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기점으로 친노 진영의 정치 행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친노진영의 민주당 복당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친노 복당의 ‘운’을 띄우고 정세균 대표가 10월 재보선 전, 늦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친노 진영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서부터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가 복당을 약속했다는 말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생각한다면 친노 진영도 복당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DJ 회동에서 ‘운’ 띄운 친노진영 복당 문제 논의 가속화
노무현 49재 후 부활 날갯짓… 정세균·이해찬 복당 합의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폐족으로 몰렸던 친노 진영의 상황이 단번에 역전됐다. 민주당 안팎에서 미운 오리새끼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백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친노 복당에 대해 냉소하던 민주당의 상황도 달라졌다. 정세균 대표는 “평화민주개혁 세력이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면서 “분열하고 힘을 분산시키기보다는 힘을 모으는 노력들을 하기 위해 49재가 끝나면 (친노와) 소통을 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거 후 형세 역전
‘친노’ 잡으려 아우성
더 나아가 “아무리 늦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힘을 모아야 할 것이고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면서 친노 복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 대표는 “우리가 제일 큰 세력 아니겠느냐”며 신당창당 등 친노 진영의 독자세력화보다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복당을 거론하면서 “필요하면 기득권도 버릴 각오”라고 말했다. 친노와 힘을 합치기 위해서라면 ‘기득권’까지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민주당과 함께한 인사들이 복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면서 동질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 내 인사들도 적극적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 49재가 끝나면 친노 인사들을 끌어안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정식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자기 몸을 던짐으로써 국민과 민주개혁 진영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고 남겨진 메시지가 민주개혁 진영이 대동단결하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친노 그룹 복당, 정동영 복당 문제는 민주개혁세력 대통합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그 틀 안에서 친노 인사 복당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민주개혁 진영 대통합 결집을 하는 데 친노 비노 반노 등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며 “이런 구분과 잣대를 탈피해 대통합이라는 하나의 원칙에 의해 서로 연대하고 통합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러브콜’의 배후에는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 외에도 당장 있을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일정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친노 진영 인사들의 지지율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당내 한명숙 전 총리는 물론 유시민 전 장관과 문재인 전 실장은 차기 대선주자 혹은 지자체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스타급’ 인재인 셈이다. 또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싸웠던 ‘바보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들에게 영남 지역을 맡아달라는 속내도 포함돼 있다. 실제 이들의 지지율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시사IN>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함께한 조사에서 유시민, 한명숙 등 친노 후보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내에서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는 한 전 총리가 확정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차기 대권주자와 서울시장, 대구시장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6월25일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38.6%)에 이어 유 전 장관이 13.8%의 지지를 얻어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 뒤를 이어 정동영 의원(12.3%), 정몽준 최고위원(6.6%), 이회창 총재(5.1%), 손학규 전 대표(3.5%), 김문수 지사, 오세훈 서울시장(3.3%) 순으로 나타났다. 유 전 장관이 지난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 저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대구시장 출마설도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영남일보>의 차기 대구시장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유 전 장관(15.7%)은 김범일 현 대구시장(29.3%)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나라당 서상기(10.0%), 유승민(7.3%) 의원을 가뿐히 제친 수치다.
“이리 오라” 손짓 뒤로
‘스타급’ 인재영입 속내
당내 한 인사는 “유 전 장관이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출마해 당선되면 향후 대권 행보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점쳤다. 박지원 의원은 “유 전 장관과 이해찬 전 총리가 민주당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면서 “민주당으로서는 부산 지역에 문 전 실장 같은 국정 경험과, 인격을 가진 분이 출마를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문 전 실장의 부산시장 출마를 부추겼다.
문 전 실장은 10월 재보선에서 경남 양산에 출마하는 방안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설이 제기되고 있다. 문 전 실장은 “난 정치 안한다”고 잘라 말했지만 그의 현주소이기도 한 경남 양산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그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부산에서 나설 경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어 주변의 부추김은 더해지고 있다.
리얼미터의 부산시장 가상대결 조사에서 문 전 실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여권 후보들을 제치고 허남식 현 부산시장(39.3%)을 바짝 뒤쫓았다. 한나라당 텃밭이어서 민주당의 세가 약한 곳인데다 이미 정당지지율 등에서 ‘노무현 서거 효과’가 사라진 후의 결과라는 점에서 ‘승산’을 기대할 만한 수치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문 전 실장에게 사람을 보내 양산 출마 의사를 타진했다는 말도 나온다.
김두관 전 장관도 10월 재보선과 경남도지사 출마설 중심에 있다. 김 전 장관은 한 여론조사에서 26.7%의 지지율을 보여 김태호 현 경남지사(41.5%)와 14.8%의 격차를 보였다. 민주당의 애달픈 구애에도 친노 진영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 전 총리는 친노 복당론이 나돌자 마자 “복당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데 이어 “나는 지금 재야에 있다”는 말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정세균 “지방선거 전 친노세력 복당 문제 논의할 것”
친노 거물인사 2010년 지방선거서 전국 무대로 뛴다
유 전 장관도 복당론에 대해 “그런 얘기가 있는 것은 알지만 전혀 논의해보지 않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자신의 지방선거 출마설, 복당 등에 대한 소문이 확산되자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는 말로 입을 닫았다. 그러나 민주당과 친노 진영의 연대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와 이 전 총리의 ‘복당합의설’도 나오고 있다. 정 대표가 친노를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
아직까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설’일 뿐이지만 당내 인사들은 복당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민주당뿐 아니라 친노 진영도 내년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복당하지는 않겠지만 외부 강연 활동과 계간지 <광장> 발행과 정책 연구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한 뒤로 발언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었다.
유 전 장관 측도 당분간 강의와 집필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제를 올릴 때마다 봉하마을 정토원을 찾고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농사를 시작할 때도 참석하는 등 ‘후계자’ 이미지를 굳히는 데는 정계 복귀 이상의 의미가 숨어있으리라는 짐작이다.
이 외에도 몇몇 친노 인사들은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송인배 전 사회조정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첫 번째 선거인 이번 보궐선거에서 제대로 싸워보고 싶다”면서 10월 재보선 출마 의지를 다졌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철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그것을 빈정거리고 하류취급하면서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수모를 안겨줬던 사람들, 세력들과 제대로 싸우고 싶다”면서 “기왕이면 박희태 대표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청정회’도 현실정치 참여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들은 청우회(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모임)나 참정회(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과 장관 모임)와는 달리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권으로 입성하겠다는 것이다.
쌀쌀한 친노 분위기
지방선거 생각하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와 유 전 장관 등이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지만 넓게 보면 ‘진영’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많은 인사들이 함께하고 있다”면서 “친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국 조직과 자금력을 갖춰야 한다. 그것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민주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두 사람 살아남으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창당을 하던 민주당으로 들어오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며 “거대야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연대’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