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화려한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언제 어디서나 관심의 대상이다. 숨겨진 재벌 가문의 가족사는 특히 더하다. 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에서다. 일반인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여겨지는 탓에 재벌가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희로애락을 겪는다. 집안 식구들의 문제로 울거나 웃거나 혹은 가슴 졸이거나 머리를 싸매는 일이 일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중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입은 비운의 로열패밀리도 적지 않아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남편을 잃은 안주인들이 그렇다. 현대가엔 유독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며느리들이 많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6남2녀의 형제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들을 뒀다. 게다가 3세까지 30여 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그러나 다복한 현대가문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대로 슬픈 가족사를 갖고 있다. ‘정주영 패밀리’ 중 비명횡사한 첫 인물은 정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씨다. 신영씨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62년 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장폐색으로 32세에 돌연 세상을 등졌다.
정 창업주는 6형제 가운데 신영씨를 가장 아꼈다고 한다. 그만큼 정 창업주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 창업주가 1977년 신영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을 통해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관훈동 신영기금회관엔 2007년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정주영-정신영 형제의 동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기자들의 저술과 학술연구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신영연구기금은 현재 신영씨의 미망인 장정자씨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정 창업주는 1985년 제수씨인 장씨에게 서울현대학원(현대고등학교 이사장)을 맡겼다. 장씨는 한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신영-장정자 부부는 신영씨가 요절하기 3년 전인 1959년 함부르크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장씨는 당시 함부르크 국립음악대 유학 중이었다.
이들 부부는 1남1녀(몽혁-일경)를 뒀다. 이중 장남 몽혁씨는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2년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퇴진, 이후 자동차 주물부품 제조업체인 메티아(전 아주금속) 경영을 통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범현대가 장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2005년 6월 현대차 계열사인 메티아 대표이사로 몽혁씨의 자리를 봐줬다는 후문이다.
현대가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영씨가 사망한 지 꼭 5년이 흐른 1982년 4월 당시 인천제철 사장으로 재직하던 정 창업주의 장남 몽필씨가 49세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
현대가 가신들에 따르면 몽필씨는 승용차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사망했는데 일본에서 귀국하는 ‘왕회장’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정 창업주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사고인 셈이다. 그는 장남을 잃고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말로 주위에 비통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필씨는 ‘배다른 형제’ 정몽구 회장과 함께 경영권 승계 1순위였다.
가족으론 아나운서 출신의 부인 고 이양자(1991년 위암으로 사망)씨와 두 딸(은희-유희)이 있다. 장녀 은희씨는 1995년 현대전자 평사원과, 차녀 유희씨는 1999년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각각 결혼했다.
슬픔이 잊혀질 만 했던 1990년 4월과 2003년 8월 현대가에 또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정 창업주의 4남 몽우(전 현대알미늄 회장)씨와 5남 몽헌(전 현대그룹 회장)씨가 잇달아 자살한 것.
45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몽우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서울 강남 역삼동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했다. 부인 이행자씨와 사이에서 3남(일선-문선-대선)을 뒀다.
장남 일선(BNG스틸 사장)씨는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장녀 은희씨와, 차남 문선(BNG스틸 이사)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장녀 선희씨와, 3남 대선(BS&C 사장)씨는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55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몽헌씨는 ‘현대 비자금’ 관련 검찰의 수사를 받던 도중 서울 계동 본사 1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했다. 부인 현정은(현대그룹 회장)씨와 사이에서 1남2녀(지이-영이-영선)를 두고 있다.
삼성가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 가족이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 고 이창희(전 새한그룹 회장)씨다. 창희씨는 1991년 7월 백혈병으로 미국에서 치료 중 58세의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1963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 나카네 히로미(1986년 이영자로 개명)씨와 결혼, 3남1녀(재관-재찬-재원-혜진)를 뒀다. 장남 재관씨는 김용대 동방그룹 회장의 장녀 희정씨와, 차남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 선희씨와, 3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회장의 딸 지연씨와, 막내딸 혜진씨는 조내벽 라이프그룹 회장의 아들 명희씨와 혼인했다. 이들 가족은 창희씨의 작고 후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가한 새한그룹을 출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몰락하고 말았다.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장남 고 최윤원(전 SK케미칼 회장)씨도 2000년 8월 50세를 일기로 지병으로 별세했다. 기업인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동생이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겐 사촌형이다. 윤원씨는 부인 김채헌씨와 사이에 1남3녀(서희-은진-현진-영근)를 뒀다.
최 창업주도 1973년 젊은 나이(48세)에 폐암으로 타계했다. 이후 SK그룹 경영권은 최 창업주의 동생 고 최종현 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이 물려받았다. 최종현 회장 역시 1998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황태자’를 가슴에 묻은 재벌가도 있다. 일반인 입장에선 탄탄대로인 미래를 뒤로한 이들의 죽음이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이기 마련. 하지만 ‘비운의 황태자’들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나 자살에 이르기까지 각기 나름의 사연을 품고 있다. 당연히 어떤 이유로든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고생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일가는 아들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른다. 20세도 못 채우고 비명횡사한 외아들 원모씨 때문이다.
‘남편 먼저 보내고…’부군 잃은 안주인 평생 독신생활
“형님 대신 형수님 수발” 장손 등 범그룹 차원서 지원
1990년대 중반 고등학생이던 원모씨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선 LG그룹 관계자들조차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급사란 것만 확인될 뿐이다. 일각에선 원모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사망했다”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LG 황태자’였던 원모씨가 생존해 있다면 30대 후반으로 삼성가 이재용(삼성전자 전무)-범현대가 정의선(기아차 사장) 등과 함께 재계의 주목을 받을 나이다. 그러나 그는 LG 일가의 가슴에 박힌 커다란 ‘대못’으로 남아있다.
구 회장과 부인 김영식씨는 지금도 가끔씩 원모씨의 위패가 안치돼 있던 삼청동 칠보사를 찾아 슬픔을 달랜다고 한다. 딸만 둘(연경-연수)인 구 회장은 ‘대’를 잇기 위해 2004년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씨를 양자로 호적에 올렸다.
삼성가도 2005년 11월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부인 홍라희씨와 사이에서 1남3녀(부진-서현-재용-윤형)를 두고 있는데 이중 3녀 고 이윤형씨가 26세에 미국 유학 중 사망한 것.
윤형씨의 사인은 당초 알려진 교통사고가 아닌 뉴욕 맨해튼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이 전 회장의 사랑을 독차지한 만큼 삼성가의 충격은 더욱 컸다.
롯데가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롯데우유 회장은 장남 고 신동학씨가 사망한 가슴 저린 사연을 갖고 있다. 동학씨는 2005년 6월 태국 방콕공항 인근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37세. 그는 후배 한 명과 태국에 입국한 이후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국을 앞두고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한순용 전 한대산업 회장의 딸 한일랑씨와 결혼, 2남1녀(동학-동식-경아)를 뒀다. 사고를 당한 동학씨는 롯데에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 11월 장남 선재씨를 잃었다. 선재씨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23세에 요절했다. 김 전 회장과 부인 정희자씨는 아들의 사고 소식에 통곡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선재씨가 사고를 당한 이유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어머니 정씨를 마중하러 나가던 길이란 점은 이들 부부의 가슴을 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선재씨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 MIT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씨는 졸지에 세상을 등진 선재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선재미술관을 설립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1994년 “인기탤런트 L씨가 선재씨를 닮았다”는 이유로 양아들을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