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 재치, 연륜 넘치는 의원들의 국감열전

2009.10.13 09:27:01 호수 0호

허투루 봤다간 큰~코 다칠걸!

굵직한 이슈들이 빠져나간 국장감을 의원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채우고 있다. 이번 국감은 국장감을 데울 이슈들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시작됐다. 장외투쟁과 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민주당 의원들은 국감 준비가 어느 때보다 벅찼고 한나라당은 정책국감에 올인했다. 하지만 치밀한 자료 준비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국감장을 수놓는 ‘별’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감기간 내내 핫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의원들의 모았다.

동영상·현장 시연으로 기선제압, 패러디물 인기
다선 노익장 ‘한 수 앞’ 피감기관 허 찌르는 일격
      
국감이 서류를 벗어나고 있다. 이전까지 국감 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있는 서류더미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천 마디 말보다 동영상 한 편’의 위력이 강하다. 가장 많은 동영상이 소개된 곳은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국감이다. 이날 국감에서는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고 지난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발끈’ 영상이 상영됐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전병헌 의원은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이 잇따라 해임 또는 사임하는 모습과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유인촌 장관이 화가 나 사진기자에게 소리쳤던 막말 공방 등을 편집한 동영상을 상영했다. 전 의원은 이후 유 장관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했으면 소프트랜딩해야지 왜 이렇게 대학살을 하느냐”면서 정부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진성호 의원이 음악으로 뒤를 이었다. 최근 표절 시비가 일고 있는 G-드래곤의 노래 ‘하트브레이커’와 미국의 힙합 가수 플로 라이다(Flo-Rida)의 ‘라잇 라운드(Right Round)’를 동시에 튼 것. 진 의원은 “과거에는 정부가 표절을 심사했는데 현재는 없다”며 정부의 표절 대책 추진 여부를 물었다. 농림수산식품위 국감에서는 김학용 의원의 자신이 질의하는 자료 화면을 ‘재방송’했다.
 
지난해 농협 국감 때의 것으로 국회의 지적에도 불구, 미동조차 없는 농협의 불감증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조영택 의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표적감사’ 논란을 지적하며 MBC <PD수첩>의 영상을 제시했다. 우윤근 의원은 원하던 증인 채택이 한나라당의 거부로 어려워지자 묘안을 냈다. 증인 채택을 대체할 만한 방안을 동영상에서 찾은 것이다.

그는 법사위 국감장에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로 알려진 박대성씨를 직접 인터뷰한 1분30초 분량의 영상을 상영할 예정이다. 동영상에는 박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느낀 심경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금래 의원의 동영상은 ‘취재 영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배려 부족, 시민들의 접근성 부족 등의 문제점을 직접 방문, 취재한 영상을 통해 지적했다.

성윤환 의원도 ‘취재’를 통해 미술계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있는 감정비리 의혹을 공론화했다. 성 의원은 지난 2007년 강진박물관이 구입한 도자기들이 소장자와 감정위원의 유착으로 터무니없이 가격이 부풀려진 점을 추궁하기 위해 문제의 도자기들의 소더비 경매 낙찰가를 직접 확인하고 도자기 소장자와 감정위원과의 관계를 밝혀냈다. 또한 문제의 도자기를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평가한 감정서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김부겸 의원은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증거를 확보, 예술의 전당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김 의원은 신홍순 사장의 사외이사 재직사실을 밝히며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사실을 추궁했으며, 박성택 사무처장에게 경영 전반을 위임한 것에 대해서는 직무유기 책임을 물었다. 또한 오페라극장 화재사건 당시 주요 방재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잠겨 있었던 점, 화재발생 시 안전요원이 무대에 한 명도 없었던 점을 증거와 함께 제시하며 책임을 물었다.

오페라극장 무대 복구공사와 관련, 예산낭비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 과정에서 예술의 전당 전 직원과 화재사건 당시 직원, 무대 복구공사 당시 입찰 참가 기업의 진술을 확보해 질의의 강도를 높였다.  박선영 의원은 악덕브로커들이 탈북자들로부터 정착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촬영해 공개했다.

박 의원은 “(지난 4월) 실태 파악을 위해 하나원 앞에 가서 악덕 브로커들을 촬영하다가 각목 세례를 받아 자동차가 훼손되는 불상사를 겪었다”며 “탈북자들이 탈북지원금을 완납하지 않을 경우 악덕 브로커들은 하나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끝까지 괴롭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단 돈 한 푼 없이 사회에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성이 차지 않는다며 눈앞에서 시연을 한 의원들도 있다. 4선 중진인 김무성 의원은 국방부 국감에서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의 문제점을 지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김 의원은 국감장에서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을 데우는 시연을 펼치면서 “연기(수증기)가 심하게 나고 20분이나 걸리는 발열 시간 때문에 (유사시) 실제로 먹기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음 날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실제 상황을 가정한 조리 시연이 진행되기도 했다.

허원제 의원도 문방위 국감에서 시연을 통해 무선인터넷과 인터넷 전화가 해킹과 도청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했다. 허 의원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카인과 아벨(Cain & Abel)’이라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무선인터넷을 해킹하는 데 성공,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무선인터넷을 공격할 수 있다. 무선인터넷의 보안 강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위 소속 한 의원은 관세청 국감을 앞두고 정보지 등을 통해 확보한 전화번호로 환치기를 시도해 성공, 전화 한 통이면 시중 은행의 20% 정도 수수료로 중국에 현금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전라도 등지에서 뱀장어 등 중국산 활어가 국산으로 둔갑하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원산지 표시 정책의 허점을 지적했다.

보여주고 비틀고 ‘재치만점’

이성남 의원은 정무위 국감에서 <춘향전> 이몽룡 시조를 패러디한 시조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비판했다. ‘4대강 삽질가’라는 제목으로 ‘금삽탁수(金揷濁水)는 천인혈세(千人血稅)요(쇠삽에 떠도는 탁한 물은 일만 백성의 피와 같은 세금이요), 중장비유(重裝備油)는 만성고(萬姓膏)라(중장비에 들어간 기름은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생태파괴시(生態破壞時)에 민생파탄(民生破綻)이요(자연생태가 파괴될 때 민생 또한 파탄나고), 건설족가성고처(建設族歌聲高處)에 만백성지원성고(萬百姓之怨聲高)라(건설족 노랫소리 높은 곳에 모든 백성들의 원망소리 높았더라)’라는 내용을 전한 것.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무성의한 국감자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의원들의 수고와 연륜, 재치가 담긴 자료들이 이목을 집중시킨다”면서 “큰 이슈가 사라지니 제대로된 ‘정책국감’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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