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기업 ‘모럴해저드’ <천태만상>

2009.04.21 09:24:30 호수 0호

‘나만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


기업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건들이 불경기를 틈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충남 홍성에 위치한 새마을금고에서는 전 직원이 짜고 고객돈을 횡령하는가 하면 금융사기로 실형을 선고 받은 직원을 신원파악도 하지 않고 채용, 고객돈을 맡겨 대규모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더욱이 회삿돈 횡령, 비자금 조성, 사기, 뇌물 등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은 올해도 여지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불경기 속 ‘요지경’ 실태를 살펴봤다.

전직원이 짜고 10년 동안 고객돈 1500억원 횡령
회사자금 빼돌려 빌라·콘도회원권 사는 데 사용
대출 받아 주겠다고 속여 알선료 ‘꿀꺽’
대형마트 납품 대가로 거액 가로채



매년 뉴스 화면을 장식하던 경제범죄들이 올해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오히려 그 규모가 커지고 금액도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더욱이 오랜 기간 조직적으로 고객 예탁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지난 16일, 홍성지청은 지난 1999년 4월부터 2008년 5월까지 10년간 조합원 5880명의 정기예탁금 1500억원을 횡령한 광천새마을금고 전 이사장 이모(62)씨와 전무 이모(57)씨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직원 최모(28)씨 등 1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고객 돈은 내 돈’?
전직원이 짜고 횡령

검찰에 따르면 충남 홍성 소재의 광천새마을금고 전직원 20명은 컴퓨터프로그램 업체에 의뢰, 새마을금고 연합회 전산망과 맞먹는 별도의 부거래 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직원 컴퓨터에 설치한 후 교육을 실시하는 등 범행을 준비하고 전표조작·수기장부작성 등의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고객돈을 횡령했다.
더욱이 이들은 정기예탁금의 경우 만기 전까지 고객이 돈을 출금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 고객의 정기예탁금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10년 동안이나 범행이 발각되지 않은 것은 이들이 고객에게는 대포통장을 발행해 주고 새마을금고연합회 감사 시에는 별도의 전산시스템과 장부를 철저히 숨기고 허위보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묻힐 뻔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9월 새마을금고연합회가 자체감사를 통해 광천새마을금고의 횡령사실을 밝혀내면서부터다. 새마을금고연합회는 횡령사실을 밝힌 후 공적자금 168억원을 투입, 고객의 피해를 보전해주고 전 직원을 파면한 것과 동시에 광천새마을금고를 해산시켰다. 이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고객돈을 횡령한 사건은 또 있다. 교보증권 법조타운지점에 근무하는 한 투자상담사가 고객돈을 유용해 매매를 한 후 대규모 손실을 입힌 것. 더욱이 이 직원은 현재 금융사기로 실형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교보증권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지점의 계약직 투자상담사 오모(34)씨가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자기 계좌로 수억원을 송금 받아 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했다가 대부분 손실을 내자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해 12월에 입사한 오씨는 고객돈 7억원가량을 선물옵션 등에 투자해 대부분의 자금을 날린 직후 지난 10일부터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피해를 호소하는 고객은 4명으로 피해 주장액은 6억여 원이다.

경찰이 그러나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 피해 고객 수와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교보증권은 일단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오씨를 투자금 횡령 혐의로 고발하고 금융감독원에도 사건내용을 신고했다.
교보증권은 자사 직원으로 인한 피해인 만큼 법적 검토를 통해 배상을 책임지겠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교보증권은 고객돈을 대신해 관리하는 증권사가 과거 금융사기로 인해 현재 형이 집행 중인 직원을 제대로 신원파악도 하지 못한 채 고용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뿐만 아니다. 회삿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올해도 빠짐없이 발생했다. 지난 15일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 3부는 신창건설 김모 회장을 특가법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2003년 7월 화성시 병점읍 자사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조경식재와 시설물공사와 관련, (주)H사와 공사금액을 20억원 많게 체결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 같은 수법으로 하도급업체 5개사로부터 118억여 원을 받아 콘도회원권과 빌라를 구입했다.
김 회장은 또 지난 2007년 11월과 지난해 3월 각각 상암2지구 4단지와 마천지구 1단지 아파트 건설공사를 체결한 뒤 지난 3월 수원지방법원 파산부에 채무자회생절차를 신청하고도 건설공제조합에 “아파트 공사를 실시할 예정이니 선급금에 대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 달라”고 속여 144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회삿돈도 내 돈
필요하면 횡령?

앞서 지난 14일에는 회삿 돈을 빼내 주가 하락세에 있던 코스닥 상장사를 무리하게 인수하고 상장사의 자금으로 회사 채무를 갚으려 한 우리담배 대표이사 유모(41)씨가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해 4월 코스닥 상장사 S사를 우리담배가 인수한다는 계약을 맺고 기존 경영진의 인수가격 131억원에 프리미엄 24억원을 더한 155억원을 지급했다.

S사의 이전 인수가격이 131억원이었고 당시 S사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웃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24억원을 추가로 더 내 해당금액만큼 회사의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유씨는 회사의 인수 가격에 대한 검토나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은 채 우리담배에 24억원의 부담을 지운 셈이다.
유씨는 또 S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하게 된 후인 2008년 8월 우리담배가 자본금 잠식 상태였는데도 S사가 우리담배의 주식 1000만주를 인수하도록 추진해 S사가 주식인수대금 280억5000만원의 손해를 입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A은행 전 노조위원장이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속여 알선료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챙기다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것.
지난 14일 전남경찰청은 A은행 전 노조위원장 B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B씨는 피해자 C씨에게 ‘A은행 노조위원장과 지점장을 역임했고 현 은행장과도 같이 근무했던 사이’라고 친분을 과시했다.

C씨는 이에 ‘경매가 진행 중인 공장 부지를 낙찰 받은 뒤 그 부지를 담보로 제공해 은행에서 17억원을 대출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회사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그러자 B씨는 C씨에게 ‘10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도와주겠다’고 속여 알선료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지난 15일에는 P건설 현장소장과 P국장이 뇌물을 주고받다 검찰 수사망에 걸렸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건설업자로부터 1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북 상주시 P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뇌물을 준 혐의로 P건설 현장소장 최모(4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P국장은 상주시 상하수도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06년 7월 자신의 집에서 상주시 하수관정비사업 ‘공사감독편의’ 명목으로 시공사인 P건설의 최 소장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았다. 또 지난해 6월에도 600만원을 받았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역내 상업시설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수천만원의 ‘뒷돈’을 받은 코레일개발 전 상무가 구속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동산 임대업자으로부터 4800만원을 받아 챙긴 코레일개발 전 상무 이모(47)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07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경북 구미역 상업시설 임차권 계약과 관련해 부동산 임대업자로부터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 지난 2007년 11월 청탁이 성사돼 현재도 해당 임대 영업이 성업 중이다.
대형마트에 고기를 납품해 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아 챙긴 대형마트 전 직원도 있었다.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은 지난 13일 대형마트에 고기를 납품하게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대형마트 전 직원 S씨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한국 까르푸 정육구매부장으로 일하던 S씨 등은 지난 2004년부터 2년 동안 매장에 돼지고기를 납품하게 해주는 대가로 업자들에게 모두 7억5000만여 원을 챙겼다. S씨는 앞서 광우병 파동으로 모든 미국산 쇠고기를 폐기하라는 경영진의 지시를 어기고 매장에서 수거한 LA갈비 12톤을 유통시켜 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아 왔다.

‘돈을 듬뿍 내시오
싫음 포기하든가’


뿐만 아니다. 재건축 사업권을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 챙긴 재건축 추진위원장이 기소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재건축 사업권을 주는 대가로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전 서울 개포1동 재건축 추진위원장 장모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2005년 재건축조합 간부 배 모 씨와 함께 재건축 사업체 선정의 대가로 용역업체 대표 윤모씨로부터 3억5000만원을 받는 등 여러 업체에서 뇌물 20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장씨와 함께 뇌물을 받은 배씨와 두 사람에게 뇌물을 건넨 업체 대표 7명을 함께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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