필요해? “돈만 내! 다 처방해줄게”

최근 환각증세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마약류 의약품을 마구잡이로 처방해주는 의사들이 잇달아 붙잡혔다. 돈만 되면 어떤 약품의 처방전이라도 써 줄 태세다. 수면마취제로 쓰이는 프로포폴,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 등 종류도 다양한 의약품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의사들에 의해 환자들에게 건네졌다. 심지어 마약성분 약품을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 빠진 채 진료를 한 의사까지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마약 성분 함유된 의약품 대량으로 빼돌린 의사들 적발
제품 투약한 뒤 환각상태서 진료하는 ‘정신 나간’ 의사도


인천의 한 병원 입원실. 환자들이 깊은 잠을 자고 있다. 평온한 수면상태인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수면마취제를 맞고 환각에 빠진 상태다. 이들에게 불법으로 수면마취제를 놓아 준 이는 이 병원의 병원장 원모(40)씨. 수면내시경 등을 할 때나 쓰이는 프로포폴 등의 마취제를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투약해 준 것이다.



마약 먹고 ‘폭탄처방’ 남발

이런 방식으로 원씨가 수면마취제를 투약해준 환자는 80여 명. 약품에 중독된 이들이란 걸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위험천만한 약물을 제공한 것이다. 지난 6월 사망한 마이클 잭슨이 과다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약물이기도 한 프로포폴은 오남용 시 환각 등의 증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마약류 지정을 추진 중이다.

원씨는 이 약물을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불법투약하고 한 달에 1억95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영리 목적으로 환자에게 수면마취제를 불법투약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원씨와 원무부장 한모(31)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의사가 마약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를 ‘폭탄 처방’하고 자신도 이 약을 복용한 뒤 환각상태에서 환자들을 진료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부산의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모(37·여)씨는 2007년 3월부터 지난 8월까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 11만여 정을 대량으로 구입해 일부를 복용하고 나머지를 판매하거나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약을 복용해 오던 김씨는 이 약을 이용해 돈벌이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 후 지인들의 명의로 허위처방전을 발급해 한꺼번에 수많은 약을 구했다.

김씨가 무리 없이 많은 양의 수면제를 빼돌린 것에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동료 의사, 간호사, 약사, 제약회사 사원 등이 함께 범행을 하거나 묵인하는 방식으로 김씨의 범행에 가담했던 것.
이를 통해 짧은 기간 동안 11만 정이란 엄청난 양의 수면제를 빼돌린 김씨는 이 중 2만 정을 자신이 복용하고 나머지는 친인척이나 친구, 환자 등에게 나눠주거나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김씨는 환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진료를 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환각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마약성분을 중화하는 링거를 맞으며 진료를 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혐의로 김씨를 구속하고 허위 처방전인 줄 알면서도 수면제를 판매한 약사 3명과 처방전에 이름을 빌려준 전·현직 간호사 6명, 제약회사 직원 14명, 김씨의 친인척과 동료의사 등 6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달에는 다이어트를 원하는 이들을 노리고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남발한 의사도 덜미를 잡혔다. 대구의 한 정신과병원 의사 이모(50)씨는 약사 김모(41)씨 등과 공모해 다이어트 약을 마구잡이로 처방해줬다.
이들은 2001년부터 다이어트 처방을 해준다고 광고를 한 뒤 전화를 한 이들에게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허위로 작성해주고 택배로 약을 보내주는 수법으로 1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이들이 처방해 준 약은 마약 성분이 함유된 ‘펜터민’ 등 향정신성의약품으로 함부로 처방해줄 수 없는 약품이다.
특히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식욕억제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은 많은 의사들이 쉽게 처방해주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서는 향정신성 다이어트약품을 처방받는 데 별다른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으려는 사람이 약이 필요할 정도로 비만인지를 알아보는 최소한의 검사조차 생략한 채 형식적인 말 몇 마디로 처방전을 발급해 주는 병원이 부지기수라는 것.
최근 모 제약회사의 식욕억제제를 사기 위해 처방전을 발급받으러 간 이모(28·여)씨도 너무 간단한 처방전 발급절차에 놀랐다고 한다.

이씨는 얼마 전 동네에 있는 한 내과에 가 간호사에게 조심스레 “OOO 처방전 발급받으러 왔다”는 말을 건넸다.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약이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이라 왠지 쉽게 처방해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이씨의 생각은 빗나갔다. 의사는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죠?”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 있습니까?” 등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를 건네고 약의 부작용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한 뒤 진료를 끝냈다. 그리고 이씨는 1만2000원을 주고 처방전을 받아 나와 근처 약국에서 약을 샀다. 처방전을 구하고 약을 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쉽고 빠른 처방전 발급

이씨는 “생각보다 약을 손쉽게 구한 것에는 불만이 없지만 환자가 비만치료제 처방전을 구하러 왔으면 최소한 몸무게 정도는 재봐야 되는 것 아니냐”며 “더군다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인데 별다른 검사도 없이 아무에게나 처방해 주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돈에 눈이 먼 일부 의사들이 위험한 약품이란 걸 알면서도 처방전을 남발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인데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행하는 의사들이 늘어 위험약품의 오남용에 적신호가 켜질 위기”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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