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여인’ 박근혜 ‘독자 행보’ 속내

2009.05.19 09:51:06 호수 0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이 내민 손을 세차게 거부했다.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론’을 거부하고 마이웨이 행보를 걷고 있는 것. 원내대표에 뜻을 보였던 김 의원에게 강력한 반대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집안 단속을 하는 한편, 소장파의 당 쇄신안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당대표 때 실천했던 일인데 새삼스럽게 나온 걸 보면 그게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당 운영시스템이 망가졌음을 비판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파괴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귀국 후 침묵행보로 일관하고 있지만 정가는 그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서 숨은 뜻을 읽어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명실상부한 최강 비주류로 떠올랐다. 친이계에서 제기돼 이명박 대통령까지 고개를 끄덕인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론’을 단칼에 거절한 것.



박 전 대표는 경선에 뛰어든 이들이 있는데 친박계 인사를 원내대표에 추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원내대표 추대론’을 반대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화합책으로 거론된 ‘원내대표 추대론’이 흔들리면서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도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류보다 센 비주류
말 한마디 속 파괴력 최강

하지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원내대표에 대한 의지를 보였던 김무성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 박 전 대표의 의지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는 물 건너갔다.

박 전 대표의 단호한 ‘잘라내기’에 대해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박 전 대표의 거절은 일견 ‘과정’을 문제 삼은 것처럼 보이지만 친이계와 같은 배를 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친이 친박계의 갈등을 봉합할 화합책으로 내밀어진 ‘김무성 추대론’은 친이와 친박의 갈등을 전제로 한다. 친박계와의 불화로 인해 당이 재보선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친박이 당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고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6월 국회에서 ‘친박 역할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박 전 대표가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박이 당의 일에 발목 잡은 것이 뭐가 있느냐”고 항변하면서 주류측의 상황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친박 인사의 ‘추대론’이 현실화됐을 때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자기정치’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던 김 의원이 거대 여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으면서 똘똘 뭉쳤던 친박계가 분열될 가능성도 있는 데다 ‘원내대표’라는 자리가 생각처럼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박 전 대표의 단호한 대응을 불렀다는 것.

돌아온 ‘침묵의 여인’
조기전대엔 거리두기

6월 국회엔 친이계가 벌여놓은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 등 쟁점법안들이 쌓여 있어 차기 원내대표는 전임자의 뒤처리는 물론 야당과의 진통까지 감수해야 한다. 원내대표가 원내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당협위원장 선거와 시도당 위원장 선거, 10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놓인 선거는 실세 사무총장의 손에 맡겨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생은 친박이 하고 이득은 친이가 챙기게 된다는 것.

박 전 대표는 여러 의구심이 남는 카드를 단호하게 쳐냄과 동시에 친이계가 당헌 당규를 무시한 ‘김무성 추대론’을 제안했다는 데 일침을 가했다. 자신의 ‘원칙정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MB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실제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의 책임을 물은 지난 10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국민 63.1%가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를 포용하지 못한 이 대통령과 친이계에 있다’고 답했다. 또한 모노리서치의 지난 12일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59.1%는 박 전 대표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 반대를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거침없었던 당·청을 향한 일성과는 달리 돌아온 박 전 대표는 침묵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 추대론은 친박, 즉 박 전 대표에게도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당에 대한 비판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내 ‘화합’을 깬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친박은 친이보다 수는 적었어도 단합된 힘으로 만만찮은 역량을 보였던 만큼 침묵행보를 계속하면서 인정된 ‘파워’를 2010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계산이 서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는 주류와 확실한 차이를 두면서도 ‘발목잡기’는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친박계 내부에는 주위를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내부경계령이 돌고 있다. 친박 의원실 관계자는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 정책 중 인식이 같은 부분이 있어 도와주려고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데다 말 한마디 행보 하나하나마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서 “당분간 지역구나 국회 운영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이니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조기전당대회 개최 주장에도 친박계는 떨떠름하다. ‘밑져야 본전’인 정몽준 최고위원은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하면서 계파정치를 ‘그림자 정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표와 이재오 전 의원 등 ‘실세’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모두 전당대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조기 전당대회는 ‘잃을 것’만 있는 행사다. 당대표 경선에서 떨어지면 공든 탑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당권을 잡아도 문제다. 이 대통령과 생사를 함께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당 대표는 대통령과 국정운영을 함께해야 하고 친이 친박간 갈등구도를 화합으로 이끌어야 하는 골치 아픈 자리다.

박 전 대표에게는 그간 친이계와의 거리두기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이 대통령과 ‘연대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전당대회를 할거냐”면서 “당 지도부가 당헌 당규대로 당을 운영하는 게 중요하지 당의 문제점은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을 바꾸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월 재보선까지 침묵행보
지방선거 전 ‘힘’ 얻는다

박 전 대표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 거절에 잠시 소란스러웠던 친박계는 “옳은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MB가 살아있는 권력으로 있는 동안 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은 뼈아픈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되새겼다는 평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박 전 대표가 이번 일을 통해 여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힘은 주어지지 않았다”며 “그가 MB와 친이계의 차기 권력구도를 경계하면서 당 안팎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천권’이 없이는 강철로 만들어진 성을 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와 친박계는 당 운영에서 ‘공천시스템’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왔다”며 “지방선거까지 앞으로 계속 이어질 당내·외 선거에서 친이 친박계의 암투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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