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의 후원자’ 박연차·강금원 전격 비교

2009.05.12 10:16:42 호수 0호


박연차, 20년 인연, 한달 검찰 수사로 ‘악연’ 둔갑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계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닮은 듯 다른 모습이 주목받고 있다. 강 회장과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리라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켜온 이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다른’ 면모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른 평가도 극명하게 갈린다. ‘재정적 후원자’인 박 회장에 비해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노 전 대통령과 친노세력의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 이런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후원자의 ‘뒷모습’을 좇았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전 정권에 대한 예외 없는 사정이 이뤄져 왔다. 그리고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두고두고 이름을 남긴 두 사람이 있다.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과 6공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현우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다.

장세동·이현우
다른 선택, 다른 평가

장세동 전 실장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엇갈리지만 그 ‘의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호남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 때 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대통령의 안전은 물론 심기까지 보살핀다고 해 ‘심기경호’라는 말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 이름을 남긴 것은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의 일이다. 장세동 전 실장은 1989년 5공 비리사건으로, 1993년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1995년 5·18 광주민주항쟁 재수사 등으로 3차례 구속과 수감을 반복하면서도 “나 이외에 더 이상의 배후는 없다”고 강조, 전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사나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현우 전 대통령 경호실장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터뜨린 인물이다.
1995년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한 장의 은행 잔고조회표를 증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무관한 얘기”라며 잡아뗐지만 검찰의 수사착수 이틀 만에 이는 ‘오리발’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전 경호실장이 검찰에 자진 출두에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통치자금”이라고 털어놓았기 때문. 수사는 급진전됐고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비자금의 실체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이 같은 ‘과거’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 두 사람의 다른 ‘뒷모습’에서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부산 경남을 기반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이들은 정치 입문 시기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노 전 대통령을 지원해온 ‘후원자’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함께 법정에 섰고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나란히 구속되는 등 정권의 파란을 함께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고 두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모든 것을 털고 가겠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반면 강 회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대통령을 도왔다는 일이 이렇게 정치탄압을 받는 것… 달게 받겠다”면서 입을 다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두 후원자의 ‘다른 길’

6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네진 정황에 대해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를 먼저 달라고 요구했고, 5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줬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박 회장의 진술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 측근들까지 줄줄이 검찰로 불려가야 했다.

이후 드러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불법자금에서도 박 회장과 강 회장은 다른 길을 걸어왔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박 회장의 돈은 노 전 대통령 가족과 정·관계 실세들, 경남지역 전·현직 의원과 선거출마자들에게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많았지만 PK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야 정치권 인사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에게도 상당수 건네졌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천 회장에게 건넨 돈을 두고 “정권을 갈아탈 준비자금이었다”는 분석이 팽배하다.

박 회장의 돈은 사과박스에 담아 전달되거나 백화점 상품권 등으로 바꿔 건네지는 등 뇌물의 성격이 강했다.


강금원, 정치적 뜻 함께한 ‘동지’ 끝까지 같이 간다


반면 강 회장의 돈은 주로 공직에서 물러난 친노 인사들에게 집중됐다. 생계를 위한 성격이 강했으며 계좌를 통해 건네졌다.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라는 글에서 이른바 ‘강금원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 구속 전 그에게 “강 회장은 리스트 없냐”고 물었고 강 회장은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라며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이 “그 많은 돈을 왜 줬냐”고 다시 묻자 강 회장은 “사고치지 말라고 준 것”이라면서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지 않겠느냐. 사고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도와 준 것”이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고 퇴임을 할 때까지 이들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그를 등에 업고 사업 확장에 나섰다. 박 회장은 참여정부 동안 신발산업협회장을 지냈으며 세종증권 주식투자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로 쏠쏠한 이익을 봤다. 골프장을 건설하는가 하면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 국책사업 입찰 성공까지 사업은 크게 성장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수백억원의 특혜를 받은 것.


대통령 업고 호가호위
정권 바뀌자 발길 ‘뚝’

그러나 강 회장의 사업은 변함이 없었다. 강 회장은 입버릇처럼 “지난 5년 동안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다.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나.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도 “강 회장은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으며 아예 그럴 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막상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 ‘촌로(村老)’가 되자 박 회장은 발길을 뚝 끊었다. 반면 강 회장은 매주 봉하마을에 내려가고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박연차 게이트’의 여파로 봉하마을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을 때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함께 계획한 강 회장은 (주)봉하에 7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후 박 회장과 강 회장의 행보는 ‘재정적 후원자’와 ‘정치적 동지’라는 엇갈린 평가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에게 강 회장은 단순한 재정 후원자가 아니라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이다. 때문에 강 회장은 박 회장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두고 “박연차와 나는 레벨이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인연을 맺은 시간은 정치 활동을 시작하던 1988년부터 함께한 박 회장 쪽이 더 오래됐지만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의 부탁으로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하게 된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보고 후원을 결심한 강 회장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

강 회장은 1998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적지 않은 돈을 후원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0년 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하자 강 회장은 직접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당신 같은 정치인이 성공하길 바란다”며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응원했다. 호남 출신인 강 회장이 ‘제2의 고향’인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설움을 겪었고 지역주의 타파를 실천하던 노 전 대통령과 정서적인 ‘동질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애정도 한쪽으로 크게 쏠린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오직 강 회장만을 위한 글을 올렸다. 그는 강 회장에 대해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라면서 글 말미에 자신을 ‘면목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또한 강 회장에 대해 “나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세상을 보는 생각이 같아 뜻을 같이 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성취에 큰 보탬이 됐고 나 대신 고초도 겪은 특별한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말했다. “두고 봐라.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있는지. 아마 나 말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다 인간적 의리를 지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돌아선 두 후원자의 뒤로 어떤 평가가 따를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