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의 지주사 격인 ㈜코오롱이 패션 자회사 FnC코오롱을 흡수합병한 배경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회사 측은 미래 성장기반 확보와 경영효율성 증대, 그리고 재무구조 개선 등 ‘뻔한’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깊은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과연 코오롱그룹의 노림수가 뭘까.
지주사 지배구조 정점 ‘굳히기’…순환출자 해소
이웅열 회장 아킬레스건 제거 그룹 장악력 강화
최근 ㈜코오롱이 오는 8월 FnC코오롱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코오롱은 코오롱그룹의 지주사 격으로 화학·소재 전문 제조업체이며, FnC코오롱은 아웃도어브랜드 코오롱스포츠와 골프의류 엘로드, 남성복 맨스타 등을 운영하는 패션·의류업체다. ㈜코오롱은 이번 합병으로 연매출 2조5000억원대로 몸집을 키우게 됐다.
이웅열 파워 세졌다
코오롱그룹 측은 “수출 중심의 산업재 부문과 지속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갖춘 내수중심 소비재 부문이 합쳐져 안정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며 “미래 성장기반 확보와 경영효율성 증대, 그리고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코오롱그룹은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해 지주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게 됐다. FnC코오롱은 ‘FnC코오롱→코오롱건설→코오롱글로텍·하이텍스→FnC코오롱…FnC코오롱→캠브리지ㆍ코오롱패션→코오롱하이텍스→FnC코오롱’으로 이어지는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중심에 있다.
결국 ㈜코오롱이 FnC코오롱과의 합병으로 다소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동시에 수년간 진행해온 지주사 요건에도 바짝 다가선 셈이다. 공정거래법상 코오롱그룹이 지주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코오롱이 상장계열사 지분 20%, 비상장계열사 지분 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코오롱은 현재 상장사 코오롱건설 14.88%, 비상장사 코오롱제약 43.76% 등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코오롱으로선 지분율 미달인 코오롱건설의 지분 부족분을 FnC코오롱을 통해 채울 수 있게 됐다. FnC코오롱은 코오롱건설의 지분 5.32%를 갖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지주체제를 갖추기 위해 2007년부터 ㈜코오롱과 코오롱유화㈜를 합병하고 코오롱글로텍을 분할하는 등 그룹 내 계열사간 지분을 정리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그룹 장악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주체제 전환시 이 회장의 경영권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코오롱을 통해 그룹 전체 자회사들을 지배할 수 있는 탓이다.
㈜코오롱은 공정거래법(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및 자회사의 주식가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으로 규정한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으로 봤을 땐 3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 사실상 코오롱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코오롱은 이번에 합병한 FnC코오롱(85.43%)을 비롯해 코오롱건설(14.88%), 코오롱아이넷(31.72%), 코오롱글로텍(53.83%), 네오뷰코오롱(99.73%), 코오롱플라스틱(100%) 등 주요 핵심 계열사들의 최대주주다.
이 회장은 ㈜코오롱 지분 16.56%를 보유해 최대주주다. 여기에 이동찬 명예회장(2.85%) 등 특수관계인과 자사주(9.74%), 우호지분(일본 도레이·11.85%)까지 합치면 40%를 넘어선다. 이 회장은 순환출자구조의 중심인 FnC코오롱의 지분이 0.83%에 불과해 전체 지배구조에서 아킬레스건으로 꼽혔지만, ㈜코오롱의 흡수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큰 무리가 없게 됐다.
이 회장 일가의 후계구도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룹이 지주체제로 전환되면 경영권 승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질 수 있다.
이 회장은 부인 서창희씨와의 사이에 1남2녀(규호-소윤-소인)를 두고 있다. 올해 24세인 외아들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각각 21세와 19세인 두 딸 소윤·소인씨도 미국에서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코오롱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 회장은 평소 “억지로 대물림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나 재계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이 회장이 ‘지휘봉’을 자녀들에게 넘긴다면 자신의 ㈜코오롱 지분만 상속 또는 증여할 경우 그룹 지배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 회장이 ㈜코오롱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거의 싹쓸이한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업계에선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BW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 기업이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우선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240만 주가 넘는 ㈜코오롱 BW를 확보했다. 이를 전량 주식으로 바꾸면 이 회장은 현재 지분율에서 2배 정도가 증가한 30%대의 ㈜코오롱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경영권 승계도 용이
코오롱그룹 측은 “지주체제로의 전환은 추진 중이지만 정확한 시기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이 회장이 올해 53세로 아직 경영에서 물러날 시점이 안 됐을 뿐더러 자녀들도 경영에 참여하기에 이른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