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낳은 딸로 친자 확인 소송 패소한 이 장관 진퇴양난
판결 불복 즉각 항소했지만 도덕성 논란으로 자진사퇴 압박
막장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사건이 현직 장관에게 일어나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자신이 이 장관의 딸이라 주장하는 한 여인이 35년 만에 나타나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마저 그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의 사연은 세간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도덕성 논란과 함께 사퇴요구까지 불거지자 이 장관은 “20대 총각 시절에 있었던 부적절한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이 장관은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항소해 ‘친자 확인 소송’ 사건 결과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35년 만에 나타난 한 여인이 당신의 핏줄이라고 주장한다면? 누구라도 도덕적인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만한 혼외자녀 논란에 이만의 장관이 휘말렸다.
이 장관의 혼전 과거가 낱낱이 공개된 것은 지난 17일 <시사저널>을 통해서였다. 이날 <시사저널>은 서울가정법원의 판결내용을 보도했다.
“명백한 친딸” 판결
이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9월25일 미국 시민권자인 진모(56·여)씨의 외동딸 진은정(35)씨가 지난해 10월8일 이 장관을 상대로 제기했던 친자 확인 청구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은정씨)는 피고(이 장관)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라고 판결했다.
이 장관과 진씨가 인연을 맺은 것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1월 만난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다 1974년 11월 진씨는 아이를 가졌고 이 사실을 이듬해 3월에야 알게 됐다. 그 후 진씨는 이 장관에게 연락해 임신사실을 말했지만 이 장관에게 돌아온 대답은 ‘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고 알려졌다.
이 장관은 1975년 6월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고 한 달 뒤인 7월22일 진씨는 딸 은정씨를 낳았다. 그리고 진씨는 이 장관을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여곡절 끝에 진씨 모녀는 1984년 4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 장관과 모녀의 관계는 모두 청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은정씨가 인터넷을 통해 국회 청문회에 나온 이 장관의 모습을 본 뒤로 상황은 달라졌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딸이 아버지를 만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 진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 장관을 만났다.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장관은 진씨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숨겨진 딸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였다. 이에 진씨는 양육으로 인해 진 빚 중 일부를 갚아줄 것을 요구했고 두 사람의 합의는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약속한 날에 돈을 주지 않았고 지난해 10월8일 이 장관을 상대로 은정씨가 친자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두 모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가정법원은 은정씨가 이 장관의 친딸이 맞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모두 네 가지다. 먼저 이 장관과 진씨가 사귀는 동안 은정씨를 출산한 점이다. 두 번째는 이 장관이 진씨에빙자 간음죄로 고소를 당한 사실이 있다는 것. 세 번째는 이번 소송 과정에서 이 장관이 은정씨의 친딸 여부에 관해 다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재판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장관에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근거에 비춰 은정씨가 이 장관의 친딸임이 명백하단 판결이 나오자 이 장관은 지난 10월19일 항소해 법정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파문은 이 장관에 심각한 도덕적 흠집으로 남게 됐다.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이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전체회의에 참석해 “적절하지 못한 이슈로 심려를 끼쳐드려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20대 총각 시절에 있었던 부적절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 이찬열 의원이 해명 요구을 요구하자 이 장관은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인생의 가르침처럼 그 뒤로 철저히 자기관리를 함으로써 어느 공직자보다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말했다.
또 친자 확인 소송 패소에 대해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항소한 것”이라며 “잡지에 보도된 것처럼 결론 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관에 발탁되고 이 일이 나온 뒤 (원고 측이) 물질적으로 상당한 요구를 했다”며 “옳지 않은 일과 타협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원칙적으로 (재판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진사퇴 요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지난 18일 브리핑을 통해 “이만의 장관 사건은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에 자주 나왔던 소재”라면서 “대한민국의 가족윤리에서 보면 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물의를 빚게 된 과정이 참으로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이 장관은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도덕성에 흠집
여당의 사퇴요구도 이어졌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지난 19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이 장관의 자진사퇴를 주장했다.
진 의원은 “이 장관이 공직자가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 일이 불거지고 난 뒤 대처한 방식은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지는 쪽으로 결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러나야 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진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공직자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처신을 하는 게 맞다”며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친자 인정 여부는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판단하는 게 맞는데 검사를 거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장관이 되고 난 뒤엔 공인으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아닌 대로 떳떳하게 응하는 게 적절한 처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