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여풍이 불고 있다.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전체 국회의원 중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대부분이 비례대표인 여성 의원들이지만 일당백의 역량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변인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장관, 유력 대권주자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뿐 아니라 원외에서도 여풍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정치의 달인’ 박근혜, 가만히 있어도 정치의 중심
이슈, 정책으로 무장, 국감 후 정치권도 접수할까
정가 여전사들이 속속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며 여의도를 진동시키고 있다. 독한 프로근성과 강단있는 뚝심, 여성 특유의 예리함과 부드러움으로 정치권 안팎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일궈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에서 ‘선거의 여인’으로,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를 굳힌 박근혜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막 올린 여풍당당 시대
이미 4선 중진인 박 전 대표는 지역적 기반은 물론 친박계로 분류되는 당 안팎의 정치적 지지기반까지 마련했다. 때문에 그의 행보에는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여야가 대립하는 정치 현안이 생기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온통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다. 그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에 이어 대권주자까지, 박 전 대표가 가진 정치적 파괴력은 ‘일당백’을 능가한다.
같은 당 전재희 의원은 일찌감치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여성 최초 행시합격’ ‘여성 최초 중앙부처 국장’ ‘관선·민선 광명시장’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전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 등에서 정책 전문성을 발휘해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있는 추미애 의원의 내공도 상당하다. 정세균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지역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해온 추 의원이지만 비정규직법 협상 과정에서 ‘추다르크’의 면모를 확인시켰다.
추 의원은 한나라당의 압박에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5인 연석회의 합의가 없으면 개정안을 상임위에 상정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텨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실업대란이 벌어지면 책임을 지라”고 엄포를 놓고, ‘100만 해고대란설’도 제기됐지만 뚝심으로 맞섰다. 결국 ‘100만 해고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추 의원은 노동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62.9%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여권에 사과를 요구했다.
추 의원은 “당초 노동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의 전제로 주장했던 ‘100만 대량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한나라당과 노동부는 가설 자체가 허구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비정규직법 무력화를 포기하고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국감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7일 국회 환경노동위 노동부 국감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30분간 설전을 벌인 것.
국감 때 상임위원장이 사회에 치중하고 질의는 가급적 하지 않거나 서면질의로 대체하는 데 반해 추 의원은 의원들의 질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19일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대한 국감에서는 전남 광양만 동호안 매립지 붕괴와 관련된 피감기관들의 대처 자세를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추 의원 외에도 국감에서 활약을 보이는 여성 의원들이 적지 않다.
박영선, 김유정 의원 등 검증받은 ‘저격수’들은 이번 국감에서도 녹록치 않은 공격력을 보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감에서 효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첩보보고서를 입수,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를 이끌었던 박지원 의원과의 연합전선으로 국감장을 쥐락펴락했다. 올 초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 비공개 문건을 공개, 김석기 전 서울청장을 낙마시켰던 김 의원은 행정안전부 국감에서 정부의 희망근로 사업에 공무원 가족 492명이 참여한 사실을 폭로했다.
또한 서울과 수도권의 엘리베이터 사고의 주요 원인이 안전검사의 부실성이란 점을 밝혀냈다. 김 의원은 이를 위해 수도권 30여 곳을 돌아다니며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한 엘리베이터의 운행 여부를 확인했다. 정운찬 총리 인사청문회 때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로 눈길을 끈 이정희 의원은 특유의 날카로운 질문과 전문성으로 국회 기획재정위 국감장을 좌지우지했다.
이 의원은 국세청 국감장에서 부동산투기와 관련한 세무조사가 지난 2007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례와 통계를 적절히 활용한 이 의원의 질의에 백용호 국세청장이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이 의원은 최근 모 언론사가 꼽은 ‘차세대 리더’ 정치 분야에서 원희룡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정책연구센터·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 출신으로 ‘외교통’으로 불리는 정옥임 의원은 지난달 5일 외교통상부 국감에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해 해외 공관 건물이 노후하고 전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과 주한 외교관에 대한 음주운전 예방·대응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 주목받았다. 여성 의원들의 당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낯설게 느껴지지 않지만 당 대변인직은 특히 ‘여인천하’라 할 수 있다. 2002년 조윤선 변호사가 한나라당 선대위 공동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 여성 대변인 시대는 지난 대선을 거치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대변인 ‘여인천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 시절 대변인에 임명돼 1년9개월간 당의 ‘입’이 됐던 전여옥 의원을 지나 나경원 의원(1년8개월), 조윤선 의원으로 여성 대변인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초 여성 대변인’이었던 조 의원은 지난 3월 한나라당 원외 여성 대변인으로 발탁된 이래 정몽준 체제에서도 유임되며 ‘최초·최장수 여성 대변인’ 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다.
야권에서도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으로 여성 대변인 시대를 이어갔다. 김 대변인은 지난 8월 우상호 대변인에게 대변인 자리를 넘겼지만 박 대변인은 1년6개월째 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