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리 권력 놓고 이상득, 이재오 1승1패 “쉽지 않네”
박근혜·김무성 친박 내전…“변치않는 항심”“권력 나눠야”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에서 2인자들의 권력암투가 치열하다. 2인자는 최고 권력자 곁에서 일정 부분 권력을 양도받아 ‘대리 정치’를 하지만 현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집권 초임에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는 이명박 대통령 외에 박근혜 전 대표라는 차기 대권주자가 버티고 있다. 대부분의 최고 권력자가 권력누수를 우려, 2인자를 두지 않으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의도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들의 뒤에 선 또 다른 2인자들이 당권을 놓고 실질적인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오른손’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역대 권력에는 항상 2인자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뜨고 지면서 사람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자들 곁에는 ‘2인자’라고 특정 지을 만한 이를 꼽기가 애매하다.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차기 권력’을 노리는 박근혜 전 대표 모두 2인자를 두지 않는 인사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고권력 위협하는
2인자 ‘NO’
이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는다. 그는 젊은 나이에 현대가 사람들이 들어찬 현대건설에서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배신으로 인해 ‘2인자’ 자리를 용납하지 않게 됐다는 후문이다.
인사스타일 자체도 2인자와는 거리가 멀다. 최측근에 대해서는 사람을 가리는 편이지만 ‘의리’보다는 업무능력이 인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능력만 있다면 출신성분에 대해서는 그리 따지지 않는 편이다.
실제 지난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뒤 당시 서울시 고위 관계자로부터 선거운동 기간에 자신을 반대했던 공무원들의 명단을 적은 ‘살생부’를 건네 받았으나 이를 끝내 펴보지 않았다고 한다. “나에게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내친다면 결국은 내가 손해일 것이다. 내 기준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업무에 관한 부분에서도 한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며 하나하나 챙긴다. 때문에 청와대 입성 후 참모진들끼리 ‘대화’가 되지 않아 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뒷말도 흘러나왔다.
‘왕비서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군기’를 잡기는 했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그림자 실장’으로 등장하면서 청와대도 많이 조용해졌다는 평이다. 청와대 자체도 적응기간을 거치면서 점차 안정을 찾게된 것이기도 하지만 정 실장이 “대통령실장은 ‘그림자’ ‘브레인’ 역할이 기본이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야 한다”면서 내부 조율에 매진,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 주효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점차 안정을 찾은 청와대와는 달리 당을 책임질 실질적인 2인자를 둔 막후의 ‘혈투’는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막이 오른 권력 갈등은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리형’ 대표라고 불리는 박희태 대표 뒤로 당을 장악한 건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다. ‘싸움’이 끝난 자리에 야전사령관보다는 깊어진 당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사형통’ ‘상왕’ ‘영일대군’이라는 호칭은 당의 ‘실질적인 권력’이 이 이원에게 있다는 사실을 가늠케 한다.
18대 총선 공천 개입 논란이 일면서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이 의원에 대한 퇴진운동이 벌어졌다.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 ‘55인 서명파동’으로 이 의원을 겨냥한 것. ‘55인 서명파동’ 뒤에는 정두언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이 있었다. ‘여당’ 내 권력투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셈이다.
또한 정두언 의원은 ‘권력사유화’ 발언으로 ‘왕비서관’과 이 의원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형님’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의원이 1승을 거뒀다. 정두언 의원은 한동안 칩거 아닌 칩거를 했고 이 전 의원은 미국으로 떠났다.
당권을 둔 2차전은 4월 재보선 후 나타나고 있다. 당의 ‘실질적 대표’였던 이 의원이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안고 물러선 것.
거대여당 사령탑 필수
상왕과 야전사령관의 혈투
이 의원은 “지금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정부여당과 정무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신을 하겠다”면서 “정치현안에서는 멀찌감치 물러나 있겠다”는 결심을 전했다.
반면 사무총장과 여의도연구소장 등 당 요직에 이재오계 핵심 인사들이 포진하면서 ‘이 전 의원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일단 정상에 오르면 다른 사람을 위해 내려가야 하며, 이는 권력도 마찬가지”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2차전의 승자를 가리기에는 이르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의 2선 퇴진 선언은 ‘앞으로 들키지 않고 더 섬세하게 한나라당을 조종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면서 이 의원의 ‘숨은 권력’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이 전 의원의 당권 장악론이 나오고 있지만 쉽지 않다”면서 “이 전 의원의 복귀가 ‘화합책’이 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친이, 친박계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이 전 의원이 복귀를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 무산 뒤
박근혜·김무성 어색한 만남
한나라당 내에서 또 다른 하나의 세력으로 분류되는 친박. 차기 대선주자이자 친박계의 수장인 박근혜 전 대표도 2인자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 시절 청와대에 들어간 이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곁에서 ‘권력의 속성’을 익히 봐온 박 전 대표는 2인자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친박계도 박 전 대표의 정치철학 등에 인식을 같이해 따르는 이들을 칭하는 것일 뿐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좌장’이라는 호칭도 박 전 대표보다는 친박계 안팎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친박계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꼽히는 이는 김무성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친박계 의원들을 규합, ‘무소속연대’로 이끌었다. 이후 무소속연대 의원들이 당에 복당하면서 ‘좌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 ‘숨죽이자’는 박 전 대표와는 달리 김 의원은 “이제부터 할 말은 하겠다”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또한 친이에서 친박과의 화합책으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일자 수용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 의원의 공식적인 발언은 없었지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제안과 이 대통령의 수락 뒤에는 김 의원과의 사전 합의 혹은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은 박 전 대표의 일성으로 끝났다. 박 전 대표가 미국 일정 중 “당헌 당규를 어겨가며 그런 식으로 원내대표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라며 ‘원내대표 추대론’을 일축한 것.
김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뜻에 따라 외국으로 출국하면서 “(박 전 대표에게) 내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다”라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친박계는 수장과 좌장의 갈등설에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진했다. 5일 친박계 복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여의포럼’ 기념세미나에서였다. 그러나 어색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은 흔하고 쉬운 일이지만, 꾸준히 이어지게 하는 일은 어렵다. 여의포럼이 이처럼 변치 않는 ‘항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 의원은 “영웅의 시대는 지나갔다. 얼마나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지, 그 시스템에 능력있는 사람이 얼마나 참여하는지가 국민의 선택 기준”이라면서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은 대통령 등 지도자가 새겨들을 일”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 주변에서 인사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계 핵심이 과거 ‘세’를 떨쳤던 중진에서 참모그룹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
정치권 인사들은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의 상황 인식이 충돌하면서 김 의원에게 친박 내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을 수 있다. 또한 ‘좌장’이라고 불리지만 ‘장관 입각설’ ‘원내대표 추대론’이 나올 때마다 번번이 무산되면서 생긴 불만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김 의원이 친박계의 ‘기둥’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면서 “큰 틀에서 박 전 대표와 행동을 같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