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고 여성들의 의상이 가벼워지면서 지하철 성추행범들도 덩달아 날뛰고 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시간은 젊은 직장여성이 많고 혼잡한 출퇴근 시간. 그중에서도 2호선은 성추행범들이 가장 좋아하는 범행 장소다. 승강장에서부터 목표물을 점찍은 성추행범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신만의 유희를 즐긴다. 이들 성추행범으로 인해 오늘도 지하철을 타는 여성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지하철 성추행범들은 순간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꾼’들은 그렇지 않다. 승강장에서부터 타깃을 정한 뒤에 같은 칸에 타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강장에서부터 ‘계획적’
지하철수사대 한 관계자는 지하철 성추행범들의 습성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습관적으로 성추행을 하는 상습범일수록 치밀한 계산을 하고 범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다 현행범으로 잡힌 양모(36)씨는 승강장에서부터 성추행을 할 여성을 점찍은 뒤 동승을 하고 범행을 저지른 케이스다. 양씨는 지난 7월21일 출근시간, 서울 신도림역에서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을 발견한 뒤 추행을 하겠다는 심산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 안에서 그 여성만을 주시하던 양씨. 그러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목표물(?)을 놓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르기란 쉽지 않은 일. 아쉬운 대로 그는 자신의 옆에 있던 여성(23)의 등 뒤에 서서 자신의 성기로 엉덩이를 비비는 성추행을 하다 사복경찰관에게 덜미를 잡혔다.
기온 오르고 노출의상 여성 늘면서 성추행범도 덩달아 기승
수치심에 신고 꺼리는 여성들의 심리 노려 대담하게 성추행
이 같은 성추행범들의 습성은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가 밝힌 조사결과에도 나타난다. 검거된 성추행 사범의 대부분은 승강장에서 장시간 대기하다가 성추행을 저지를 여성을 결정한 뒤 같은 칸에 승차했다. 그리고 마치 지하철 안이 혼잡해 밀착된 것처럼 여성에게 다가가 성추행을 저질렀다.
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기온이 올라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많은 계절이 되면 성추행범들이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검거된 성추행 사범 345명을 분석해보면 여성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4월에 78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범들이 가장 선호하는 범행시간은 지하철 안이 혼잡한 출퇴근 시간. 검거된 성추행범 중 65.1%가 출근시간에, 25.2%가 퇴근시간에 범행을 저지르다 덜미를 잡혔다.
이들의 주 무대는 지하철 2호선. 2호선의 경우 젊은 직장여성들이 많은데다 다른 노선보다 출퇴근시간에 복잡해 범행하기가 쉽다는 이유에서 성추행범들이 선호하는 노선으로 꼽힌다. 전체의 61.7%인 213건이 2호선에서 발생했다. 검거된 성추행범의 나이를 살펴보면 30대 남성이 가장 많았다. 44.6%인 154명이 30대인 것으로 나타난 것. 뒤를 이어 20대는 26.4%, 40대는 20.9%를 차지했다.
성추행범의 대부분은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성추행을 저질렀으나 지하철역 안에서 성추행을 저지르다 검거된 경우도 18%(62명)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폐된 공간인 지하철이 아닌 지하철역도 성추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직접적으로 신체를 접촉하는 성추행에 이어 최근 급증하는 수법은 몰래카메라 촬영이다. 지난해 38건이었던 몰래카메라 사범이 올해는 65건으로 크게 늘어 여성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증거 있어도 처벌 ‘어려워’
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고모(33)씨는 지난 6월13일 명동역 승강장에서 여성들의 특정 부위를 몰래 촬영하다 덜미를 잡혔다. 고씨는 가방 안에 디지털 카메라를 고정시킨 뒤 지하철을 타는 여성들의 치마 속 등을 51회에 걸쳐 촬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지하철역 안의 화장실이나 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여성들이 소변을 보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고씨가 몰래 동영상을 찍은 횟수는 무려 119회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모(34)씨도 몰카를 찍다가 덜미를 잡힌 경우다.
조씨는 지난 6월11일 이수역 안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여성들을 뒤따라가 휴대폰 카메라로 6회에 걸쳐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처럼 몰카 촬영범 중에는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들이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료사이트 등에 판매할 가능성도 높아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당할 우려도 높다.
이처럼 각종 방법으로 지하철을 타는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성추행범들. 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대담한 수법으로 여성들을 농락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치심에 신고하기를 꺼리는 여성들의 심리 때문이다. 특히 바쁜 출근시간에는 주위에 알리거나 신고를 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꺼리는 여성이 많아 성추행범들이 더욱 당당하게 범행을 할 수 있게 한다.
지하철수사대 한 관계자는 “성추행은 친고죄인 탓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성추행범을 잡을 수 없다”며 “일부 여성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수치심 등의 이유로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어 검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날이 더워질수록 성추행범들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릴 것을 대비해 지하철수사대는 8월31일까지 성추행범을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성추행사범에 대해선 예외 없이 현행범 체포 또는 긴급체포하고 성폭력 전과가 있거나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보다 엄정하게 지하철 성추행에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