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노환으로 별세하면서 유신시대 권력자들의 불행한 말로를 되새겼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한 세상을 풍미했던 정보기관장 대부분이 총탄을 맞거나 은둔생활을 하고 권력의 끝을 보냈기 때문이다.
1960년대 6년간 중정부장으로 재직했던 김형욱 전 부장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뒤 퇴임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유신정권을 비난하며 ‘반 박정희’ 행보를 보이다가 19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당시 김 전 부장에게 정권의 내밀한 비사를 전해들은 김경재 전 의원은 회고록 <김형욱 회고록 제5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에서 김 전 부장은 ‘천보산’으로 불리던 조용박이란 이중간첩에 의해 암살됐고,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 암살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후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말한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은 다음 날 새벽 국방부에서 체포됐다. 김 전 부장과 부하들은 이듬해 1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5월24일 형이 집행됐다.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차지철 전 경호실장은 10·26 현장에서 김재규 전 부장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경호원을 제외하고 이날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김계원 전 부장은 오랜 시간 은둔해왔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아들이 운영하는 중견 무역업체인 원효실업의 회장을 맡고 있다고 소개됐으나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