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고발> 가슴앓이 하는 직장인 ‘왕따’

2009.08.18 09:23:56 호수 0호

“내가 투명인간이야?”

직장 내 집단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들의 전유물이던 ‘왕따’ 문화는 어느 순간부터 직장에까지 파고들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을 따돌리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출중한 능력으로 빠른 승진을 하는 경우, 줄타기로 직장생활을 하다 인맥이 끊긴 경우, 낙하산으로 입사한 경우 등이 그것. 심지어 외모나 학벌이 떨어진다는 유치한 이유로 따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직장 내 따돌림은 구조조정 등으로 동료 간 경쟁이 심화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월, 경기도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한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가정을 책임졌던 가장을 자살로 이르게 한 것은 동료들의 따돌림이었다.

장례 후 발견된 5장의 유서에는 생전에 동료들로부터 각종 괴롭힘을 당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어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이처럼 동료들로부터 당하는 직장 내 따돌림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극심한 고통이다.

은근히 많은 왕따…  직장인 4명 중 1명 따돌림
청소년 따돌림과 달리 은근한 방식으로 이뤄져

직장 내 따돌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직장인 4명 가운데 1명이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가 이를 말해 준다. 폭행 등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한 사람을 따돌리는 학교 내 따돌림과는 달리 직장 내 따돌림은 은근한 방식으로 이뤄져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이모(27·여)씨도 동료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이직을 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씨가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된 이유는 ‘낙하산’으로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6개월 전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 평소 출판업계에 관심이 많아 관련 강좌를 듣고 출판사 인턴으로 일하는 등 나름대로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아갔다는 이씨. 비록 아는 사람을 통해 남들보다 편하게 취업을 하긴 했지만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는 아니라는 마음을 가지고 당당히 출근을 했다.

“낙하산이 어때서?”
이유 없는 따돌림



하지만 동료들의 생각은 달랐다. 능력이 있건 없건 낙하산은 낙하산이라는 것. 소위 말하는 ‘빽’을 등에 업었으니 혜택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할 거라는 것이 동료들의 추측이었다. 이런 이유로 동료들은 그녀를 소외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휴게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도 이씨가 다가가면 얘기를 멈추고 뿔뿔이 흩어지거나 회식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줘 곤란하게 만드는 등 다소 유치한 방식으로 그녀를 소외시켰다.

이씨는 “어떨 땐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먼저 다가가 살갑게 대하면 동료들의 태도가 나아질 거란 생각에 노력도 했지만 그럴수록 동료들은 더욱 차가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고. 이에 동료들과 친분을 쌓는 것을 포기한 이씨는 일에만 열중하겠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상사들조차도 그녀에게 싸늘해져 갔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 상사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었던 것. 결국 이씨는 동료들의 따돌림과 상사들의 무관심이란 이중고를 겪으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이씨는 “학교도 아니고 직장에서 ‘왕따’가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며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데 동종업계라 나쁜 소문이 흘러들어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런가 하면 출중한 업무능력으로 인정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29·여)씨가 이에 해당한다. 현재 과장 직책을 맡고 있는 김씨는 동료들에 비해 빠르게 진급했다. 성실한데다 우수한 기획능력을 가졌고 멀티플레이라 불릴 만큼 다재다능한 그녀는 누가 봐도 모범적인 직원이다. 이로 인해 고속승진도 가능했다.

문제는 동료들의 괴롭힘이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뛰어난 김씨는 사사건건 상사들에게 비교대상이었고 이런 그녀는 언제나 동료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이는 따돌림으로 이어졌다. 따돌림을 주도한 것은 김씨보다 먼저 입사한 선배였다.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을 한 것에 불만을 가진 선배가 동료들을 충동질한 것. 김씨만 빼놓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거나 고의적으로 간식시간에 부르지 않는 등 다소 민망한 방법의 따돌림이 주를 이뤘다. 업무를 하는 데 비협조적인 것은 물론 대화조차 거부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엔 그 강도가 심해졌다고 한다. 김씨에 대한 근거 없는 스캔들을 퍼트린 것.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사를 좌지우지할 만큼 파워가 있는 상사와 내연관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떠돌게 된 것이다. 자신에 대한 허황된 소문이 났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된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한 심경이다. 소문의 출처가 누군지 짐작을 하고는 있지만 섣불리 공론화시켰다 긁어 부스럼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문이 묻히기만을 기다리며 참고 있지만 언제까지 일방적인 따돌림을 참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외모나 학벌 등의 개인적인 조건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정모(26·여)씨가 이 같은 케이스다. 입사 전부터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교 출신들이 많은 회사란 것을 알았지만 큰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던 정씨.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직장 상사들은 자신과 함께 입사한 동료들에 비해 눈에 띄게 중요성이 덜한 업무들을 맡겼다. 자신을 이끌어주는 선배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알게 모르게 선배들은 자신과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들을 챙겨줬고 그럴 때마다 지방대 출신이란 것이 서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인맥이 중요한 직장생활에서 여전히 학연은 크게 작용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고 토로했다.

“저러니 따돌림 당하지”
왕따 스스로 자처하기도

바른말을 잘하거나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하는 등 튀는 행동과 성격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최모(29)씨도 주관이 뚜렷한데다 융통성 없는 성격 때문에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패기 있고 소신 있다는 장점으로 취업문까지 뚫은 그였지만 그런 올곧은 모습이 사회생활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어떤 자리에서도 할 말은 하고 윗사람들에게도 바른 소리를 잘하는 최씨의 태도를 좋게 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상사들은 “무서워서 OO씨 앞에서 농담이라도 하겠어?”라며 비꼬기 일쑤였고 동료들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최씨를 멀리하게 되면서 서서히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조직문화에 융화되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둔 결과였다.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직원도 있다. 동료들의 미움을 살 만한 행동을 하는 직원이 존재한다는 것.

직장인 이모(32)씨는 자신의 회사에도 왕따를 당하는 직원 A(33)씨가 있다고 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잘나가는 직원으로 승승장구했다는 A씨가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된 이유는 소위 말하는 ‘줄타기’를 잘못 해서라고. A씨는 이른바 실세에게 줄을 서고 아부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처세의 달인이다. 자신의 앞길은 탄탄대로일거라 믿으며 줄서기에만 열중하던 그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믿었던 상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고를 당하면서부터다. 그날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A씨에게 남은 것은 괴로운 회사생활이었다.

막강한 실세의 측근이란 이유로 A씨에게 싫은 내색 한 번 못하던 동료들은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감정이 폭발한 동료들은 대놓고 그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A씨는 눈에 띄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는 직원은 없다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 이씨는 “권력에 붙어 오랫동안 편하게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에 따른 결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며 A씨가 받고 있는 대우는 마땅하다고 말했다.

남보다 튀는 직원, 지나치게 아부하는 직원 등 따돌림대상
얄미운 직장생활로…“따돌림 받아야 마땅”한 직원도 있어


회사원 B(43)씨도 ‘이유 있는’ 따돌림을 받는 경우에 속한다. 나이에 비해 사회경험과 업무 경력이 적은 B씨는 1년 전 한 중소기업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했다. 이렇다 보니 B씨의 상사는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적었고 ‘어린 상사’를 모시는 데 불만을 품은 B씨의 행동이 도를 넘어서면서 왕따를 자초하기 시작한 것. 근무 중에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상사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던 B씨는 회식자리라도 참석한 날엔 어김없이 동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얼마 전에는 술자리에서 상사에게 멱살잡이를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B씨의 개념 없는 행동은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후배들에게도 이어졌다. 사소한 실수에도 타박을 빼먹지 않았고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 부하직원들에게조차 미움을 사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에게 호의적인 동료는 없을 수밖에 없고 어느 순간부터 왕따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회사원은 “다 큰 성인들이 동료를 따돌리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누가 인간적인 애정을 갖겠느냐”며 따돌림을 당하는 당사자에게도 문제가 있단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따돌림은 정당화될 수 없는 집단행동이다. 스웨덴에서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 중 10~15%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해서라는 조사결과가 있을 만큼 따돌림으로 인한 고통은 심각하다. 실제 직장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따돌림을 당해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다 병원을 찾는 직장인이 의외로 많다”며 직장 내 따돌림의 심각성에 대해 말했다.

문제는 불황으로 고용안정성이 낮아지고 직장 내 경쟁이 심화되면서 동료를 따돌리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는 데 신경을 쓰느라 소외받는 동료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팀워크의 저해로 이어지고 업무와 생산성에도 방해요소가 돼 사내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해 상담활동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도 적지 않다.

“내 살길 찾기도 바빠”
불황으로 따돌림 증가

전문가들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높아지고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서 직장 안에서의 따돌림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당사자는 참거나 쉬쉬하려 하지 말고 상사나 전문의 등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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