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은 유산을 노리고 수십 년간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를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끔찍한 패륜범죄가 실제로 일어났다. 도박에 미친 30대 남자가 집 앞에 버려진 자신을 자식으로 키워준 양어머니를 청부살인한 것.
천륜을 저버리는 범행을 저지른 목적은 ‘돈’이었다. 도박에 빠진 자신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후 패륜을 계획한 것. 길러준 정은 잊은 채 도박과 돈에만 미쳐 있던 패륜아는 서슴없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어머니를 살해했다. 이처럼 친부모 등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늘어나는 양상이다. 특히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돈을 노리고 가족을 해하는 범죄가 비일비재하다. 현실에선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을 패륜범죄의 실상을 취재했다.
유산 노리고 양어머니 청부살해한 아들 15개월 만에 덜미
사설 경마에 빠져 돈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살인 의뢰해
어머니 성폭행 후 살해한 아들, 일가족 살해한 가장 등 증가하는 패륜
지난해 5월2일,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유모(70·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며칠 동안 아침운동을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유씨의 친구들에 의해서였다. 유씨의 사인은 ‘당뇨성 혼수’. 평소 당뇨병을 앓아 온데다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진 등은 유씨의 죽음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지병을 가지고 있어 병으로 숨졌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인이 없을 것으로 보여서였다. 유씨의 죽음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고 유씨의 부동산과 보험금 등을 합친 20억원은 유일한 자식인 이모(34)씨에게 모두 상속됐다.
업둥이 키워준 은혜 살인으로 보답
그러나 유씨의 지인 등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갑작스런 유씨의 죽음과 아들 이씨가 연관이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 지인들은 이에 경찰에 유씨 사망사건에 대해 제보했고 경찰조사 끝에 감춰졌던 진실은 드러났다. 유씨는 당뇨병이 아닌 유산에 눈이 먼 양아들 이씨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들 모자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이씨는 경기 하남시 풍산동의 한 철물점 앞에 버려졌고 이 철물점을 운영하던 유씨는 이씨를 데려다 호적에 올리고 자식으로 키웠다. 자식이 없던 유씨는 그를 친자식으로 여기며 애지중지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는 유씨의 바람과는 달리 엇나가기 시작했다. 유도 특기생이었던 이씨는 대학 재학 시절 경마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설 경마에 빠져들어 돈을 탕진하면서 도박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결국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고차 매매업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지만 도박을 끊을 수는 없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유씨에게 받은 9000만원짜리 집을 날리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에는 유씨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유산 중 2억을 달라고 했다. 유씨의 재산이 외아들인 자신의 것이라 굳게 믿었던 그였기에 이 돈 역시 쉽게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유씨의 대답은 달랐다. 유씨는 “경마에 빠져 재산을 날린 너에게 유산을 줄 수 없다”며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잘라 말한 것. 어머니의 뜻밖의 반응에 분노한 이씨는 결국 해선 안 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살해한 뒤 유산을 상속받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이씨는 PC방에서 자신 대신 어머니를 살해할 청부업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씨는 ‘전과자와 출소자의 쉼터’란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서 ‘시키는 일은 다 해주겠다’는 글을 올린 박모(31)씨와 전모(27)씨를 만났다. 그리고 이들에게 1억3000만원을 줄 것을 약속하고 “어머니를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의뢰를 받은 박씨 등은 유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기회를 노렸다. 유씨가 자주 가는 장소 등을 파악한 이들은 아침운동을 나온 유씨를 승용차로 치어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박씨가 주저하는 바람에 첫 번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 범행 장소는 유씨의 집. 박씨 일당은 이씨에게 어머니의 집 주소와 출입문 비밀번호를 건네받은 뒤 지난해 5월2일, 유씨의 집에 침입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유씨의 얼굴에 비닐 랩을 씌워 질식해 숨지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씨의 손에 20억원의 유산이 들어오게 된 것. 그중 1억3000만원은 박씨 일당에게 사례비로 건네졌다. 이씨는 범행을 숨길 목적으로 유씨의 제사까지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결국 범행 15개월 만에 이씨의 범행은 낱낱이 밝혀졌다. 경찰은 이씨의 계좌에서 1억3000만원이 박씨 일당에게 흘러간 것을 확인한 뒤 이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30여 년간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끔찍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양아들인 나를 친자식처럼 잘 돌봐주셨다. 왜 어머니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는지 너무나 후회된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유산 20억원 가운데 15억5000만원을 3개월 만에 사설 경마장에서 탕진한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7일 이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이씨의 의뢰를 받고 유씨를 살해한 혐의로 박씨와 전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처럼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길러 준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범죄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범행인 탓이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잔혹한 패륜범죄는 끊이지 않고 벌어져왔다. 최근엔 범죄발생이 더욱 빈번해져 가족해체를 부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7월에는 친어머니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2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의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A(21)씨가 그 장본인. 경찰에서 A씨는 어머니 B(40)씨가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고 범행 당일에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나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어머니 B씨의 시신에서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고 경찰의 추궁 끝에 A씨는 “어머니를 성폭행 한 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 조사결과 지난 7월22일 새벽 2시쯤 술을 마시고 귀가한 A씨는 자고 있던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고 자신을 뿌리치는 어머니에게 순간적으로 성욕을 느껴 어머니를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처자식 살해한 40대 2년 전엔 부모도 살해
아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B씨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고 자신을 신고하러 나가는 것이라고 착각한 A씨는 어머니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둔기로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했다. 뒤늦게야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A씨는 친구와 동생 등에게 살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자수를 하라”는 말만 들었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해 죗값을 치르게 됐다.
지난 5월에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누나를 살해한 20대가 붙잡혔다. 직업 없이 누나(31)와 같이 살던 박모(25)씨는 지난 5월10일 오전 10시쯤 서울 용산구 자신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누나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누나의 통장에서 50만원을 인출하고 지갑 안에 있던 현금 59만원을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이후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 유흥비로 돈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경찰에서 “누나가 나를 보증인으로 세워 800만원의 빚을 지게 해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에는 부모와 자식 등 일가족 4명을 살해한 김모(44)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김씨는 돈 때문에 혈육을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세간을 흉흉하게 만든 장본인. 충북 옥천에 살던 김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아파트 안방에서 술에 취해 잠든 부인 백모씨와 옆에서 자던 세 살배기 딸을 살해했다.
그가 처와 어린 딸을 살해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 부인명의로 생명보험을 가입하면서 보험금 1억원의 수령인을 본인으로 해 놓은 김씨는 철저한 계획 아래 아내를 살해했다.
범행 1주일 전 범행에 쓸 흉기를 집안에 숨겨놓고 범행 당일 수면제가 든 커피와 술을 아내에게 먹이는 등 치밀하게 살해계획을 세운 것. 범행 뒤에는 또 흉기를 땅에 묻고 피가 묻은 옷가지를 불태우는 등 증거를 없앤 뒤 처남과 선배를 불러내 술을 마셔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돈 욕심에 부인과 딸을 살해한 김씨. 그러나 그의 죄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미 2년 전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것.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6월10일 새벽 1시쯤 옥천군 옥천읍 소재 부모님의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가 거실 등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이 불로 안방에서 잠자던 김씨의 아버지(당시 85세)와 어머니(당시 75세)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소방관에게 구조돼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이틀 만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부모를 살해한 이유 역시 ‘돈’이었다. 숨진 전 부인과 결혼하기 전 모아뒀던 1억6000여 만원을 소주방, 다방 등의 사업에 투자해 날린 김씨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부모님의 집이 탐이 났다.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부모님의 집을 팔기 위해 부모님을 살해한 것.
핵가족화 인한 가족해체 가족 간 연대의식 상실
이처럼 혈육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패륜범죄는 늘어나는 양상이다. 2007년 한 해 발생한 친족 대상 범죄만 해도 2만1000여 건. 이 가운데 살인이나 폭행 등의 강력범죄가 70%를 차지한다. 부모나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존속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하고 있지만 범죄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패륜범죄가 늘어나는 원인에 대해 가족의 해체를 꼽는다. 핵가족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가족구성원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가치관의 차이가 벌어지는 등 가족 간의 연대의식이 상실되면서 목적 달성에 가족을 이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것. 또 부모를 상대로 한 범죄의 경우 1차적으로 자녀 양육 과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문제 있는 자녀에겐 문제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 경제난도 패륜범죄의 증가를 부른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벌어진 패륜범죄가 대부분 돈을 노렸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