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마치 ‘철옹성’같은 재벌가에도 이방인이 존재한다.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에서 장가나 시집 온 극소수의 외국인들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재벌가에서 이방인이 식구로 받아들여지거나 인정받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국적·신분을 넘어 사랑의 결실을 맺은 파란만장한 러브스토리부터 고난·역경을 극복한 로열패밀리 적응기까지 사연은 각양각색 구구절절하기만 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일가엔 ‘파란 눈의 며느리’가 있다. 금호가의 장손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 여사다.
고 박인천 창업주는 슬하에 5남3녀(성용-경애-정구-강자-삼구-찬구-현주-종구)를 뒀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사돈을 맺고 있는 것. 박 창업주가 생전 자식들의 혼사에 바짝 신경을 쓴 결과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예외다. 그는 미국 예일대 유학 시절 만난 알버트 나이트 전 벌링톤 저축은행 부총재의 딸 박 여사와 1년여의 열애 끝에 1964년 결혼했다. 재벌가에서 더욱이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당시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었다.
박 창업주는 이들의 결혼식에 불참할 정도로 완강히 반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았던 마음을 활짝 열었다. 1968년 남편을 따라 미국 동부에서 한국으로 온 박 여사의 전형적인 현모양처 모습을 보고서다.
박 여사는 서로 다른 문화의 벽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내조는 물론 집안의 대소사 등을 직접 챙기며 맏며느리로서의 제 역할을 해냈다. 1984년 6월 박 창업주가 별세한 뒤엔 홀로 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살아 ‘파란 눈의 효부’란 애칭을 얻기도 했다.
2005년 5월 박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미국에서 지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집안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 여사는 한때 미국 메릴랜드대학 한국 분교와 미8군 기지에서 강사와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박 여사와 사이에서 1남1녀(재영-미영)를 두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그룹 경영과 동떨어진 ‘마이 웨이’를 가고 있다. 재영씨는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미영씨는 캐나다에서 종교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안팎에선 이들이 앞으로도 경영자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란 의견에 무게를 둔다. 현재 경영수업 중인 박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씨가 그룹 지휘봉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미영씨는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 소식이 없다. 재영씨는 2000년 10월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의 3녀 문정씨와 결혼해 1남(준명)을 두고 있다. 금호가와 LG가가 사돈인 셈이다. 구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손밑 동생 고 철회(전 LG그룹 고문)씨의 3남이다.
공교롭게도 재영씨의 장모도 외국인이다. 구 회장의 부인 임방인 여사는 중국 상하이 출신이다. 항간엔 임 여사의 부친이 타이완 재벌이란 소문도 있다. 구 회장은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영국,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지사를 두루 거치면서 유엔(UN)에서 근무하던 임 여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가 못지않게 재계에서 유교적 가풍이 강하기로 유명한 LG가가 중국인 며느리를 받아들인 점은 세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상류층 혼맥의 핵’으로 꼽히는 LG가는 대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전통적으로 딸을 비롯해 안주인들의 문밖출입조차 쉽지 않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의 자녀들도 국제결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구자훈-임방인 부부는 딸만 셋(현정-윤정-문정)을 뒀는데, 이중 장녀 현정씨는 글로벌 보험회사인 AON코리아 부사장을 지낸 미국인 에릭 호프먼씨와, 차녀 윤정씨는 미국 투자전문회사 살로몬 스미스 바니에 재직한 재미교포 해롤드 김씨와 각각 웨딩마치를 울렸다.
이처럼 재벌가엔 외국인 사위들도 있다.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화교 2세다. 고조부가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 대구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던 화교 집안에서 태어난 담 회장은 서울외국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 창업주의 차녀 화경(라이즈온 대표)씨를 만나 10년 열애 끝에 1980년 결혼, 비로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역만리 타국서 장가·시집 외국인 ‘눈에 띄네’
보수·폐쇄적 집안 분위기 반대도 만만치 않아
담 회장은 1989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가족 간 협의를 통해 오리온 계열을 이끌다 2001년 9월 이 창업주의 맏사위 현재현 회장(부인 혜경씨·1976년 결혼)이 맡은 동양그룹에서 독립했다.
SK일가에도 파란 눈의 백년손님이 있다.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이자 최태원 회장의 숙부 최종관 전 SKC 고문의 사위가 주인공. 최 전 고문은 부인 장명순 여사와 사이에 1남6녀(철원-순원-호원-경원-은원-성원-진원)를 뒀는데, 이 가운데 장녀 순원씨가 외국인 존 캐리 퍼크너씨와 국제결혼을 했다.
유교 전통의 맥을 이으며 우리나라의 근대 경제사를 주도한 삼양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고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의 사위가 외국인인 것.
김 창업주는 고 박하진 여사와 사이에서 7남6녀(상준-상협-상홍-상돈-상하-상철-상응-상경-상민-정애-영숙-정유-희경)의 많은 자식을 뒀는데 대부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명망가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4녀 영숙씨는 미국에 거주하며 독신을 고집하다가 뒤늦게 미국인 스테푸친씨와 결혼, 1남1녀(프랭크-페기)를 얻었다.
삼성가와 롯데가는 일본인 며느리를 받아들였다. 삼성가에 호적을 올린 일본 여성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자 이건희 전 회장의 둘째 형 고 창희(전 새한그룹 회장)씨의 부인 이영자 여사.
창희씨는 1963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 마쓰이물산 중역 출신인 나케네 쇼지의 딸 이 여사를 만나 결혼, 3남1녀(재관-재찬-재원-혜진)를 뒀다. 당시 이 창업주를 비롯해 삼성가 어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이 여사는 결혼 후에도 일본 이름 ‘나카네 히로미’로 지내다 결혼 23년만인 1986년 지금의 한국이름으로 개명했다. 1991년 창희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가한 새한그룹 회장직을 맡았지만 불과 3년 만인 2000년 몰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롯데가문도 ‘현해탄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아들이 대를 이어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것. 이는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란 롯데그룹의 국적 정체성 혼란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1940년 첫 번째 부인 고 노순화씨와 결혼, 1942년 장녀 영자(롯데쇼핑 사장)씨를 낳았다. 이를 모른 채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1952년 ‘시게미쓰 다케오’란 일본 이름으로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 다케모리 하츠코 여사와 재혼, 동주(일본롯데 부사장)-동빈(롯데그룹 부회장) 형제를 얻었다.
하츠코 여사는 결혼 후 신 회장의 일본성을 따 시게미쓰 하츠코로 개명했다. 동주씨와 동빈씨도 각각 ‘시게미쓰 히로유키’, ‘시게미쓰 아키오’란 일본이름을 갖고 있다.
롯데가의 국제 혼사는 2세들까지 이어졌다.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1992년 3월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차녀 은주씨와 결혼했다.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롯데USA 지사장으로 일하던 중 현지에서 은주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올린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돼 큰 화제를 모았다. 현재 슬하에 외아들(정훈)만 두고 있다.
동빈씨는 일본 최고의 명문가 여식을 아내로 맞았다. 1985년 6월 결혼한 오고 요시마사 다이세이건설 부회장의 차녀 오고 마나미씨다.
요시마사 가문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귀족가문으로,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대학을 졸업한 마나미씨는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 물망에까지 올랐을 만큼 재원 중 재원이란 평이다. 신 회장이 둘째 며느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형 동주씨의 결혼식이 일반에 공개된 것도 화제를 모았지만 동빈씨의 5시간이 넘는 일본전통 혼례식 또한 이슈가 됐다. 특히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는 한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 일본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대거 결혼식에 참석해 한·일 양국 재계 관계자들의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1남2녀(유열-규미-승은)를 두고 있는데 부인과 자녀들은 현재 일본에 살고 있다. 동빈씨는 한·일 양국의 호적에 오른 채 이중국적자로 국내에서 활동하다 1996년에야 일본 국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