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경찰 물갈이 후폭풍<밀착취재>

2009.03.10 09:13:37 호수 0호

“칼은 뺐으니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할 텐데…”

경찰이 경찰관과 유흥업소 업주 사이의 고질적 유착을 근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단행할 ‘강남경찰 물갈이’가 시작도 하기 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물갈이 대상이 될 하위경찰직의 반발로 연기와 축소를 거듭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여기에 과연 강남과 강북 경찰을 뒤섞는 것만으로 고질적인 비리가 사라지겠느냐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도 한몫 거들었다. 이미 두 번이나 물갈이 인사가 단행됐지만 눈에 보이는 효과는 미미한 탓이다. 이처럼 반발과 비난의 목소리 속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대대적 물갈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강남 유흥업소 업주와 관할경찰 유착비리 드러나 물갈이 단행
강남 3개 경찰서 600여명 경찰, 강북경찰과 맞바꾼다는 계획
위로부터 개혁 없이 하위직에게만 책임 전가한다며 반발
여론도 싸늘…비리척결 대책 빠진 보여주기식 이벤트다?



지난 1일, 경찰은 서울 강남지역의 경찰을 대폭 물갈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강남, 수서, 서초 경찰서의 형사과, 여성청소년계, 교통사고조사계, 생활안전계, 지구대 등 ‘민원부서’ 경찰관 중 8년 이상 근무한 경위급 이하 직원에 대한 전보지침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 물갈이 부른
안마업소 여사장 비리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 계획과 관련해 “일부 부작용이나 아픔이 있더라도 경찰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대적인 물갈이 명분은 ‘인적교류를 통한 근무기강 확립’과 ‘균등한 근무기회 부여’라는 것. 그러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최근 드러난 강남지역 유흥업소와 경찰 간 유착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
물갈이의 원인이 된 것은 유명 안마업소 여주인이 수년간 관할지역 경찰들에게 뇌물을 주고 단속을 피해온 사건이다.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115억원이란 돈을 벌어들인 조모(40·여)씨와 남모(46·여)씨의 영업비결은 단속경찰관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두는 것.

2005년 2월부터 서울 역삼동과 논현동에서 K안마와 D안마를 운영한 이들은 2006년 5월부터 2년 동안 자신의 업소를 관할하는 논현지구대 경찰관들에게 한 달에 30만원이 든 봉투 3개를 건넸다. 목적은 하나였다. 자신의 업소 앞에서는 단속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담긴 봉투였던 것.
이런 방식으로 2년 동안 경찰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2200여만원. 돈을 받은 경찰 중 한 명은 지구대 앞으로 업주를 불러내는가 하면 안마시술소 앞까지 찾아가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검찰조사 드러났다. 이처럼 경찰과 유흥업소 업주 간 끈끈한 유착관계가 만천하에 공개된 직후 강남경찰의 물갈이계획이 발표된 것.
 
그러나 이 같은 발표에 박수를 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곳곳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 물갈이 계획은 칼을 빼기도 전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물갈이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차가운 여론의 시선이다. 경찰과 업주 간의 고질적인 유착 고리를 끊을 근본적인 대책마련 없이 단발성으로 보여주기 식 이벤트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팽배한 것.
관련 뉴스를 본 한 시민은 “경찰이 뒷돈을 받고 단속을 무마해 주는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강남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닌데 강남과 강북 경찰을 섞는 것이 무엇을 변화시킨다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고 꼬집었다.

물갈이 계획에 가장 큰 방해요소가 된 것은 물갈이 대상이 될 경찰들의 반발이었다. 강남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들은 “지휘부는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서 있으면서 하위직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는 조치”라며 위로부터의 개혁 없이 되풀이되는 물갈이대책에 한숨을 쉬고 있다.
또 강남지역 경찰관을 잠재적인 ‘비리경찰’로 보고 단행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 경찰도 적지 않다. 강남지역의 한 경찰은 “다른 지역으로 전출된다면 뒷돈이나 받아먹은 비리경찰로 낙인찍힐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출 대상자의 가족들도 불안감을 나타냈다. 현재 남편이 강남지역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여성은 서울지방경찰청 게시판에 “강남 서초 수서 대상에 오른 많은 경찰가족을 대표해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라는 내용의 글로 물갈이 조치의 부당함을 알렸다.
이 여성은 “남편은 누구보다도 성실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한 명의 직원이 문제가 되어 일이 발생됐다면 해당부서의 문제로 해결을 하든지 전체 경찰서를 대상으로 시행을 하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잣대를 세우고 일을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소리 없이 열심히 일하는 우리가 희생되어야 합니까”라며 억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전보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수긍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내부적으로 세운 전보 대상자 기준은 유흥업소 업주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그럴 개연성이 농후하거나 단속요청 신고를 접수하고도 처리가 미흡한 경찰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비리혐의 등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유흥업소 업주와 유착가능성이 있는 경찰’을 가려내 전출시킨다는 것. 이는 모든 강남지역 경찰이 전보 대상자에 속할 수도 있는 모호한 기준이기도 하다. 이에 당사자들의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비 강남권 경찰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강남지역으로 가겠다는 희망자의 수도 생각보다 적었다. 이유는 경찰들에게 강남은 예전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 좋은 강남’이란 것도 옛날 말이라는 것.

물 좋은 강남권
더 이상 선호 안해

한때 강남은 경찰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유흥가뿐만 아니라 고급 상가와 대기업이 밀집되어 있는데다 주말집회나 시위 진압 등에 동원되기 십상인 강북지역의 경찰서보다는 업무가 편하다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졌다. 각종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는 강남지역보다는 업무강도가 비교적 낮은 은평, 도봉 등 강북 경찰서나 교육환경이 좋은 양천, 노원경찰서 등이 새롭게 각광받는 인기 지역으로 떠오르는 것. 이 같은 이유로 애초에 600명의 경찰을 물갈이하겠다는 경찰의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강남지역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업주들도 이번 조치가 달갑지만은 않다. 잘 보여야 할 경찰의 면면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것. 강남에서 룸살롱을 하는 한 업주는 “새로운 경찰이 오면 또 인사를 하러 가야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게 생겼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물갈이 인사가 비리 척결에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도 점차 커지기만 했다. 이 같은 물갈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나 대대적인 물갈이조치가 단행됐던 것.

서울청은 1999년과 2003년에도 강남지역 경찰관을 대거 전출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비리를 저지르는 경찰의 수는 늘어만 갔다. 최근 5년간 서울 지역 경찰관의 징계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4년 281건이던 비위 건수는 조금씩 줄어 2007년 143건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257건으로 또다시 늘어났다. 유흥업소 업주들이 경찰에게 바친 뒷돈 역시 해가 갈수록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이 지난 5일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에게 제출한 ‘경찰 청렴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유흥업소 업주들은 담당 경찰관에게 단속 무마 등 청탁과 함께 1년 평균 269만6100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6년 100만5000원, 2007년 112만 3500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금액.

단발성 이벤트?
효과는 미지수


특히 이번 조사에는 문제가 된 강남, 수서, 서초경찰서는 포함되지 않아 그 액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강남 3구 경찰서가 조사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경찰은 “조사 이전 1년간 경찰관 범죄나 징계가 많은 경찰서를 선정한 결과”라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김태원 의원은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유흥업소 단속을 맡은 경찰이 아직도 비리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경찰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규모 인사 조치 등 보여주기식 인사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주민신고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찰내부의 반발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자 경찰은 이번 물갈이 계획을 연기하고 전출 대상자의 수를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계획이 발표될 때만 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이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였으나 3월 말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 서장들에 대한 인사가 조만간 있을 예정이어서 강남지역 경찰관들에 대한 전보 인사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출대상자의 수도 대폭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에는 597명의 강남경찰을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키겠다는 계획이었으나 250명 선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 것.

이처럼 여론과 내부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원칙과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도 않고 급하게 보여주기 식의 물갈이를 단행하려 한 결과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찰 비리 척결을 위해선 일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물갈이보다는 내부 감시, 감찰을 위해 도입한 청문감사관 제도, 지방경찰청 감찰 기능 등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부정부패에 취약한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을 바꾸는 정도의 응급처방만으로는 비리를 막을 수 없다”며 “유흥업소 밀집지역 등의 감독체계를 강화하고 주민신고제도를 활성화하는 등의 제도적 기반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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