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핵실험 후 이틀 연속 단거리 미사일 발사 초강수
겉으로는 PSI 참여 불만, 속내엔 강성대국 건설
김정일 건강이상설 따른 후계구도 기반 다지기
북한의 도발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지하 핵실험을 한 데 이어 동해에서 단거리 미사일 3발을 발사했으며 26일 다시 동해안에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핵실험과 이틀 연속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초강경 카드를 빼든 것이다. 서해지역에서 또 다른 단거리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등 북한의 행동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대북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던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 구축 등의 속내도 읽히고 있다.
남북관계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한 데 이어 이틀 연속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반도 긴장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잔인한 4월 이후
남북 사이에 찬바람만
북한은 지난달 25일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즉각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은 지난 3월부터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징후를 계속 추적해왔지만, 실제 폭발이 이뤄진 시점은 즉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핵실험 사실은 기상청과 지질자원연구소를 통해 확인됐다. ‘북한 핵실험에 따른 군 상황조치 문건’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전 9시54분 기상청과 지질자원연구소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규모 4.5의 인공지진을 감지했다. 이러한 사실은 외교통상부를 통해 청와대로 전해졌고 곧 국가안정보장회의(NSC) 소집 지시가 내려졌다.
북한의 핵실험을 확인한 군은 전군에 경계강화 지시를 내렸으며 12시3분에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실험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 핵실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29분 전 중국에, 24분 전 미국에 핵실험 사실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핵실험 가능성을 경고 받은 중국과 미국도 북한이 곧바로 핵실험을 강행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북한의 우방인 중국은 제외하더라도 북핵과 관련 공조를 이루고 있는 한미관계를 고려했을 때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안 시점에서 정부도 이를 인지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북한의 핵실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정부가 이를 발표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관측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해 알릴 경우 되려 ‘물타기 정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 서거 중 핵실험
남한 PSI 전면 참여 불만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북풍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공지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핵실험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며 “군사분계선 인근에 설치된 군의 지진파 감지시설만으로 원거리에서 진행되는 북의 핵실험을 감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한 날에서 멀지 않다. 북한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하고 조전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실험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과 관련, 북한의 의도를 짚어내기도 했다.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전을 보내고 연이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단행한 것은 우리 사회의 내부 분열을 노린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평화모드’를 이어갈 바람막이가 하나 사라졌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핵실험은 한두 시간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오랜 계획에 걸쳐 진행된 실험’ 쪽에 무게를 뒀다.
북한이 내세우는 군사행동의 이유는 남한의 PSI 전면 참여에 대한 불만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 “PSI 전면참여를 선언하면 대북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던 만큼 우리 정부의 PSI 참여가 본격화되자 무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도 지난달 27일 군사적 행동에 대해 “(남한의 PSI 전면 참여에)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교전대상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 된 조선정전협정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명백한 부정”이라며 “미국과 이명박 역적패당은 조선반도 정세를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군대도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 맞춘
강성대국 건설 시나리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도 지난달 26일 PSI 전면 참여를 승인하는 것으로 북한의 도발에 맞대응했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 확산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2009년 5월26일자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PSI 원칙을 승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종전보다 더 큰 규모의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도 발사한 만큼 더 시간을 늦출 명분이 없다”고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움직임에 동조하면서 북한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진 단계별 움직임이라는 시각이 상당하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충분히 예견돼 있던 하나의 시나리오에 따른 행위”라고 강조했다.
공 최고위원은 “통미봉남을 통한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해서 지금리로 진행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며 “이번 핵실험을 통해서 남남갈등을 통한 소위 대미협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그런 고도의 전략적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인 황진하 의원도 “우리가 전작권을 이양하기로 한 2012년은 대선이 있고 북에서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 건설 목표를 완료하는 해”라며 “한국과 미국이 선거를 치르면서 분위기가 산만하고 안보가 취약한 시기를 타 북한은 강성대국 완성을 꾀하기 때문에 2012년이 적절한지 정치적, 군사적 판단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태도 변수로 작용했다. 올해 들어 김 위원장은 ‘건강이상설’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미 사망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부쩍 수척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하반기 건강 문제로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김 위원장이 건강 회복 후 체제 공고화에 본격 나서면서 2012년 강성대국 건설에 대한 조급한 속내가 드러나며 생긴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 4월 로켓을 발사한 뒤 헌법을 개정하고 국방위원회를 대폭 강화했다. 개정 헌법은 김 국방위원장을 ‘국가 최고지도자’로 명기하고 있으며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국방사업이 아닌 “국가 전반의 사업을 지도한다”로 해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후계구도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도 드러나고 있다. 핵실험과 로켓 발사는 후계자의 치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자주 거론되는 이는 셋째 아들 정운이다. 형인 정철이 노동당의 업무를 보는 것과는 달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후계승계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의 군사행보는 정운과 연결된다. 지난달 25일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을 공식 발표하면서 주민동원 캠페인 ‘150일 전투’를 언급했다. ‘150일 전투’는 정운이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핵실험이 후계 구도와 관련됐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배경을 ‘내부 문제’에서 찾았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정확한 내부 소식은 알 수 없지만 대내외 대북 소식통들에 의하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북한이 후계자 승계 작업에 착수했다는 내용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후계 승계 과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내부적 혼란에 대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운 체제’ 구축 속내
외부와 충돌로 잡음 막아
한 군사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영웅적 행위가 아니냐는 시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이 경우 급격한 정세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대북전문가도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 후계자 승계과정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거론했다. 그는 “외부세력이 북한의 승계과정을 이용하고 개입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표현”이라며 “북한이 ‘핵 억지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 북한 연구자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국방위원회의 권위를 높여 ‘정운 체제’로 원활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권력 승계기의 내부 결속과 대외 과시, 추후 진행될 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 등 다목적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은 지금까지 핵보유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핵실험이 이뤄졌고 이는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불안한 관계를 이어온 남북관계와 미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인 ‘압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