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눈덩이 된 위장전입…한 사람 거칠 때마다 논란 두 배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교수’ 정운찬 휘청, 병역 면제 진실은?
재산 누락, 늘어난 재산, 다운계약서…야당 맹공
이명박 정부의 2기 내각을 함께할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 여야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통과 과정을 통해 여야간 희비가 엇갈린다는 이유에서다. 여당은 정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손을 잡음으로써 중도실용주의, 서민행보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만큼 큰 잡음없이 ‘무사통과’를 염원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위장전입과 재산 누락, 논문 이중게재 등 수많은 총탄을 마련하고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는 2기 내각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진행된 장관 내정자들의 인사청문회로 열기가 달아 오른 데다 국회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총리 내정자에 대한 인사검증 결과에 따라 여당이든 야당이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최고의 창과 방패를 마련,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각오는 남다르다. 한나라당은 정 내정자가 잘하면 대선주자로도 뛸 수 있다고 격려하는 정도지만 민주당은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한 방’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미 이 대통령에게 ‘서민’과 ‘중도’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수세를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멍 뚫린 도덕성
사과로 넘어갈 수 있을까
민주당은 백원우 의원을 시작으로 최재성 의원, 김종률 의원, 강운태 의원 등 젊은 인재들을 청문위원으로 선정했다. 대변인 시절 날카로운 언변을 선보였던 최 의원과 지난해 광우병 사태에서 당의 지략가로 활동했던 김 의원, 경제관료 출신인 강 의원이 선보일 날카로운 검증의 칼날을 기대하고 있는 것.
또한 원혜영 전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총리청문 태스크포스팀(TFT)을 조직해 청문위원들의 지원에 나섰다.
최 의원은 “(정 내정자가) 지금까지 부풀려진 이미지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밑천 없이 ‘대박’만 터뜨리는 불로소득의 인생은 아니었는지 국민적 잣대로 분명히 검증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도덕성, 재산 및 세금문제, 정 내정자가 이제까지 해온 발언들이다.
위장전입과 논문 이중게재 등은 도덕성과 연결된다. 야당은 정 내정자의 부인이 지난 1988년 주소지를 경기 포천시 한 기와집으로 옮겼다가 두 달 만에 원주소지인 서울 방배동으로 이전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곳의 땅을 사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것이다.
그간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 낙마의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그러나 전 정권에서 무던히 많은 이들에게 엄격한 검증의 칼날로 휘둘러졌던 위장전입이 현 정권에서는 사과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대선 중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지자 ‘맹모삼천지교’에 비유, 냉소를 샀다.
문제는 현 정부 인사들의 위장전입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고개 한번 숙이는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갔지만 일주일 동안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면서 반복해서 문제가 제기되는 와중에 파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실제 9·3 개각을 통해 발탁된 인사 7명 중 3명이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4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민일영 대법관까지 합하면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현 정권에 기용되기 위해서는 위장전입은 필수로 해야 하는 것이냐”며 비아냥거렸다.
교수 출신 내정자들의 발목을 잡아온 ‘논문’도 다시 등장했다. 2000년 발표한 우리말 논문을 1년 뒤 영어 학술지에 영어로 옮겨 싣고도 자료출처를 밝히지 않았으며, 1998년 논문의 상당 부분이 2001년 논문에 그대로 실린 점은 ‘논문 이중게재’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인사청문특위 한나라당 측 간사인 권경석 의원은 “객관적인 잣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동시에 당시의 관행과 시대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현재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면 트집을 위한 트집, 정치공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지난 1966년 보충역 판정을 받았던 정 내정자가 1968년 독자라는 이유로 한 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조교수로 재직하던 1977년 고령(31세)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도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이번 개각으로 ‘내정자’ 신분이 된 이들 중 세금 탈루 의혹을 받은 세 명 중에도 정 내정자가 포함돼 있다.
소득신고 누락하고
갑작스레 재산 늘어나고
정 내정자는 인터넷 도서 판매업체인 ‘예스24’ 고문으로 일하면서 받은 6000여 만원에 대한 소득신고가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서울대 교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고,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무원법 위반 논란으로 번졌다.
민주당의 ‘정운찬 저격수’ 중 한 명인 강운태 의원은 정 내정자가 부동산 임대수입 등에 대해 신고 누락으로 탈세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정 내정자의 종합소득세 신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인터넷 서점 예스24 근로소득 종합신고를 누락한 데 이어 부동산 임대수입과 기타 수입금, 인세수입도 신고를 누락해 탈세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정 내정자는 1998년 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오피스텔을 취득한 이후 월세 65만원, 보증금 500만원에 임대했으나 2008년 종합소득세 신고시 임대수입을 누락했다.
또 강연료와 원고료, 자문료 등이 포함되는 기타수입을 매년 730~5000만원(2004년 860만원, 2005년 730만원, 2006년 5042만원, 2007년 1011만원) 신고했으나, 2008년에는 신고된 내용이 없어 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저작권수입 3210만원 중 기타수입으로 분류한 650만원은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누락했고, 사업소득으로 분류한 2560만원은 신고 내역 포함 여부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실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이 적힌 ‘다운계약서’를 작성, 수천만원대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종률 의원은 “정 내정자가 2003년 처분한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를 사고 팔 때, 현재 거주하고 있는 방배동 아파트를 2006년 살 때 매매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 매매가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수천만원대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들 아파트의 매매계약서 및 세금 납부 관련 신고서류 등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 의원은 또 2006년 9월15일부터 이달 초까지 정 내정자와 배우자의 소득액인 4억1995만원과 지출액인 3억7220만원, 예금증가액인 3억4375만원을 공개하면서 예금한 돈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 기간 정 내정자의 총소득액에서 지출액을 빼면 차액이 ‘제로’에 가깝다”면서 “사실상 예금할 여유가 없었는데도 3년간 예금액이 3억원 넘게 늘어난 것은 숨겨진 소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내정자 측은 이러한 의혹들을 부인하고 있다.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은 근거 없으며 예금 증가는 “소득 범위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설명이다.
정 내정자가 그동안 했던 발언들도 인사청문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정 내정자는 그동안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을 비판해왔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에 “일본이 20년 전부터 노력해 오다 두 달 전 발표한 내용인데, 제목까지 똑같아 상당히 놀랐다”면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발표했던 ‘후쿠다 비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 비수를 꽂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정부의 ‘4대강 살리기’에 대해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운하 사업에 들어갈 돈은 장기적 연구와 개발 등 소프트파워 신장에 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 비판, 세종시 발언
‘말’ 부메랑 되어 온다
‘세종시’ 관련 발언은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종시 문제로 정치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상황에서 ‘충청권 총리’가 된 정 내정자가 ‘세종시 수정 추진’을 언급, 청와대와의 물밑교감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양승조 민주당 정책위부의장은 “정 내정자가 태어난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 효도마을 분위기를 한마디로 전하겠다”면서 “3시에 만세 부르고 6시에 에라이 했다”고 말했다. 3시에 내정 뉴스를 듣고 축하 현수막을 마련했는데 6시에 세종시에 대한 발언을 듣고 모두가 ‘에라이’ 했다는 것.
양 부의장은 “고향 팔아서 이속을 챙겼다는 표현을 하더라. 고향에서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정 내정자에 대해 충청권에서는 잘못된 인사라는 의견이 35~36%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