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는 에피타이저, 강금원 리스트는 샐러드, 메인요리는 정대근 리스트’라는 말이 최근 정가 주변에서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전·현 정권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지만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리스트’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게 소문의 골자다. 정 전 회장이 농협중앙회 회장에 3선을 기록하며 8년간 근무하는 동안 쌓아놓은 ‘먼지’는 박 회장이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 건넨 ‘푼돈’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정 전 회장과 관련, 정권 실세들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구속 기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이후 세간은 ‘박연차 리스트’를 향했지만 정가는 박연차 리스트 너머 숨죽이고 있는 ‘정대근 리스트’를 지켜보고 있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은 8년간 농협중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상당한 액수의 돈을 수수했다. 2005년 말과 2006년 초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대가로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06년 5월 현대자동차로부터 현대차 양재동 농협빌딩 매각 리베이트로 3억원, 2006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매각에 대한 인수청탁 명목으로 20억원, 휴켐스 인수 협조 청탁 명목 250만 달러 등 밝혀진 것만 11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역대 뇌물 사건 중 4위에 오를 정도다.
엄청난 금액만큼 그의 인맥도 광범위했다. ‘마당발’ 박 회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7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구속 직후 3개월간 특별 면회를 통해 만난 인사가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은 233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80명”이라고 말했다.
대어는 큰물에서 논다
박 의원이 법무부 자료를 토대로 정 전 회장을 면회한 인사들을 분석한 결과 정 전 회장이 법정 구속된 2007년 7월부터 3개월간 만난 인사는 120회에 걸쳐 537명에 달한다.
이중 두 차례 이상 방문한 전·현직 국회의원은 30여 명.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까지 포함하면 50여 명선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정 전 회장이 정계에 구축한 상당한 인맥과 110억원이라는 대규모 ‘뭉칫돈’은 큰 규모의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정대근 리스트에 대해 “특별히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던 검찰과 “나는 ‘갑’의 입장으로 정치권에서 대접을 받으면 받았지, 아쉬워서 돈을 주고 하는 위치는 아니었다”고 정치권 로비 의혹을 부인한 정 전 회장의 ‘말’도 달라졌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게 3만 달러,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에게 1000만원 등 모두 5000만원 정도를 정치인들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던 정 전 회장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
정 전 회장은 박 회장으로부터 50만원 달러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또한 향후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우선 2006년 정 전 회장이 구속된 후 구치소와 교도소를 면회한 30여 명의 정치인들에 대해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이중에는 구속된 이광재 의원뿐 아니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 등 거물급 인사들도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참여정부 386 실세와 여야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어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실세 정대근 ‘도장 찍기’
정치권 한 관계자는 “농협을 거치지 않고는 정치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석방시켜 주지 않으면 모든 것을 불겠다”, “나를 이대로 방치하면 다 폭로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던 정 전 회장.
최근 50억원에 대한 수사에서도 “내 돈이 아니다. 내가 사용한 돈이 아니다”라고 했던 그의 자금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에 정치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