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4탄] ‘상품 뽑기’

2009.05.12 10:06:07 호수 0호

‘백이면 백’ 허당…“알고도 속는다”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동네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는 크레인게임기. 뽑힐 듯 말듯 애만 태우다 돈만 날리기 일쑤인 크레인게임기는 일명 ‘상품 뽑기’로 불리며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뿐 아니라 유흥가는 물론 학교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사용 대상도 ‘아저씨’만의 전유물이 아닌 어린이부터 학생, 여성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경계선이 사라진 지 오래다.



‘뽑기 달인’도
본전 못 건진다


이쯤 되면 ‘국민 오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90년대 일본에서 국내로 상륙한 크레인게임기는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현행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상 영업장 외부에 설치되는 전체이용가능 등급에 해당돼 관계기관에 신고나 허가의 대상이 아닌 탓이다.

그만큼 게임기엔 소비자들이 혼돈하기 쉬운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승률’과 연관되는 상품의 원가다. 이 게임기에 동전을 넣은 사람이라면 ‘저기 놓인 상품의 원가가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을 한번쯤 떠올릴 만하다.

크레인게임기의 작동방법은 대부분 한 차례에 200∼500원씩 동전을 넣고 집게손을 조작해 게임기 안에 있는 경품을 꺼내면 이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일정한 크기의 공간에 경품을 밀어 넣으면 가져가는 기계도 있다.
하지만 한 게임에 한 개씩 집어 올리는 ‘고수’들만 짭짤한 재미를 볼 뿐 나머지는 ‘허당’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자타공인 ‘뽑기의 달인’이라도 본전도 못 건진다는 계산이다.

우선 크레인게임기의 상품 원조격인 인형 가격만 따져 봐도 그렇다. 업계에 따르면 게임기 업자들이 소매로 공급받은 인형은 ▲소 100원 미만 ▲중 200∼300원 ▲대 300원 이상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음향 기능 등이 포함된 인형은 이보다 더 비싸지만 1000원을 넘지 않는다. 결국 500원을 넣고 한 개를 뽑았다고 해도 결코 이득이 아닌 셈이다.


동네마다 크레인게임기 난립…‘아무나’ 사용 가능
상품원가 의문 “5백원 넣고 뽑아도 4백원 손해?”

사탕, 껌, 초콜릿 등 먹거리 뽑기도 마찬가지다. 사탕 100원, 껌 200∼300원, 초콜릿 300∼500원 등의 원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간간히 껴 있는 원통형 껌이나 초콜릿이 소비자의 주머니를 유혹하지만 무심코 동전을 꺼내는 일반인에겐 ‘그림의 떡’이다.

비교적 가격이 높아 보이는 담배, 양주, 완구 등도 실제론 원가가 5000원을 넘지 않는다. 관련법에 따라 크레인게임기의 경품은 소비자가격 5000원 이내의 것으로 제한돼 있다.

반대로 게임기 업자들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길거리에 게임기를 놓는 사업자는 개인이 게임기를 구입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4∼5대 정도를 운영한다.

이들은 게임기가 놓인 자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대당 한 달에 약 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목 좋은’ 유흥가에선 1대당 월 100만원도 우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5대의 게임기를 운영하고 있는 유모(65)씨는 “게임기 5대에서 거둬들이는 한 달 매출이 원가 빼고 일반 샐러리맨 월급과 맞먹는다”며 “기계 고장이나 파손, 단속만 아니면 일주일에 2∼3회 상품 보충에 신경만 쓰면 되기 때문에 맘 편히 돈을 벌고 있다”고 귀띔했다.

“5대만 운영하면
샐러리맨 안 부럽다”

종로구 등 시내에서 무려 10여 대의 크레인게임기를 관리하고 있는 박모(35)씨는 “커피자판기, 오징어자판기 등 여러 가지 자판기 사업을 해봤지만 크레인게임기만 한 고정적인 돈벌이가 없다”며 “1대에서 50만원 이상 수익을 거둬 총 월수입이 500만원을 웃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정에 최근에는 크레인게임기가 불황을 타고 부업 및 투잡, 또는 소자본 무점포창업 업종으로도 각광받는 추세다.

자판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A업체는 크레인게임기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크레인게임기 5대만 운영하면 웬만한 가게보다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A업체에서 생산하는 게임기를 사면 게임기 5대 기준 2000만원 이하 투자로 월 순수익 수백만원을 보장한다는 것. 추후 각종 상품도 싼 값에 제공한다는 조건도 있다. 이 업체는 게임기 자리까지 봐주고 있다.

A업체 측은 “크레인게임기는 2∼3일에 한 번 수금 및 상품을 보충해주는 편안한 관리형 기계이기 때문에 주부, 퇴직자 및 부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기계를 구매하면 회사에서 장소선정에서 설치까지 처리해 구매자들은 구입 후 운영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게임기 조작도 자행
단속은 사실상 전무

문제는 법대로 운영되는 게임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고가의 상품들을 전시해 사행 심리를 부추기는가 하면 상품을 돈으로 환전해 주는 등의 불법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 사업자는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은 게임물의 경품으로 완구류 및 문구류만 제공할 수 있다. 현금이나 유가증권은 금지된다. 술과 담배 등 유해품목도 현행법상 모두 불법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측은 “크레인게임기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체이용가 등급”이라며 “청소년 유해품목이나 고가의 상품, 현금이 들어 있다면 명백한 불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에 널린 크레인게임기는 성인용품, 항공권 등 고가의 상품들로 넘쳐나 사행심을 조장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일반 상품에 1만권 현금을 끼워 놓은 기계도 눈에 띈다. 또 뽑은 상품만큼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환전행위도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유해상품을 구입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술, 담배, 양주 등 성인용품 뽑기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게임기 조작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불법 개·변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조작 수법은 게임기 갈고리의 길이를 줄이고 악력을 낮춰 상품을 잘 못 집게 하는 것이다. 찰흙이나 납으로 상품의 무게를 늘려 뽑기 어렵게 만든 기계도 있다.

실제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크레인게임기의 유형별로 보면 게임기를 임의로 조작해 불법 개·변조한 사례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경품용 인형 대신 고가의 내용물로 교체 ▲청소년 유해물품을 경품으로 제공 ▲경품을 돈으로 교환하는 환전행위 등이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크레인게임기가 고가의 상품을 내건 사행성 게임으로 둔갑한 것도 모자라 학교 인근 게임기에는 술이나 담배 등으로 가득 차 있어 청소년 탈선까지 부추기고 있다”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과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에 적용되지만 당국의 단속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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