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즉통(窮則通)’이라 했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밀월설이 나돌고 있다.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DJ와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충돌하면서 두 사람이 공동 대응에 의기투합하고 있는 분위기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월20일 한국 방문시 DJ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DJ에게 한껏 힘이 실리고 있다. 또 오바마 행정부가 DJ의 햇볕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DJ가 과거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남북교류가 활발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 정상화를 예정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DJ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신밀월설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금강산 피격 사건과 개성공단 폐쇄 문제, 광명성2호 발사 등 잇따른 대형 악재는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DJ와 오바마 미국 대도 어려운 숙제를 던져 주고 있다. DJ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햇볕정책’은 퍼주기식 정책에 불가하다는 비판을 받는가 하면, 북한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높아진 이후에는 햇볕정책을 놓고 여야가 더욱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 문제를 다룰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위 채널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야 ‘햇볕정책’ 논쟁
여당 인사들은 “그동안 햇볕정책은 말 그대로 퍼주기식 정책에 불과했다. 이는 잘못된 정책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북특사 문제도 광명성2호 발사 문제로 인해 정치권의 또 다른 논쟁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앞으로도 외국 특사를 보낼 예정인데 지금까지 정부대표만 갔으나 이제는 여야 정치인을 두루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자신감과 비전, 콘텐츠를 가진 인물이 가야 한다. 정주영씨가 소떼를 몰고 북한에 갔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특사가 갔지만 이벤트로 그쳤기 때문에 북한이 달라지지 않았다”며 “앞으론 김 위원장 앞에서 기분 나쁜 소리도 하면서, 그가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깨우침을 주는 인물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내부의 이 같은 주장에 DJ 최측근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박 의원은 “자기가 가서 김정일을 설득하고 따지겠다고 하는데 따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며 “원론적으로 특사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좋은 방법이지만, 특정인이 나서서 내가 가겠다고 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사실 햇볕정책은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협력과 화해체제를 구축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이산가족 상봉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북 송금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 부분이 소홀하게 취급되는 등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지 못해 적잖은 파문을 야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DJ는 집권 여당의 공세에 맞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적잖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어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차별화를 분명히 해 가뜩이나 미사일 발사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더욱 꼬이고 있는 형국이다.
오바마 정부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대북 제재조치 등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힐러리 국무장관이 DJ에게 각별히 안부전화를 하면서 대북정책과 북핵문제를 논의한 배경에는 오바마 정부가 DJ의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스워스 특별대표가 ‘인내심과 지혜를 갖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DJ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클린턴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8년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DJ와 긴밀한 동반자관계를 형성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던 인연이 있다. 보스워스 특별대표도 평소에 DJ정부 정책을 좋아했던 인물이었다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즉 두 사람의 이 같은 발언은 DJ의 햇볕정책을 끌어안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복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DJ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과잉 대응을 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화해기류를 조성해야 하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실제로 힐러리 국무장관은 지난 2월
20일 중국으로 출발을 앞둔 시점에서 DJ와 전화통화를 하는 등 대북정책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있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저와 남편은 대통령님과 함께 일을 했던 시절에 대해 좋고 따뜻한 추억(positive and fond memories)을 간직하고 있다”며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본보기(example)와 지도력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던 것.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이를 ‘DJ 햇볕정책 옹호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바마, DJ 햇볕정책 계승?
DJ 핵심인사인 박 의원은 지난달 12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힐러리 국무장관과 보스워스 대표는 DJ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이고, 현재의 위기에 대해서는 과잉반응을 않겠다는 정책을 확실히 밝혔다”며 “이는 사실상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DJ의 햇볕정책을 정점으로 대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교감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른바 오바마-DJ 밀월설인 셈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대북 핫라인이 사실상 없어진 단계”라며 “힐러리 국무장관이 DJ에게 전화통화를 한 것 등을 비춰봤을 때 미국 정부가 DJ의 햇볕정책을 추구함과 동시에 남북문제에 대한 서로간의 논의가 있지 않겠느냐”고 밝혀, DJ-오바마 간의 교감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