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같은(?) 내 재산 돌리도!”

2009.07.28 09:18:52 호수 0호

노태우 형제 재산 다툼 법정 현장 <지상중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생 재우씨 측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재산 찾기’ 소송 항소심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증인으로 나섰다. 그동안 재우씨 측을 상대로 3건의 소송을 진행했지만 각하되거나 패소하는 등 성과를 내지 못하자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김 여사가 직접 나선 것. 김 여사의 법정 출두는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수많은 취재진이 내내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409호에서 서울고법 민사18부 심리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생 재우씨의 냉동창고업체 (주)오로라씨에스의 소유권을 둔 소송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자금 120억원으로 설립한 오로라씨에스를 되찾아 추징금을 내겠다며 동생 재우, 조카 호준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주주지위확인 등 3건의 민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 1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각하했다. 1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동생에게 돈에 대한 구체적 관리 방법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소송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 3건에 대해 모두 항소했으며 이날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 것.

증인석에 선 전 영부인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부인 김옥숙 여사가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판을 향한 열기는 뜨거웠다. 김 여사는 법원 지하에서 바로 올라오는 방법으로 취재진의 플래쉬 세례를 피했다.


검은색 정장에 둥근 금테 안경을 쓴 채 재판장에 나타난 김 여사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아들 재헌씨 등 측근과 경호원, 법원 측 경호원 5~6명이 김 여사와 함께 법정에 머물렀다.

증인석에 앉은 김 여사는 원고인 노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의 질문을 받았다. “1989년 청와대에서 재우씨에게 창고업체 설립을 지시했느냐” “업체 운영 상황에 대해 수시로 재우씨의 보고를 받았느냐” “매년 2억원의 이익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했다.

그는 “(오로라씨에스가 노 전 대통령 것이라는 게) 사실이 아니면 제가 왜 이 자리에 나왔겠냐”면서 “(재임 당시) 청와대 관저에서 업체 설립에 대한 내용을 구두로 보고받았다. 퇴임 후에는 원고(노 전 대통령) 지시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서면 보고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자녀들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으며 “설립 과정에서 몇 차례에 걸쳐 투자금이 건네졌고 업체의 운영 상황도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에 머무를 때는 노 전 대통령이 바빠서, 퇴임 후에는 비자금 사건으로 실형을 받거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김 여사가 냉동업체와 관련된 일을 중간에서 처리해왔다.

김 여사는 이날 다양한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나는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면서 1989~1991년 사이 재우씨에게 돈을 건네줄 때마다 액수와 날짜를 적어둔 자신의 노트를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김 여사의 노트에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재우씨로부터 회사 수익금 가운데 2억원을 받은 내역도 적혀 있었다.

김 여사는 “비자금 수사 당시 가택수사를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1995년 이전 노트는 파기해 버렸다. 노트에는 개인적인 내용까지 담겨 있다”면서 노트 중 일부만 제출했다.

또한 노씨에게 회사 상황을 보고 받을 때 건네받았던 손익계산서 등 오로라씨에스의 회계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 여사는 재판 내내 여유롭게 답변을 이어갔으며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우씨가 오로라씨에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부분에 이르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이 재우씨에게 회사를 돌려줄 것을 요청하자 재우씨가 “이제부터 형수(김옥숙)는 이쪽(오로라씨에스) 일은 잊어라. 내가 형님 때문에 크게 고생했으니 회사는 나에게 준 것으로 하라”고 말한 데 대해 “기가 막혔다”고 회상한 것.

또한 재우씨 측 변호인이 1995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건강 문제에 대해 거론할 때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재우씨 측 변호인들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는 별개로 증인(김옥숙)이 따로 비자금을 조성한 건 없는가” “자녀들 명의의 비자금 규모는 얼마나 되느냐” “노 전 대통령은 언제부터 몸이 안 좋기 시작했느냐”고 하자 “그걸 왜 나에게 묻냐”며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시간30분여의 증언을 마치고도 김 여사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김 여사가 자리를 뜰 것으로 여긴 취재진이 사진 촬영 등을 위해 한차례 부산을 떨었으나 김 여사는 “재판을 다 보고 가겠다”며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증인으로 나선 한영석 전 장관은 처음으로 사건과 관련된 비화를 밝혔다. 한 전 장관은 “사이가 좋았던 형제간의 일인지라 탄원서를 보내기 전 재우씨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뭘 만나냐’라고 하기에 전화로 ‘협박이라 생각하지 말고… 칼이 나갑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양가를 위해…(좋게 일을 처리하자)’라고 했다. 재우씨가 ‘어째? 그럼 영부인도 성할 줄 알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증언 끝내고도 자리 지켜

그는 자유발언에서 “당시 돈으로 200억이라는 돈을 그냥 줬으면 ‘천사’다. 천사는 반환해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준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라면서 “20년 전 200억을 그냥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우씨가 ‘돌려주기 싫다’고 하는 것이지 ‘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6시20분경 재판이 마무리되자 김 여사는 경호원과 측근들에 쌓여 법원을 나섰으며 다음 재판은 9월9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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