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지면서 덩달아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르바이트 자리다. 대학생 등 미취업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알바 전선’에 직장인까지 뛰어든 것도 알바 전쟁에 한몫을 거들고 있다. 이렇다보니 과외나 패스트푸드점 등 고상한 알바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대신 몸까지 팔아가며 돈을 버는 위험한 알바에 뛰어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루타 알바’라 불리는 생동성 시험부터 대리모나 장기매매 등의 불법알바까지 위험천만 알바들이 돈벌이에 목마른 이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가진 건 몸뿐이라는 절박한 심정의 ‘몸 팔이 알바’ 천태만상을 취재했다.
대학생 정모(26)씨는 지난 1월 한 제약회사가 시행한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에 참가했다. 이른바 ‘마루타 알바’로 불리는 이 아르바이트는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시판하기 전 기존의 오리지널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약물을 실제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두 약물이 동등한 약효를 나타내는지를 증명하는 실험이다.
취업만큼 어려운 알바
결국 실험용 쥐 신세
제대 후 복학을 앞둔 정씨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겠다는 계획 하에 알바 자리를 알아봤다. 알바 자리쯤 쉽게 구하리라 여겼던 정씨의 생각은 빗나갔다. 제대 전과는 상황이 달랐던 것.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했던 과외아르바이트 자리는 씨가 말랐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연락해 과외자리를 부탁했지만 한번 알아보겠다는 시큰둥한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출신이나 재학생이 아니면 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 불황에 교육비를 줄이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과외를 받는 학생의 수가 줄어든 탓이었다.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의 알바는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의 몫이었고 사무직 알바의 경우 남자보다는 여자를 선호했다. 결국 남은 것은 대리운전이나 유흥업소 등 밤이슬을 맞고 일하는 알바뿐이었다.
아르바이트자리 갈수록 줄어 고수익 몸 팔이 알바 인기몰이
마루타알바, 대리모, 장기매매 등 위험 감수한 알바도 성행
키스방 등 유사성행위 업소 고수익미끼로 여대생 유혹
성매매로 번질 수 있는 애인대행도 인기, 알바대열 가세
그러던 와중에 정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생동성시험이란 일자리였다. 출시도 되지 않은 약품을 먹는 실험에 참가하는 것이 마치 실험용 쥐가 된 듯한 께름칙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복학할 날은 다가오는데 통장잔고는 여전히 바닥이었고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마냥 손을 벌릴 수는 없었던 탓이다.
결국 정씨는 1박2일 일정으로 실험에 참가했다.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채혈 후 약물을 투약하고 하룻밤을 잔 뒤 다음날 한 번 더 채혈하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다. 실험에 참가하기 전 10시간 동안 금식을 한 것 말고는 특별한 노력도 필요 없었다.
아르바이트비도 비교적 센 편이었다. 한 번 시험에 참가하고 받는 돈은 35만원. 힘든 노동이나 머리싸움 없이 받는 돈 치고는 거액이었다.
정씨는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만 떨친다면 어떤 알바보다 쉬운 알바였다”며 “몸을 팔아서까지 돈을 벌어야 되느냐는 자괴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또 온다면 고민하지 않고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처럼 마루타 알바라 불리는 생동성 시험에 참가하려는 이들은 적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고수익 알바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설문조사로도 나타나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탈 알바몬이 153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학생의 58.3%가 “돈만 많이 준다면 ‘마루타 알바’와 같이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도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질문에 여학생은 40.6%가 일할 의사를 밝혔다.
과자나 음료 등의 식품을 출시 전 먹어보는 모니터 알바 역시 인기몰이 중이다. 이는 식음료업체들이 주관하는 알바로 식품을 먹은 뒤 맛이나 질감 등에 대한 느낌 등을 업체에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아르바이트로 꼽힌다.
장기매매 역시 음지에서 성행하는 몸 팔이 알바 중 하나다. 콩팥이라도 팔아 생활비에 보태려는 이들이 늘수록 위험천만한 거래 또한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관련업자에 의하면 장기를 파는 사람이 IMF때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사채를 썼다 빚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로 최후의 수단으로 신체의 일부분을 팔고 있다.
또 다른 몸 팔이 알바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은밀하게 시행되고 있는 대리모와 난자매매다. 이는 미혼여성들이 불임부부 등 아기를 원하는 이들을 대신해 자궁을 빌려주거나 난자를 파는 것. 현대판 ‘씨받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명백히 불법인 이 같은 은밀한 ‘몸 거래’는 주로 인터넷카페 등을 통해 이뤄진다. 포털사이트에 난자매매와 대리출산 등을 알선하는 카페를 만들어 불임부부 등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과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성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
은밀한 불법 알바
음지에서 몸 거래
지난해에는 이 같은 카페를 만들고 불임부부를 상대로 난자매매를 알선한 이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총 5단계로 나눠 사람을 사고팔았다. 1단계는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난자매매와 대리출산을 할 지원자를 모집한다. 2단계에서는 지원자의 사진, 학력, 혈액형, 키 등의 조건을 기재한 프로필을 수집하는 것.
3단계는 난자매매와 대리출산을 원하는 의뢰인에게 소개비를 받고 지원자의 프로필을 전달하는 것이다. 소개비는 대략 100만원선. 다음 4단계는 의뢰자가 지목한 지원자의 연락처를 전달하는 것. 마지막 5단계는 지원자와 의뢰자가 직접 만나는 단계다.
난자매매의 경우 의뢰인이 지원자에게 연락한 뒤 최종가격이나 채취병원 등 구체적인 사항과 향후 일정을 조정한다. 그리고 대리출산의 경우에는 대리출산 의뢰인과 지원자가 면접을 본 뒤 계약서를 작성한 후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는 단계다.
당시 난자매매나 대리모를 하겠다고 지원한 여성들은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로 고학력의 여대생, 유부녀, 수차례 대리모 경험이 있는 여성 등이었다. 점점 깊어지는 불황에 따라 자신의 난자나 자궁을 빌려주고 돈을 벌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여성들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인 해 드릴게요”
불법 성매매로 이어져
여대생은 몸 팔이 알바 자리가 누구보다 많다. 이는 주로 성(性)과 관련한 일자리로 유사성행위업소, 애인대행, 유흥업소 등이다.
특히 안마시술소, 대딸방, 키스방, 섹시바 등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유사성행위업소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평범한 여대생들까지도 이 같은 업종에 뛰어들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등록금벌이에서부터 카드빚 메우기, 성형수술비 마련, 명품 구입 등 갖가지 이유로 돈이 필요한 여대생들이 단기간 큰돈을 벌 목적으로 불법업소에 몸을 담고 있다.
또 ‘여대생’이란 단어만 붙어도 매출이 상승하는 세태는 더 많은 여대생들을 원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 관계자는 “가짜 여대생이 아닌 진짜 여대생들이 일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여대생 마케팅의 힘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굳이 업소에 출입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애인대행도 여대생들의 대표적인 아르바이트로 굳어지고 있다. 시간을 정해 놓고 낯선 남성들에게 애인노릇을 해주는 애인대행은 다른 알바에 비해 시급이 센데다 모르는 남성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일하기가 수월해 많은 여대생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사 줄 대상을 물색한다. 자신의 사진과 신체사이즈 등의 프로필, 자기소개 등을 올리고 돈을 지불해 줄 남성을 기다리는 것. 이를 본 남성들은 돈을 주고 만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골라 약속시간을 잡고 몇 시간만이라도 애인이 있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애인대행이 애인노릇에서 그치지 않고 성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애인대행으로 만난 남녀가 성관계 비용까지 주고받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처럼 깊어지는 불황은 몸까지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위험한 알바에 뛰어드는 이들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 같은 알바는 불법알바인 경우가 많은 만큼 구직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