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천국 한국에 떠돌아다니는 가짜명품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중국 등에서 짝퉁 명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한 일당이 덜미를 잡힌 것. 이들이 들여온 제품들은 불황의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명품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이 차선책으로 짝퉁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도 뛰어넘는 짝퉁 명품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중국서 SA급 가짜 명품 들여 와 파는 판매상들 속속 적발
불황 속에서 진품 대신 짝퉁 선호하는 이들 늘어 시장 커져
불황 속에서도 끝없이 비행기와 배를 타고 들어오는 물건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짝퉁 명품. 식지 않는 짝퉁의 인기 속에서 온갖 종류의 가짜명품들이 은밀하게 들어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팔리고 있다.
“SA급 팔아요”
최근에는 인터넷쇼핑몰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가짜 명품시계를 판매해 온 일당이 붙잡혔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에서 제조된 롤렉스, 까르띠에, 쇼파드 등 유명브랜드 위조품 200억원어치를 수입해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들이 수입한 것은 이른바 ‘SA급’ 제품들. 이는 짝퉁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최상급 짝퉁으로 전문가들조차 식별이 어려운 제품들을 말한다. 진품이라면 300만원에서 4억을 호가하는 이 제품들은 인터넷을 통해 개당 30만원에서 100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세관조사 결과 이들은 중국내 제조, 국내 수입 운송, 인터넷쇼핑몰 운영, 구매요청에 따른 국내 배송 사후관리, 중국으로 송금 등 역할을 분담한 뒤 대포계좌를 통해 입금 받은 대금은 환치기 수법으로 중국으로 불법 송금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하면 중국에서 짝퉁 명품가방을 들여와 유통한 일당들도 최근 덜미를 잡혔다. 해양경찰청 외사과는 한국과 중국국제여객선을 통해 중국에서 밀수입된 위조 명품가방을 서울 동대문과 이태원 일대 소매상에게 택배나 택시를 이용해 판매한 이모(49)씨 등 3명을 검거했다.
해양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짝퉁을 제조하는 공장을 차려놓고 90억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제조했다. 이들이 만든 것은 루이비통, 샤넬 등 인기명품가방이었다. 전문 기술자를 고용해 위조 상표 금형(상표 제작틀)까지 이용해 정교하게 만들어 겉보기엔 진품과 다를 바 없었다.
이 가방은 동대문, 이태원 등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들 일당이 벌어들인 돈은 5000여만원. 해양경찰은 검거 당시 공장에서 발견된 샤넬 가방 등 시가 9억원 상당의 456점을 압수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지난 2월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짝퉁 명품시계를 진품인 것처럼 속여 인터넷에서 판매해 1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도 적발됐다. 이들 일당은 인터넷 쇼핑몰에 ‘명품시계를 싸게 판다’는 허위광고를 내고 비싼 가격에 시계를 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판 시계는 무려 1만 여 개.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홍콩에서 국제우편과 택배 등을 통해 짝퉁시계를 밀수입한 뒤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짝퉁 명품은 불황 속에서 오히려 더 활개를 치고 있다. 주머니사정이 어려워 진짜 명품을 사기 힘든 이들 중 차선책으로 짝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짝퉁 시장을 확대시키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불황에도 명품시장은 활황이라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진짜 부자’들이나 살 만한 브랜드에 한해서다. 명품 중의 명품인 ‘위버럭셔리’(초고가 명품) 브랜드가 그것.
이에 비해 대중화된 명품인 ‘맥럭셔리’(맥도날드 햄버거처럼 흔한 명품) 브랜드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맥럭셔리 제품들을 구매하던 ‘적당한 부자’들 중 일부가 짝퉁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서울 청담동에서 미용업을 하는 A(여·48)씨도 얼마 전부터 짝퉁 명품 마니아가 됐다. A씨가 처음부터 짝퉁제품을 산 것은 아니었다. 경기가 좋아 수입이 많을 때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을 이용해 진짜 명품을 샀다.
그러나 불황의 파고가 닥치면서 신상명품을 거침없이 사는 것은 남의 일이 됐다. 그렇다고 명품의 유혹을 떨칠 수는 없었다. 명품의 메카 ‘청담동’에 살고 있다는 것은 A씨를 압박하는 큰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유행이 지난 명품가방, 신발 등을 지니기엔 보는 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차선책으로 짝퉁 명품을 찾기 시작했다. 짝퉁이라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사지는 않았다. A씨가 사는 제품들은 겉으로 보기엔 진짜와 다를 것 없는 SA급 짝퉁들이다. 진품을 상징하는 번호인 ‘티씨코드’와 ‘시리얼넘버’까지 찍혀 있어 일반인은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는 제품들이다.
전문가도 ‘아리송’
A씨가 선호하는 브랜드는 샤넬. 짝퉁으로 넘쳐나는 루이비통보다는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개당 가격은 50만원을 호가한다. 웬만한 브랜드의 진품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짝퉁가방을 사고 있는 것.
가짜 명품을 사면서 생각보다 주위에 짝퉁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 헬스클럽이나 피부관리실이 짝퉁제품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A씨는 “짝퉁 가방을 들고 나가도 우리 동네에선 ‘그 가방 진짜냐’고 묻지 않는다. 당연히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라며 “내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것만 빼면 진품을 샀을 때와 다를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짜 같은 가짜 명품들이 판을 치면서 ‘짝퉁천국’이란 오명이 붙어 다녀 국가이미지와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