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성역이 무너지면서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몇몇 직업에 남성들이 뛰어들고 있다. 골프 캐디를 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추세가 단적인 예다. 이 같은 서비스직군에 남성들의 진출이 늘면서 더불어 증가하는 것이 여성들에 의한 남성 성희롱이다. 특히 살을 맞부딪히기 쉬운 수영강사, 헬스트레이너 등은 아줌마 회원들의 음흉한 시선과 질펀한 농담을 견디는 것이 고역 중 하나다. 직장 내에서 여자 상사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는 일도 흔히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된 직장 성희롱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들이 겪고 있는 성희롱을 취재했다.
흔히 성희롱은 여성들이 자신보다 권력과 지위가 높은 남성에게 당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장 성희롱’이라고 하면 여성 피해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성 인권이 신장되고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여자 상사나 고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특히 여자 손님을 많이 상대하는 서비스직군의 남자 직원들에게 성희롱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골프 캐디다. 몇 해 전부터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 캐디를 선택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요즘 같은 구직난에 캐디가 되려는 남성들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도의 한 골프장은 남자 캐디 30명 모집에 600명 이상이 몰렸을 정도로 남자 캐디는 인기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됐다.
이렇다보니 남자 골프캐디를 양성하는 전문업체가 생겨날 정도다. 고소득에 기숙사와 식사 등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는 등 처우가 좋다는 것이 캐디의 인기를 높이는 매력으로 꼽힌다.
문제는 여자 고객들로부터 당하는 성희롱이다. 일부 중년 여성고객들이 노골적인 성적 농담을 건네거나 고의로 신체 특정 부위를 터치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경기도 모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고 있는 A(29)씨도 여자고객들로부터 당하는 성희롱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토로한다. 체육학을 전공한 A씨가 골프 캐디가 된 것은 1년 전이다. 우연히 학교 선배를 통해 골프 캐디가 된 A씨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한다. 특히 골프 캐디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부모님은 “골프 캐디는 여자들이나 하는 직업 아니냐. 골프 치는 사람들 시중이나 드는 걸 왜 하려고 하느냐”며 A씨를 만류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해 6개월간 백수생활을 했던 A씨는 전공도 살릴 수 있고 수입도 괜찮은 골프 캐디란 직업이 좋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산이 A씨를 가로막았다. 그것은 여자 고객들로부터 당하는 성희롱.
처음엔 어머니뻘의 손님들이 던지는 진한 농담에 당황했지만 웃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 “예쁘게 생겼네”, “밤에 여자 친구한테 잘 해줘?”등의 농담은 애교수준이라고 한다.
A씨는 “한 단골 손님은 수시로 엉덩이를 툭툭 치고 가슴팍을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심지어 단둘이 술 한잔 하자는 은밀한 제안까지 하는 손님도 있어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A씨는 남자들이 당하는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성희롱은 남자보다 약한 여자들이나 당하는 것이고 설사 여성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해도 별로 기분이 나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되니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와 직장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남자 수영강사 가운데도 여자 회원들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은 채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수영강사들이 여자 회원들의 짓궂은 시선을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손바닥만 한 삼각 수영 팬티는 여성들의 눈요기를 위한 팬 서비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학시절 잠시 수영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모(27)씨는 지금도 강사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 호남형의 인상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인 이씨는 2년 전 강남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수영강사로 일을 했다.
그가 맡은 반은 낮 시간대 주부반. 강남의 부유층 사모님들이 그가 맡은 회원들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은 첫 수업시간부터 감지됐다. 새로운 젊은 선생님의 등장에 40~50대 중년 여성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
직장상직장상사·고객으로부터 성희롱 당하는 남성 피해자 늘어
남자 캐디, 수영강사 등 신체접촉 잦은 직업 성희롱 많아
여성 회원들은 처음 만난 사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친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오빠’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쓰는가하면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을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싫지 않아 성희롱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씨.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들의 신체접촉은 그 수위가 높아졌다.
“아들 같아서 그래”라는 말로 안심(?)을 시킨 뒤 가슴을 더듬는 회원부터 실수를 가장해 엉덩이를 만지는 회원까지 다양한 방식의 스킨십이 이뤄졌다고 한다. 회원들의 질투심도 이씨를 괴롭혔다. 한 회원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 동작을 봐주면 다른 회원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와 그 회원을 노려보는 등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났던 것.
온갖 성희롱과 신경전에도 꿋꿋이 일을 하던 이씨가 수영강사를 그만둔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에도 유난히 스킨십이 잦아 이씨를 불쾌하게 했던 한 회원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기에 손을 갔다댔고 참지 못했던 이씨가 그 회원에게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했던 것.
그러나 스포츠센터 측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발뺌하는 여자 회원의 말만 존중했고 이씨가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사건이 무마됐던 것이다.
이씨는 “내가 가르쳤던 회원들이 유독 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수영강사는 생각하기도 싫은 직업이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헬스트레이너 역시 수영강사만큼이나 신체접촉이 많은 만큼 성희롱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은 직업이다.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가진 헬스트레이너에게 눈독을 들이는 일부 여성들에 의한 성희롱이 그것이다.
경기도의 한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를 하고 있는 B(29)씨도 때때로 당하는 성희롱에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고 한다. 주로 자신의 몸을 두고 짙은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를테면 “저 허벅지 근육 좀 봐, 애인은 좋겠네”, “코가 크면 그것도 크다는데 ㅇㅇ씨도 그래?”, “어떤 운동을 해야 코치님처럼 엉덩이가 섹시해질까요?” 등의 짓궂은 말들이다.
유들유들한 성격으로 여자후배나 친구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았던 B씨도 이 같은 농담은 참기 힘들다고 한다. B씨는 “그동안 여자들에게 장난삼아 성적 농담을 건넨 것이 후회된다”며 “당하고 보니 당사자의 심정을 알겠다”고 털어놨다.
판매직이나 영업직 등에 종사하는 직원들 역시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성희롱쯤은 감수하기도 한다. 유명 외제차 회사에서 딜러로 근무했던 김모(28)씨도 여성 고객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인기연예인을 쏙 빼닮은 얼굴에 큰 키, 재치 있는 말투를 가진 김씨는 2년여 전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입사했다.
수려한 용모의 김씨가 상대했던 고객은 주로 돈 많은 중년여성들. 워낙 고가의 자동차이기 때문에 한 대를 팔기도 어려웠던 그는 성심성의껏 고객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기라도 하듯 일부 고객들이 성적 농담을 건네거나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여성은 자신의 애인이 돼 주면 차를 사 줄 사람을 많이 데리고 오겠다며 진지하게 유혹을 하기도 했다고. 결국 김씨는 영업직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넉 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판매사원도 예외는 아니다. 백화점 양복코너나 신발코너 등에서 일하는 남자직원들 중 고객들로부터 성희롱에 가까운 언행을 들을 때가 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객들에게 당하는 성희롱이 아닌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상사에게 당하는 성희롱도 존재한다. 이는 특히 여자들의 비율이 높은 회사에서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여자 상사가 많은 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모(30)씨 역시 때때로 당하는 성희롱에 불쾌하다고 말한다. 1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정씨는 자신이 성희롱의 대상이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다른 팀의 직원들도 “꽃밭에 둘러 싸여 좋겠다”며 부러워했고 정씨 역시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첫 번째 회식자리에서부터 정씨는 상사들의 안주감이 됐다고 한다. 술이 거나해진 여자 상사와 동료들이 서로 정씨를 옆에 앉히려고 각축전을 벌일 때만 해도 웃어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정씨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와 몸을 밀착시켰고 성적 농담도 난무했다. 그렇게 악몽 같은 첫 회식을 치룬 정씨는 다음날 찝찝한 기분을 안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상사들은 이전의 점잖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술김에 장난친 건가’란 정씨의 생각이 깨진 것은 며칠 지나지 않은 후였다고 한다. 근무 중에도 수시로 성희롱성 발언들이 정씨에게 쏟아졌던 것. 이런 생활이 1년 동안 지속되자 정씨는 이제 짙은 농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한다.
정씨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성희롱을 당해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라 여기는 것 같다”며 “성희롱을 당한 뒤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는 여자들이 부러울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성희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 직장성희롱 방지 전문 강사는 “일부 여성들이 남자 직원들에게 성희롱을 하면서도 별다른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당했을 때 남성들도 분명히 성적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