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중심에서 물러선 정치인들 ‘퇴임’ 이야기
전직 대통령, 유력 정치인들 ‘뒷방 훈수’ 말말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으로 정치인들의 ‘퇴임’에 새삼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직전 대통령인 노 전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게 되면서 ‘조용한 퇴임’을 한 전 대통령이 전무해진 탓이다. 또한 자의 혹은 타의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정치인들의 ‘퇴임’도 눈길을 끈다. 깨끗하게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신변을 정리한 이부터 정치에 염증을 느껴 전혀 다른 분야로 ‘업종변경’을 한 이, 퇴임 간판은 내걸었지만 앞에 ‘임시’자를 더해 언제든 정계복귀를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는 이들까지 다양한 ‘퇴임 그 후’를 보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모자식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권력의 매혹에 빠졌던 이들은 퇴임 후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따라가 봤다.
“권력은 손에 넣는 순간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설사 놓았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가지고 싶어지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정가 한 관계자의 전언처럼 여의도 정가에는 마약과도 같은 권력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이 수백을 헤아린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은 최고 권력을 누렸던 대통령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막후에서 ‘조언’과 ‘훈수’를 빙자, 현역처럼 활동하는 ‘말뿐인 퇴임’을 한 것.
권력 정점 찍었던
‘그때’가 그리워 훈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세간의 비판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정치시계’를 멈췄지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시계는 아직도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가지고 있는 ‘정치 지분’만큼 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YS는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한 대가(?)로 아들 현철씨와 최측근인 박종웅 전 의원을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이로 인해 당내 반발에도 불구, 현철씨는 여의도연구소부소장에 임명됐다. 박 전 의원의 경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에 거론됐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없던 일’이 됐다.
YS는 근래에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5분간 SBS 러브FM ‘한국 현대사 증언’을 통해 민주화 투쟁, 3당 합당과 문민정부 수립, 하나회 척결, IMF 사태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삶을 육성으로 전하고 있다.
DJ는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퇴임 후 아태평화재단에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발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을 민주당에 두고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훈수’를 멈추지 않고 있다.
DJ는 4월 재보선과 관련, 정동영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뿐만 아니라 “무소속 후보 한두 명이 당선돼 복당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는 말로 정 전 장관을 겨냥키도 했다.
퇴임 후 ‘촌부’가 되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인터넷 상왕’으로 정치권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과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통해 근황을 알리고 정치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 왔으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저를 버려 달라”며 ‘절필’을 선언했다.
‘금배지’는 일생에 한 번뿐인 대통령보다 오히려 중독성이 강하다. 능력에 따라 몇 번이고 다시 국회에 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때’를 알고 물러나거나 낙선했을 때 조용히 돌아서기도 힘들다는 게 정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런 면에서 ‘원조보수’로 통하는 김용갑 전 의원은 정치권 안팎의 박수를 받았다. 15·16·17대 내리 3선을 한 김 전 의원은 ‘다시 나서면 당선될 수 있었음에도’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 및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3선이면 12년인데 그건 국회의원에겐 환갑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면서 “지난날 정부에 있을 때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는데 이제 박수칠 때 떠나려고 한다”고 ‘고별사’를 전했다.
김 전 의원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짐을 벗는다고 생각하니 몸이 가벼웠고 그렇게 행복하게 느낀 적이 없다”면서 “그동안 정치하느라 집사람에게 소홀해 마음에 내내 걸렸는데 이제 남은 생을 아내를 위해 쓸 생각”이라고 은퇴 계획을 밝혔다. 10여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부인과 모스크바로 늦깎이 신혼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것.
또한 <굿바이 여의도>라는 책을 통해 정치권과의 인연을 정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정치적 동지’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까지 충고를 서슴지 않았다.
김한길 전 의원도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18대 총선 불출마와 함께 정계은퇴를 했다. 소설 <여자의 남자>로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김 전 의원은 ‘옥탑방’이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내고 소설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정계 은퇴 후 일상을 묻는 질문에 가족과의 여행을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자전적 소설을 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워낙 역동적이어서 다른 픽션을 가미하지 않더라도 흥미진진할 것”이라며 소설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32세에 최연소로 국회에 입성한 데 이어 내리 5선, ‘강총’이라 불리며 집권여당 사무총장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었던 강삼재 전 의원은 교육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회창 총재를 도와 자유선진당 창당준비위원장과 선진당 최고위원을 맡는 등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정치권과 더 가까웠던 그지만 대경대학 부총장을 맡으면서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금배지 달았던 의원들
박수칠 때 떠나라
강 전 의원은 대경대학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라는 것과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면서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은 아무리 오래가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우리나라 권력은 대통령 임기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이 영원하리라는 것은 그 권력을 잡은 사람의 착각일 뿐”이라며 “공인은 눈높이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옛일을 답습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안영근 전 의원은 지난 총선 후 미술품 관련 유통회사에서 회장으로 취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업종을 변경해 ‘취업’한 것. 안 전 의원은 지역구인 인천 남동구에서 직장인 밴드를 결성했으며 정치인은 전혀 만나지 않아 이색 행보로 시선을 끌었다.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들 중 대학교수나 변호사 등 전문직 출신 의원들은 생업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김학원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3선 정치생활을 마무리하고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일하는 중간 중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고 근황을 전하면서도 “정치인이라는 것은 국회의원에 당선돼서 국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정계복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교수·변호사 출신
정치는 ‘폐업’ 아닌 ‘휴업’
그는 “지금은 쉬면서 여러 가지 공부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충전하는 시기다. 1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뒤돌아볼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충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재천 전 의원도 변호사 일을 재개했다. 그러나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정치권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에 대해 “미이라를 끄집어내 부관참시 하는 수준”이라며 “마녀사냥식 비난이 횡행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고 우려하는 ‘노무현을 위한 짧고도 긴 변명’이라는 글을 올렸다.
서혜석 전 의원도 법률회사로 자리를 옮기고 4년 뒤를 기약했으며 17대 국회에서 로스쿨 법안 통과를 주도한 이은영 전 의원은 낙선 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로 돌아갔다. 이 의원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면서 후학양성과 법학발전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시민 전 장관은 경북대에서 ‘생활과 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선거 빚도 갚아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 당장 6월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며 강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던 유 전 장관이지만 강의의 인기가 상당해 사이버 강의실을 개설하고 모든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은 계속하고 있으나 아직 ‘복귀’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선을 긋고 있다.
이해찬 전 의원도 연구재단 ‘광장’의 활동 외에는 공식행보도 최소화하는 등 정치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재원 전 의원은 중국 베이징대 연구교수 자격으로 유학길에 올랐으나 불교방송에서 <김재원의 아침저널> 진행을 맡으면서 연수과정을 포기했다. 대신 주말 세미나로 대체, 주말마다 베이징대를 방문해 남은 연수과정을 소화했다. 또한 국내에 정치분야 연구소를 세우겠다는 포부대로 개인 정책연구소인 재단법인 ‘새정책연구소’를 설립했다.
18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계안 전 의원은 “희망과 열정을 다시 찾아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을 되살리겠다”는 고별사를 전하고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객원연구생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으로 ‘부족분’ 채우고
정책연구소로 단련하고
그러나 정치 현안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정책을 당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등 나라 안 사정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귀국 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직에 도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금배지를 떼어내며 ‘퇴임’을 한 셈이지만 이는 겉으로 보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강의도 유학도 정치 휴지기를 이용한 정치력 키우기의 일환일 뿐 정계 복귀에 대한 이들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