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출발점은 지난해 5월1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때부터다. 이 판결은 단순한 법리 판단이 아니었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직접 건드린 사건이었으며, 선거의 정당성과 권력의 정통성을 동시에 흔드는 사안이었다.
이후로 보이지 않는 긴장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긴장은 빠르게 확산됐다. 사법 판단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권력 간 관계를 재정렬한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직접 연결된 사건일수록 그 파장은 더 크다.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법리는 법정에 머물렀지만, 그 의미는 정치로 이동했다.
사법부의 판단은 곧 정치권의 해석을 낳았고, 해석은 다시 갈등을 확대했다. 그렇게 충돌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이 흐름은 올해 인사 문제에서 폭발했다.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둘러싼 교착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 1월21일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김민기, 박순영, 손봉기, 윤성식 등 4명의 후보를 추천했다. 통상 이 단계 이후 2주 안에 제청이 이뤄진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제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이재명 대통령의 임명권이 같은 지점에서 멈춰 섰다.
결정적 전환점은 3월3일이다. 조 대법원장은 “계속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뒤 사실상 침묵에 들어갔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인선은 정지 상태다. 2월28일 노태악 대법관 임기 만료 이후 대법원은 완전체를 구성하지 못해이미 70일이 넘는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기준으로 보면 비정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비정상이 일상이 되고 있다.
지난달 초 국회를 통과한 사법개혁 3법이 같은 달 12일 공포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제 도입, 대법관 증원 논의가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제도 개편과 권력 충돌이 같은 시간대에 겹쳐진 것이다. 여기에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까지 이어지면서 개인과 제도가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다.
거기다 같은 달 19일 공수처가 조 대법원장 사건을 수사1부에 배당하면서 긴장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지금은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지만 상징성은 분명하다. 사법부 수장이 형사적 검토의 대상이 된 것이다. 권력 간 긴장이 ‘수사’라는 형태로 현실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상황은 되돌리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갔다.
정치권의 대응도 시간표에 맞춰 강화됐다. 같은 달 25일 범여권은 조 대법원장 탄핵소추안 발의를 추진하며 112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탄핵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준비된 선택지가 됐다. 지난 4일, 여권 핵심 조직은 탄핵 불가피 입장을 공식화했다. 정치가 사법을 직접 겨냥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권력 간 견제는 이제 충돌로 바뀌었다.
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결과로 수렴된다. 조 대법원장의 제청이 멈추면서 대통령의 임명권도 함께 멈췄다. 헌법이 설계한 권력구조가 실제로는 정지 상태로, 권력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균형을 위해 만든 장치가 오히려 작동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권력구조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 충돌이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다. 제청권과 임명권은 협력을 전제로 설계된 장치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를 멈추게 하는 장치로 변했다. 한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쪽도 움직일 수 없다. 이 구조에서는 타협보다 교착이 기본값이 된다. 지금 우리는 권력 분립이 아니라 권력 정지를 보고 있다.
여기에 사법개혁 3법이 결합되면서 균형은 더 흔들리고 있다. 법왜곡죄는 사법부 내부를 겨냥하고 있다. 재판소원제는 헌재와 대법원의 관계를 재편한다.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 권력구조 자체를 바꾼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 기존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문제는 이 변화가 합의가 아니라 충돌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태는 필자가 주장하는 ‘삼각형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입법, 행정, 사법이 균형을 이루면 국가는 안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한 축이 밀고, 한 축이 버티고, 한 축이 압박하는 구조다. 이 삼각형은 더 이상 정삼각형이 아니다. 각도가 틀어지면서 전체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의 균형이 깨지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고, 결단이 아니라 조정이다. 1월21일, 3월3일, 3월12일, 3월19일, 3월25일, 4월4일. 이 시간의 흐름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결과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충돌을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다. 권력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멈춰서는 안 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협의가 가능했던 문제가 이제는 양보가 아니라 굴복으로 해석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정치에서 시간은 해답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굳히는 장치다. 지금의 교착은 더 이상 조정 가능한 갈등이 아니다. 결단을 요구하는 충돌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조 대법원장이 제청을 단행하는 경우다. 이 경우 사법부 내부 균열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 대통령이 인선 기준을 조정하며 정치적 타협을 선택하는 경우다. 이 경우 권력 균형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 셋째, 정치권이 탄핵을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다. 이 경우 사법부는 구조적으로 재편되지만, 그 대가는 헌정 질서 전체의 불안정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어느 선택도 무상은 없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하느냐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그 비용을 뒤로 미뤄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그리고 지금은 선택하지 않는 선택이 가장 큰 비용을 만든다. 권력은 충돌보다 방치될 때 더 큰 위험이 된다. 지금의 교착은 그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인사의 문제가 아닌 권력 설계의 문제다. 제청권과 임명권은 충돌하라고 만든 권한이 아니다. 서로를 보완하라고 만든 장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장치가 서로를 멈추게 하고 있다. 설계가 작동하지 않을 때 국가는 멈춘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멈춤의 중심에 서 있다.
권력은 판결에서 흔들렸고, 인사에서 멈췄다. 그리고 지금 멈춘 것은 권력이 아니라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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