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살인마 31인 꼽힌 ‘유영철’

2009.08.18 09:29:40 호수 0호

“이게 웬 나라 망신?”

연쇄살인마 하면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다. 끔찍한 살인행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유영철’이다. 유영철은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살인스승’으로 삼았을 만큼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는 세계에서도 통했다.

미국 잡지 <라이프>가 선정한 연쇄 살인마 31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한국의 불명예’라며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유영철의 범행행각과 세계 살인마들의 행각을 살펴봤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여성에 대한 적개심으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세계적인 사진 잡지로 유명한 <라이프>지가 최근 인터넷 판에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쇄살인마 31명을 꼽으면서 유영철을 포함시킨 것.

미국 라이프지 선정 희대의 살인마 31인에 유영철 얼굴 공개
21명 살해하고 인육 먹은 엽기 살인마로 꼽혀 ‘나라 망신’


<라이프>지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전설적인 살인마들의 사진 속에 유영철의 얼굴과 살인행각을 넣었다. <라이프>지는 유영철이 돈 많은 사람과 여성에 대한 적개심으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21명을 살해했으며 희생자의 간 등 인육을 먹은 혐의도 있다고 전했다.

세상에 대한 분노, 살인으로



이처럼 불명예스러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의 과거 행적도 덩달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유영철은 유년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워왔다. 유영철을 수사했을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서 주임검사를 맡았던 이건석 변호사는 “유영철의 기본적 심성은 밝은 편이었으나 불우한 가정환경이 세상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게 했다”고 말했다. 화가를 꿈꿨던 유영철은 중학교 시절 운동과 싸움을 잘해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으나 고등학교 시절 절도사건을 저질러 소년원에 수감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

그러다 21세 때인 1991년 안마사였던 전 부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두었으나 그의 방황은 계속됐다. 이후에도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형사입건되면서 11년 동안 전국 각지 교도소를 떠돌며 사회와 격리됐던 것. 그러다 2000년 5월, 교도소 안에서 아내에게 일방적인 이혼을 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유영철의 마음속에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이 극대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03년 9월 교도소를 출소하면서 본격적으로 살인행각의 서막이 열렸다. 교도소를 나온 지 불과 13일이 지났을 때 유영철은 서울 강남에서 명예교수 이모씨와 부인 이모씨를 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 뒤에도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모씨 등 일가족 3명,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모씨 등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살인행각을 저질렀다. “부자가 싫다”는 목적 아래 살인 행각은 나날이 발전을 더해갔다.

또 다른 범행 대상은 몸을 파는 여성들. 그는 출장마사지로 돈을 버는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유영철은 철저하게 범행을 계획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감하게 범행을 하고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해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아 경찰의 수사망을 따돌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범행이 반복될수록 살인기술은 몰라보게 진화했다. 범행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했다.

시중에 파는 도구를 이용한다면 구입경로 등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둔기를 이용해 머리를 내리치는 방법으로 희생자들을 죽였다. 살해한 후에는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내거나 일부러 불을 지르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사체 처리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체를 토막 내 암매장하는 방식으로 시신을 유기했다. 자신의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신 절단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그의 잔인성을 보여줬다. 인육을 먹거나 토막 낸 사체를 물에 씻는 등의 엽기행각도 서슴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범행만큼이나 담담하게 뱉은 어록들도 화제가 됐다. 그는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부유층들도 좀 각성했으면 한다” “강제로 나를 끌어내 형식적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와 검찰이 한심하다”“판사님은 저의 죄를 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잡히지 않았다면 100명을 더 죽였을 것” 등의 말을 해 세상을 경악케 한 바 있다.

결국 유영철은 2004년 12월13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2005년 6월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세간에 충격을 던졌던 유영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다른 살인마들의 면면도 잔인하긴 마찬가지다. 그중 ‘나이트 스토커’라 불리는 리처드 라미레즈는 13명을 죽이고 11명을 성폭행하고 14건의 강도혐의를 받아 1985년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악마숭배주의자로 알려진 라미레즈는 록 그룹 AC/DC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으며 그의 별명 역시 이들의 노래 ‘나이트 프라울러’(Night Prowler)에서 딴 것이다. ‘밀워키의 식인종’ 제프리 다머는 1978년부터 1991년 17명의 남성과 소년들을 살해했다. 다머는 온갖 이상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체성애, 식인 등의 엽기적 행각이 드러났던 것. 또 희생자의 머리에 구멍을 뚫은 후 산(酸)을 채워 넣어 좀비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학벌도 출신도 각양각색

1970년대 26~100명의 여성을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받는 테드 번디도 엽기적인 범행으로 유명하다. 대학교를 다니던 잘생긴 백인으로도 유명한 번디는 서부 5개 주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행각은 영화 <양들의 침묵>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몬스터’ 에이린 워노스는 미국 최초 여성 연쇄살인범이다. 매춘부였던 워노스는 1989~1990년 7명의 남성을 총으로 살해했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영화 <몬스터>는 워노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수학교수로 재직한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78~1995년 사업가, 과학자 등에게 편지폭탄을 보내 3명을 살해하고 23명을 다치게 했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생각한 신(新)러다이트주의자로도 알려졌다. 이외에도 ‘광대 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 ‘죽음의 의사’ 해럴드 시프먼, ‘그린리버 살인자’ 개리 리지웨이, ‘체스판 킬러’ 알렉산드르 피슈킨 등이 희대의 살인마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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