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소… 도망… 오리발…“어찌할꼬”

2009.10.13 09:38:23 호수 0호


본격적인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재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최근 검찰과 국세청이 전면적인 기업조사에 나선 상황에서 진행되는 터라 재계의 긴장감은 더하다. 정계의 반갑지 않은 부름에 재계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국회 나들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인사들은 때맞춰 도피성 해외출장을 떠나기도 했다. 이른 아침 회사가 아닌 여의도로 분주히 출근 도장을 찍는 재계 인사들의 사연을 <일요시사>가 쫓아봤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국회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국감은 오는 24일까지 법제사법, 정무, 외교통상통일, 국토해양 등 8개 상임위별로 감사에 착수해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 등 총 478개 기관의 운영 전반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게 된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홍역을 앓고 있는 기업들은 자연히 몸을 움츠리게 된다. 특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들의 경우 국감 출석을 피하기는 어려운 만큼 예상답안을 작성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횡령에 부실경영까지
민심 외면한 농·수협

국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기국감에서 일반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된 CEO 등 재계 인사는 50여 명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먼저 뭇매를 맞은 곳은 농협중앙회다.
국감 첫날인 지난 5일, 정치권은 일제히 농협의 비리와 방만 경영을 질타했다. 정계 인사들은 “공룡기업인 농협의 모습은 ‘비리백화점’이란 수식어와 일치한다”며 “지배 구조를 혁신해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농협 개혁을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농협은 그동안 공금 횡령은 물론이고 골프 회원권 구입에 수백억원을 지출했다. 2005년부터 올해 7월까지 횡령, 금품수수, 불법대출 등 불·탈법 행위로 각종 징계를 받은 농협중앙회 직원은 909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다. 최근 3년간 직원 35명이 횡령한 공금액 규모만 137억원이다. 개인의 카드대금을 메우거나 주식투자를 위해 빼돌린 것이다. 같은 기간 금융 사고는 총 294건으로 사고금액이 726억원에 달했다.

특히 이번 국감을 통해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골프회원권이 821억원 상당이 되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농협은 금융위기가 한창인 지난해와 올해 33개 회원권 구입에 259억원이나 썼다.

농협은 직원 자녀 장학금에는 인정이 넘치는 반면 농민 자녀 학비지원에는 인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농협은 지난해 직원 자녀 대학 학자금으로 189억원을 지원했지만 정작 농업인의 자녀 대학 학자금으로는 5분의 1수준인 35억원을 지원했다. 농협 직원 자녀의 경우 유치원, 초·중·고교 학비는 물론 해외 유학자금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에 대한 방만한 경영도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은 이날 “농협목우촌은 지난해 7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임원들은 전년보다 3000만원이나 늘어난 평균 1억3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국감 첫날부터 매서운 쓴 소리를 들은 농협은 국감이 끝나는 24일 이후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해 추후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거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행태는 수협중앙회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지난 6일 열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국감에서는 이종구 수협중앙회장이 여야의 쏟아지는 질타에 연신 굳은 표정으로 답변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협에서 최근 3년간 발생한 횡령·배임사건은 33건으로 248억원 규모다. 이 중 10개 조합은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협은 매년 수억원의 룸살롱 접대비를 사용해 왔다. 수협 신용사업 부문은 2006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룸살롱·단란주점 등에서 접대비로 8억9000만원을 지출했다.
특히 2004년부터 지난해 8월 말까지는 이들 유흥업소에서 카드를 사용하면서 접대 상대방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 금액을 건당 50만원 이하로 177건을 나눠 결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월차휴가가 폐지됐지만 수협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41억원의 월차휴가 보상금을 직원들에게 불법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수협은 지난해 감사원이 불법적으로 대출한 영어자금에 대해 지적한 바 있으나 이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질타를 당했다.

수협 한 관계자는 “국감 다음 날 전 관련부서 실무진들이 모여 대책회의에 들어갔다”며 “추후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말 많고 탈 많은
건설·통신사 ‘집합’

지난 7일에는 정보통신기술 기업의 주요 경영진들이 국회로 줄줄이 출근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관련업계 간부들을 국감증인으로 채택한 탓이다. 30명의 문방위 국감증인 중 9명이 ICT 기업 경영진이다.

특히 이동통신사업자는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다. 김우식 KT 개인고객부문 사장, 하성민 SK텔레콤 MNO비즈 사장, 김철수 LG텔레콤 부사장 등 이통3사 간부가 모두 청문회장을 찾았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이동통신 요금 인하와 관련해서다.

의원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통사의 요금 문제에 대해 “초당과금제를 이통3사가 모두 도입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초당과금제는 현행 10초당 18원하던 요금부과 체계를 1초당 1.8원으로 바꾸는 것으로 그동안 업계에선 이통사의 낙전수익을 차단할 수 있어 요금인하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최근 SK텔레콤만 이 제도 도입을 결정한 상태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KT와 LG텔레콤도 초당과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국감장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차의 문제이지 결국에는 (이동통신3사) 모두가 시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철수 LG텔레콤 부사장은 이에 대해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이 100일 때 LG텔레콤은 90 이하의 수준이었다”며 “다만 경쟁사에서 초당과금제를 도입한 만큼 LG텔레콤도 소비자 후생차원에서 초당과금제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김우식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은 “초당과금제는 요금제의 일종이고 사업자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라며 “KT는 초당과금제 대신 합병 효과와 기술혁신 성과를 토대로 요금인하 효과를 거두겠다”고 사실상 초당과금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성민 SK텔레콤 MNO비즈 사장은 “이번에 도입된 요금 제도를 진행한 다음 추가 인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GS건설 이휘성 대표와 쌍용건설의 김병호 대표가 산재다발 건설사라는 이유로 국감대에 올랐다. 환노위로부터 GS건설 등과 함께 국감증인 출석을 요구받았던 대림산업 김종인 대표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해 주요 경영진이 자리를 대신했다.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중소건설사뿐 아니라 대형건설업체에서도 안전불감증이 줄어들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가 산재왕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산재예방에 소홀한 기업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동부 자료를 살펴보면 올 한 해 사망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건설사는 GS건설로 나타났다. GS건설은 지난 7월 GS건설이 시공하던 의정부경전철 건설현장에서 5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를 포함해 올 한 해만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GS건설은 2007년 4건, 2008년 6건에 이어 올해까지 3년에 걸쳐 ‘건설재해 사망자 10대 건설사’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뒤이어 대림산업이 올 한 해 사망재해 사고 5건, 쌍용건설이 4건을 기록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한 건설사 관계자는 “평소 안전사고 관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도마에 오른 데 대해 억울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불명예스런 일로 국감 출석요구를 받은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뛸 것”이란 다짐도 전했다.

가도 ‘욕’ 안 가도 ‘욕’
차라리 해외로 도망(?)

예년과 달리 올해 국감에선 굳은 표정의 시중은행장들을 목격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단이 금융위기 극복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행장들을 국감장에 부르지 않기로 전격 합의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무위는 국감의 핵심 인사인 황영기 전 KB지주 회장만 오는 23일 종합감사 때 증인으로 출석시킨다는 방침이다.

올해 정무위 국감 이슈는 금융위기 과정에서 불거진 시중은행들의 해외 부실투자 책임 문제로 황 전 회장은 2005~2007년 우리은행의 CDO(부채담보부증권), CDS(신용부도스와프) 등의 15억8000만 달러 부실 투자 책임을 물어 지난달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황 전 회장은 이후 줄곧 금융 감독의 조치에 반발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왔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국회 국감에도 본인이 직접 나오겠다고 자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 전 회장의 적극적인 행보와는 반대로 민감한 국감 사안에 미리 꽁무니를 감추는 인사들도 있다.
지난 7일 국토해양위원회로부터 증인출석 요구를 받은 LG CNS 신재철 대표는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초 LG CNS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TRS 사업자 선정 특혜의혹과 관련해 사업 투명성에 대한 집중 질타가 예상됐으나 신 대표의 부재로 불발됐다.

LG CNS는 지난해 12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울통신기술이 LG CNS보다 90억원 적은 219억원의 투찰액을 제출했음에도 LG CNS가 최종 선정됐던 것과 관련해 재계로부터 로비 및 특혜의혹을 받아왔던 터다.
업계의 이 같은 의혹은 LG CNS가 올 상반기 공공기관 수주 대부분을 휩쓸자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수장인 신 대표는 국감 직전 해외로 나간 것으로 파악돼 일각에선 도피성 출장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고 있다.


LG CNS 한 관계자는 “신 대표는 사업차 해외출장을 간 것이 맞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외출장이란 공식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이유로 출장지와 일정 일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 특혜는 전혀 없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며 “증인 출석은 불가피하더라도 국감이 원하는 자료는 전부 제출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 있었던 지식경제위원회의 국감에서도 강원도 골프장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원화건설의 박덕흠 회장이 증인출석 요청을 받았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화건설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당시 일정과 미출석에 따른 이유 등 어떤 답변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 6일 지식경제위원회의 국감장에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와 관련해 삼성테스코 이승한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으나 불참했다.
삼성테스코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한·영 친선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당일 영국 상무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그 자리에 참석차 부득이하게 국감에 불참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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