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명 여성 성폭행한 경기 북부 ‘발바리’ 검거 충격
연쇄성폭행범들, 주로 여성 혼자 사는 원룸 노려 불안감 급증
원룸을 범행 타깃으로 삼는 범죄자들이 늘면서 원룸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 혼자 사는 원룸은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잇달아 검거된 연쇄성폭행범들이 주로 타깃으로 삼은 것도 원룸에 사는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혼자 원룸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원룸들이 경비가 허술하고 침입이 쉬운 등의 결함을 안고 있어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일요시사>에선 범죄의 온상으로 급부상한 원룸의 실태를 긴급 취재했다.
서울의 한 여대 인근의 원룸촌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이모(28·여)씨는 며칠 전 뉴스를 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씨를 불안감에 떨게 만든 것은 원룸에 사는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연쇄성폭행범 ‘발바리’ 검거소식이다.
“또 원룸이야?”
불안한 원룸족
그렇지 않아도 잊을 만하면 터지는 흉흉한 사건들에 밤마다 잠긴 문을 몇 번이고 확인한다는 이씨. 그런 그녀에게 이번 사건은 “원룸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란 고민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데다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지금 이사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더욱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문단속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엔 불을 켜두고 잠을 자는 버릇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씨는 “뉴스를 보니 이번에 잡힌 발바리는 원룸 밖에서 숨어 있다가 불이 꺼지는 원룸에 침입했다고 해서 그 후로는 잘 때 불을 켜고 자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미뤘던 방범창설치를 다시 한 번 요구하기도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원룸에는 방범창이 없는 작은 창문이 있어 항상 불안했다.
그동안 건물 주인에게 몇 번이나 방범창 설치를 부탁했지만 사람이 침입할 정도로 큰 창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설치를 거부당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 했던 것. 그러나 또 한 명의 원룸 발바리 검거 소식을 들은 뒤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요구를 했다고.
이씨는 “단독주택이나 연립보다는 안전할 거란 생각에 원룸을 택했는데 흉흉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터지자 원룸을 선택한 것이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이씨처럼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최근 100명이 넘는 여성들을 성폭행한 연쇄성폭행범이 검거된 뒤로는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범인이 주로 노린 것이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란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간을 충격에 빠뜨린 범인은 차모(39)씨.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차씨는 10년 동안 경기도 지역의 원룸을 돌며 몹쓸 짓을 저질러왔다. 동네에서 효자라고 소문날 만큼 평판도 좋았지만 밤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성폭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은 밝혀진 수만 해도 125명.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8일 부녀자들을 연쇄 성폭행하고 수천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차씨를 구속했다.
경찰에서 차씨는 “처음엔 돈을 훔치려고 여자들만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신고를 못하도록 성폭행했고 나중엔 습관적으로 하게 됐다”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차씨가 여느 발바리들과 다름없이 타깃으로 삼은 것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경기도 양주 등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경기북부의 원룸 밀집지역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원룸 중에서도 차씨가 노린 것은 문단속이 허술한 곳. 목표물을 발견한 그는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하거나 방범창을 뜯어내고 방에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을 하기 전에는 피해자의 집에서 앨범이나 수첩 등을 먼저 살폈다. 이를 통해 여성의 인적사항과 정보를 숙지한 뒤 “직업이나 직장, 친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협박을 해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범행을 할 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뒤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후엔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물청소를 하기도 했다. 또 범행 당일에는 범행 현장 주변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행여 목표로 삼고 침입한 집이 여성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해도 차씨는 개의치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친자매를 동시에 성폭행하기도 하고 남성과 함께 있는 여성일 경우 남성의 손발을 묶은 뒤 여성을 성폭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룸을 주요 범행 장소로 삼은 발바리는 차씨뿐만 아니다. 지난달 검거된 ‘전주 발바리’ 김모(34)씨 역시 원룸촌을 돌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침입하기 쉬워서”
발바리들 원룸 선호
1998년 군 복무 당시 한 원룸에 들어가 성폭행을 하려다 실패했던 김씨는 이로 인해 철창신세가 되면서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키웠다. 이에 2001년 출소를 하자마자 원룸을 돌며 연쇄성폭행을 저질렀다.
주로 술에 취했을 때 범행욕구가 들었던 김씨는 창문이 열려 있던 2층과 3층 원룸을 범행 타깃으로 삼아 가스배관을 탔다. 침입에 성공한 뒤에는 부엌에 있는 흉기를 이용해 여성들을 위협한 뒤 성폭행과 금품 갈취를 일삼았다.
김씨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 가운데는 원룸에 함께 살던 자매지간이나 친구 사이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이들을 흉기로 위협한 다음 속옷이나 이불 등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덮어씌운 뒤 차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성폭행이 계속되면서 범행도 점차 치밀해졌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에 장갑을 끼고 침입했고 흉기 등 범행에 필요한 도구는 집 안에 있던 것을 사용했다. 범행 후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피해 여성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 씻기기도 했다.
그의 행각은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6년 결혼을 하고 쌍둥이 딸의 아버지가 된 이후에도 새벽이슬을 맞으며 하는 몹쓸 짓은 멈출 줄을 몰랐다.
최근 붙잡힌 ‘청주 발바리’ 최모(45)씨 역시 원룸에 사는 여성들을 상대로 몹쓸 행각을 벌였다. 최씨는 청주 일대 원룸촌 주변을 돌며 범행대상을 찾아 6년간 45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다. 범행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원룸을 골라 가스배관을 타고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을 저지른 것.
원룸에서 자주 벌어지는 사건은 성폭행뿐만 아니다. 강도와 절도사건 열 건 가운데 한 건 이상이 원룸에서 일어나고 있을 만큼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노리고 집이 비어있을 때 몰래 침입해 제집처럼 사용하는 신종범죄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인들과는 달리 여러 명이 집단을 이뤄 몰려다닌다. 이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쉬운 여성의 집을 점찍은 뒤 그 여성이 집을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을 체크한다.
그리고 집이 비게 되면 몰래 문을 열고 들어 가 제집 드나들듯 생활을 한다. 일부 범인들은 집 안에 몰래카메라까지 설치해 놓고 집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한다고.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정모(28·여)씨도 얼마 전까지 집을 비운 사이 낯선 이들이 침입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약 한 달 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한 정씨는 거실 전등을 끄지 않고 온 것이 생각나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가 보니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이상했지만 착각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정씨는 그 다음 날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화장실 변기 뚜껑이 열려있었던 것. 남자가 들어올 일이 없는 집에서 벌어지기는 힘든 일이었다.
정씨는 이에 회사동료들에게 최근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털어놨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사는 직장상사는 “얼마 전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있어 알아봤더니 가출청소년들의 소행이었다”며 “요즘 혼자 사는 여자들 집을 노리고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일을 당한 것 같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정씨는 자물쇠를 바꾸는 등 보안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집 안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위험한 곳이 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집 안에 CCTV를 설치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살인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원룸 범죄 중 하나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사는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져 원룸족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 원룸이 범죄의 타깃이 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방범이 허술해 몰래 침입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신축 원룸에는 방범창을 설치하고 거주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도록 이중·삼중으로 카드장치를 하는 등 나름대로 방범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다른 주거형태와 비교해 허술한 것이 사실이다. 또 아파트와 달리 경비가 없고 CCTV가 설치된 곳이 극히 드물다는 것도 범죄자들의 구미에 맞는 조건이다.
허술한 원룸
범죄의 온상
원룸의 특성상 혼자 사는 경우가 많은 것도 범죄를 부른다. 가족단위가 살고 있는 주택지역이나 아파트와 달리 이웃 간 왕래가 드물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범죄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다. 행여나 범행을 한 뒤 목격되더라도 신고를 당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원룸이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공간이란 것도 범죄자들을 부르고 있다.
범죄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범죄자들이 손쉽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곳이 원룸”이라며 “스스로 개인 방범을 철저히 지키고 혹시라도 범죄를 당했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그 일대로 유사한 범죄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