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이어 거론되는 박연차 회장 로비 주무대 경남·부산 인사들
허태열, 김무성 친박 중진 검찰 수사 거론…대들보 ‘흔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 ‘친박 사정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초기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했던 참여정부 인사들을 향해 달음질쳤다면 ‘2라운드’에선 여야를 막론한 ‘PK 사정론’이 제기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경남·부산(PK)에서 터를 잡고 사업을 한 40여 년 동안 지역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지난 18대 총선에서 ‘박풍(朴風)’이 거세게 몰아쳤던 곳이어서 “친박계가 표적”이라는 ‘친박 사정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검찰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 등에 대한 후원금 내역을 요청해 분석하면서 친박계는 ‘사정설’로 흉흉한 분위기다. 김 의원의 후원금 내역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정가는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정·재계를 촘촘한 인맥으로 연결, 비리의 줄로 엮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시선이 수사의 종착역을 가늠하기에 바쁘다.
수사 초기 ‘박연차 게이트’를 바라본 이들은 사정의 칼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마당발’ 박연차 회장의
거미줄 같은 전방위 로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연차 게이트’에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깊숙이 관여돼 있는데다 친노 의원들의 잇따른 검찰 소환과 구속, 심지어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간 50억원의 거래까지 속속 밝혀졌던 것.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참여정부 죽이기’보다는 ‘전방위 사정’이라는 관측이 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한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고구마 넝쿨을 끌어올리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둘 수면 위로 부상했다.
특히 박 회장의 사업적 기반이 자리하고 있는 PK가 주목받고 있다. 부산에서 신발사업을 벌여온 박 회장은 신발산업이 쇠락해가는 와중에도 승승장구했다. 박 회장의 성공배경에는 그의 탁월한 감각도 자리하고 있겠지만 YS직계인 민주계 인사들과의 두터운 친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은 또한 지난 2000년부터 한나라당의 재정위원을 지내면서 PK 출신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들과 오랜 기간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다. ‘초기 YS직계’들은 물론 ‘새로운 실세’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로비를 벌이며 인맥을 확장했던 것. 그는 두터운 인맥과 금품으로 ‘마당발’이라는 별명과 자신만의 ‘연줄’을 만들었다.
박 회장은 평소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가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용돈’이라고 현금을 찔러주거나 현지법인이 있는 해외공장으로 초청, 로비를 벌였다. 심지어 현금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를 위해 5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수백장 건네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였다.
때문에 PK에서는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말이 파다하다. 친분이 있으면 친분 때문에, 권력에 가까우면 ‘구명 로비’ 등 이익을 위해 박 회장이 거미줄 같은 인맥을 만들어가는 동안 그의 손길이 비껴간 이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PK는 박 회장의 주 무대이자 정치적 요지이기도 하다. TK(대구·경북)와 더불어 한나라당의 양대 텃밭으로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나라당을 향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곳이다. 때문에 당 공천이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의 승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공천’으로 인해 이 지역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지난 18대 공천에서 한나라당 내 계파 충돌로 인해 친박계가 대부분 공천에서 밀려났다. 이들은 탈당을 했고 ‘박근혜’라는 이름 하나로 두 지역에서 ‘친박 돌풍’을 일으키며 생환했다. 그리고 당선된 친박계 인사들은 “살아서 돌아오라”던 박근혜 전 대표의 말대로 한나라당에 복당도 했다.
이처럼 18대 총선 이후 PK지역은 단순히 한나라당의 텃밭이 아니라 친박계가 둥지를 튼 곳이 됐다. 이로 인해 PK에 몰아치는 사정 칼바람을 보는 친박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현 여권의 심장부에도 구명줄을 던져둘 만큼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움직인 경제인이 PK지역을 주 무대로 활동하며 지역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었다면 친박계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엄습한다.
현재 PK지역의 한나라당 의원은 30명이다. 이중 친이계와 중립성향 의원들을 제외한 친박 의원들의 수는 14명. 친박계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서병수 허태열 유기준 허원제 현기환 박대해 유재중 이종혁 이진복 김세연 의원(부산)과 김학송 최구식 안홍준(경남) 의원이 그들이다.
주목받는 PK 정치인
“머리카락 보일라~”
이 중 허태열 의원은 ‘박연차 리스트’가 정가를 돌면서부터 검찰 소환 대상자로 거론됐다. 또한 정치권 안팎에서 ‘박연차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부산지역 한나라당 중진 의원’에 김무성 의원과 김학송 의원이 오르내리면서 친박계는 쑥대밭이 됐다. PK지역 친박계 중진 의원 대부분이자 친박계의 ‘중추’가 검찰의 칼날 아래 서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 선거관리위원회에게 한나라당 허태열, 권경석,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서갑원, 우윤근, 김우남 의원,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등 10여 명의 후원금 내역을 요청, 분석했다.
친박계는 강력 반발했다. 김무성 의원은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얻어 “4선 의원을 하면서 후원회를 연 적이 없는데 검찰이 왜 내 후원금 관련 자료를 선관위에 요청했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이는 상처 입히기”라고 따져 물었다.
김 의원은 “의혹이 있으면 밝히는 곳이 검찰인데 지금은 의혹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검찰에 공개수사를 요구했다. 그는 또한 “의혹이 있으면 오늘이라도 나가 해명할 테니 언제든 소환하라”고 말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나는 박연차 회장과 만난 일도, 전화한 일도 없다”며 “수사 초기에 박 회장이 그에게 후원금을 줬다고 보도됐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낸 것으로 안다. 책임없는 기사가 계속 인용되는데 검찰과 언론에 자제를 요청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생사람 잡는 게 길어지는 것은 나라나 정치인을 위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에서 불러서 해명을 듣든지 해 마무리해 달라”고 말했다.
김학송 의원도 진해 지역 고도 완화 청탁과 함께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검찰 수사가 친박계 중추를 이루는 중진 의원들을 향한데다 PK가 친박계 의원들의 복당으로 낙선한 친이계 당협위원장들과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요주의 지역’이라는 점에서 친이계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5월 당협위원장 교체와 원내대표 교체, 이후 당권경쟁 등과 관련 ‘시끄러운’ 지역을 정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친박계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당 지도부는 달래기에 나섰다. 박희태 대표는 검찰 수사와 관련, “PK 의원들이 수난시대를 맞이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합법적인 경로를 밟아 법이 인정하는 액수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모르지만 불법적으로 돈 받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당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김무성 의원 등의 후원금 내역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친박 사정설’은 주춤한 모양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박 회장과 관련한 정치권 수사는 이제 발 하나 담갔을 뿐인데다 박 회장이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공개를) 결단하겠다”고 의지를 굳혔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은 “궁지에 몰려서 돈을 준 사람 이름과 경위를 얘기하다 보니 구속자와 소환 대상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서갑원 민주당 의원이나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나 참 가슴이 아프지만 (돈을) 주지 않고 어떻게 줬다고 하겠느냐. 틀림없이 돈을 줬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검찰 PK 후원내역 확인
“차라리 공개수사 하라”
또한 “국회의원 여러 명이 걸려 있는데, 공무원들에게 전별금도 주고 했던 것처럼 (내가) 살아 왔던 방식대로 한 것”이라고 말해 그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국회의원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박 회장은 자신이 고백하지 않은 것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분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해 PK, 그리고 친박계의 ‘경보등’이 아직 꺼질 때가 이님을 분명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