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안팎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간 ‘파워게임’이 벌어지는 정황이다. 그동안 업계에선 ‘MB인맥’을 등에 업은 인사들이 대우증권 사장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물밑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하지만 사장직 임기가 1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이라 소문은 이내 쏙 들어갔다. 이도 잠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수장의 돌연 교체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갖가지 추문들이 다시 떠오르는 양상이다.
김성태 전 대우증권 사장이 돌연 사퇴했다. 대신 빈자리에 임기영 IBK투자증권 사장이 내정됐다. 대우증권은 다음달 초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임 내정자를 정식 선임할 예정이다.
대우증권 대주주인(지분 39% 보유) 산업은행 측은 “김 전 사장이 개인상의 이유로 사임을 표명했다”며 “이에 따라 IB(투자은행) 전문가를 물색한 끝에 IBK투자증권 사장을 지낸 임 내정자를 사장 단독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압에 못 이겨…’
그러나 대우증권 사장의 조기 교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김 전 사장이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물러난 점과 2007년 5월 취임한 이후 지난 2년간 경영 실적이 양호한 점에서다.
대우증권 노조는 “김 전 사장이 실적이 우수한 데도 불구하고 임기 도중 하차해야 하는 납득할 만한 명확한 이유가 뭐냐”며 반발하고 있다. 대우증권 홍보실조차 “이번 사장 퇴임과 선임 배경을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오는 9월 지주회사 전환을 앞두고 분위기 쇄신과 시너지 제고 등을 위해 ‘교체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선 대우증권 안팎에서 벌어진 ‘파워게임’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임 내정자의 낙하산 논란과 맞물린다. 결국 ‘기싸움’에서 진 김 전 사장이 외압에 못 이겨 스스로 꿈을 접는 모양새를 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임기 1년 남기고 돌연 ‘수장 교체’ 의문 증폭
주류-비주류 ‘줄대기 전쟁’…“낙하산만 산다”
사실 그동안 업계에선 ‘MB인맥’을 등에 업은 인사들이 대우증권 사장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물밑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처지가 뒤바뀐 전·현직 사장의 막후 인맥들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임 내정자는 살로먼브러더스와 도이치증권 등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삼성증권, IBK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를 두루 거친 IB전문가로 꼽힌다. 대우증권 차기 사장으로 IB(투자은행)전문가를 물색한 민유성 산업은행장의 ‘입맛’과 딱 맞아떨어지는 조건이다.
그러나 임 내정자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보면 낙하산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이명박 정부와의 연결고리가 그것이다.
임 내정자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경제특위 특별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친분을 쌓았다.
곽 위원장은 지난해 8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임 내정자가 당시 사장을 맡은 IBK투자증권 출범식에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또 임 내정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도 1998년 이 대학에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연수를 떠난 적이 있다.
김 전 사장도 MB정부로 통하는 ‘줄’이 있다. 김 전 사장은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씨티은행, 뱅커스트러스트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20여 년간 근무했으며, LG투자증권 사장과 흥국생명보험 사장 등을 역임했다.
겉으론 지역색, 출신대학 등 MB정부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바로 김 전 사장 부인이 소망교회 신자로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평소 친자매처럼 지낼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김 전 사장도 ‘대우맨’ 손복조 전 사장을 밀치고 대우증권 수장 자리를 꿰찰 당시 산업은행은 물론 경제부처 고위 인사들과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비 대우맨’ 출신들의 등용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물 먹은 대우맨’들도 눈에 띈다. 김호경 산은자산운용 사장과 박승균 부사장이다. 이들은 MB정부와 뚜렷한 인연이 없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김 사장은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를 나와 1984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영업, 인사, 홍보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정통 대우맨’이다.
그러나 홍보담당 전무를 맡고 있던 중 외부 인사인 김 전 사장의 부임과 동시에 자문역으로 한 발 물러났다가 지난해 6월 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자산운용 사장으로 보란 듯이 복귀했다. 그나마 김 사장의 대구·경북(TK) 출신 배경이 ‘약’이 됐다는 평이다.
하지만 당초 대우증권 내부 인사 중 차기 사장으로 가장 유력했던 박 부사장은 MB정부로 통하는 이렇다 할 라인이 없다. 2007년 3월 전무에서 승진한 박 부사장은 1983년 입사 이래 대우증권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었다.
물 먹은 ‘정통 대우맨’
증권가 관계자는 “대우증권 전·현직 사장은 현 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며 “내부 인사들의 등용이 막힌 것도 인맥 부재 탓으로 볼 수 있는데 MB정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해서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사장 인선에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