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진행될 22조원 대형사업 정권교체로 ‘흔들’
MB 세종시 원안 수정 놓고 고심 … 거침없이 정면 돌파
세종시가 연일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세종시 원안 수정에 대한 의중을 드러내면서부터다. 여당은 휴일 밤 긴급회의를 통해 세종시 문제를 논의했고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공개토론이라도 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여야의 대립 양상이 한반도 대운하 때와 비슷하다며 우려하고 있다. 어느 쪽이 깨지든 한쪽이 물러서지 않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의 정도만큼 세종시 문제의 속 깊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들은 얼마 없다. 정쟁에 묻힌 세종시,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세종시가 끓고 있는 냄비에 담겼다.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거리고 있는 문제는 언제든 냄비 밖으로 흘러넘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원안 수정 추진’ 발언으로 세종시 논란에 불을 당겼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쐐기를 박았다. 지난 17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세종시 원안 수정에 대한 의중을 드러낸 것.
‘뜨거운 감자’ 세종시
2002년 공약 여파 여전
야권은 즉각 반발했고 여권에서도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원안 추진을 강조하는 친박계와 원안 수정에 동의하는 친이계 수도권 의원들, 속도조절론과 신중론까지 속내도 제각각이다.
각자 처한 상황과 민심의 향배도 그렇지만 세종시 문제가 이미 여야 정치권의 논의를 거친 사안이라는 점은 정치권으로 하여금 거듭 ‘신중’을 외치게 한다.
세종시라 불리는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수도권의 비대화와 과밀화를 막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충청권의 민심을 잡은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2004년 10월 헌재의 위헌 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2년여 간 신행정수도는 ‘뜨거운 감자’로 노 전 대통령의 목에 걸려있었다.
참여정부는 공약 이행을 위해 2003년 10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발의했으며 2004년 1월 제정·공포했다. 그러나 최상철 교수 등이 이 법률안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10월 헌재는 관습헌법을 들어 위한 판결을 냈다.
이후 정부와 여야는 2004년 12월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및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를 구성, 2005년 2월에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12부4처2청의 행정기관을 연기·공주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일명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2004년 12월부터 2005년 6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합헌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1년 6개월 여에 걸쳐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05년 6월 최상철 교수 등이 다시 위헌 소송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2005년 11월 합헌 판결을 내렸다.
백년대계의 도시
정권 바뀌자 ‘빨간불’
3년 여의 논란이 지속되는 동안 참여정부는 물론, 여야, 헌재, 언론, 국민의 의견까지 두루 들었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국민이 이름 붙인 ‘세종시’다.
‘행복도시 세종’은 행정기능을 중심으로 교육·문화·복지 등의 기능이 어우러진 자족형 복합도시, 즉 행정중심복합도시다.
세종시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금남면·동면, 공주시 장기면·반포면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부에 원수봉이 있고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대전과 청주로부터 10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교통 환경도 고려됐다. 경부고속철도와 경부선 및 경부고속도로가 예정지역의 동쪽을 지나가고, 서쪽으로 2009년 준공예정인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건설 중이며, 청주공항이 24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사업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예정지역이 72.91㎢ (주변지역 223.77㎢)인 세종시 건설에는 22조5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이중 지난 8월 말까지 사업비 22조5000억원 가운데 5조여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돼 공사가 24%정도 진척된 상태다.
투입된 금액 중 대부분은 2005년 12월부터 시작된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비다. 기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10년 말 시범단지 입주가 예정돼 있다. 도시기반조성사업은 2030년까지 계속된다.
세종시는 중심행정타운과 행복도시 첫마을, 중앙녹지공간으로 구분된다. 세종시의 중심지역에 들어설 중심행정타운은 2007년 7월 착공돼 연기군 일원 272만㎡에 조성된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는 작업이 마무리됐으며 정부중앙부처 청사 중 대부분은 2012년 말부터 2014년까지 이곳에 들어서게 된다.
행복도시 첫마을은 2007년 7월 착공해 건설 중이다. 행정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앙녹지공간은 농경지를 활용하는 한국전통경관과 문화 및 레크레이션 활동이 가능한 현대적 도시공원이 조화를 이루는 21세기형 모델로 조성될 계획이다.
후폭풍 각오한
MB 작심 속내?
세종시에 들어설 주요 건축물들은 대부분 공사를 시작했거나 준비 단계에 있다. 하지만 세종시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민간 부문의 사업 진행은 거의 중단되고 있다. 이곳에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토지공사에 계약금까지 했던 건설사들 중에서도 계약을 해지하는 업체들이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정부기관 이전 변경고시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공사가 진행될 수 있냐”고 항변한다. 지역 일각에서 정부가 세종시 추진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이 대통령이 재차 강조했던 것처럼 세종시에 찬성했다면 행정기관 변경 고시를 1년6개월 이상 미루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가 안팎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이 세종시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을 치르고 정권의 반석을 세우는 동안 줄기차게 세종시 원안 추진에 힘을 실었지만 서울시장 재임 시 “(세종시를 막기 위해) 군대라도 동원할까” “수도분할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 “수도 이전이 위헌이듯 수도 분도 위헌”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또한 행정기관 변경 고시를 하지 않은 것도 세종시에 대한 고민을 짐작케 한다. 참여정부 시절 여야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12부4처2청을 이전키로 합의했다. 이어 2005년 10월에 이를 고시했다. 현 정부 들어 몇몇 부처가 통폐합되고 명칭이 변경됐는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법 제16조6항에 따르면 명칭이 변경됐을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변경 고시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출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대통령의 양심상 세종시는 원안 그대로 하기 어렵다”고 운을 떼더니 지난 17일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은 없다. 정권에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세종시 수정 입장을 시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의 속내를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더라도 2012년 말에야 정부부처 이전이 시작돼 사실 현 정부와 무관할 수도 있는 문제”라면서도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면 ‘유령도시’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를 그냥 넘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국정운영부터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파장이 엄청날 사안이라 공식적으로 세종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치권은 총리실에 TF팀이 구성됐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과 국토해양부 등에서 세종시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세종시의 새로운 ‘안’을 마련 중인 정운찬 총리가 작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이 대통령이 의중을 밝히고 정치권과 충청권에 대한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정가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충청과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이번 논란에 숨은 이 대통령의 속내를 짚었다. 그는 “이는 일종의 ‘고립작전’”이라며 “세종시는 충청권의 문제일 뿐 전국민이 관심을 두는 논란거리는 아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충청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유선진당과 세종시법을 주도한 민주당,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세종시 문제를 처리했던 박근혜 전 대표까지 ‘눈엣가시’를 모두 고립시킬 수 있는 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와중에 행정수도이전에 반대하는 수도권 민심을 잡고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 충청권 민심까지 사로잡겠다는 계산이 서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참여정부 시절 여야 합의과정에서 세종시의 자족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검토됐기는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면서 “이번 논란 후 정부가 이를 제시하고 적극 홍보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고 MB표 행정도시라는 이미지를 다시 새길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