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의 머니톡스> 석유의 비명과 고금리의 귀환

2026.04.06 17:43:41 호수 1578호

5년 전,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예방주사를 맞았다. 중국발 요소수 대란은 거대한 물류 시스템이 얼마나 가느다란 공급망의 줄기 하나에 흔들리는지 경험했다. 50년 전의 석유파동까지 갈 것도 없다. 그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패권 제국은 언제나 오만하다.

미국의 이란 침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중동의 가스 공급망이 마비되자, 다시금 ‘요소’라는 단어가 공포의 이름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5년 전의 ‘해프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에는 공급처 다변화라는 외교적 처방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나프타와 천연가스로 지탱되는 석유화학 산업 생태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요소비료가 막히면 식량이 위태롭고, 요소수가 끊기면 물류가 멈춘다. 나일론부터 비닐, 플라스틱, 각종 첨가제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실체는 석유와 가스의 산물이다. 우리는 지금 탄소 문명의 정점에서, 그 성장의 원동력인 에너지 가격 변동에 목줄이 잡힌 채 떨고 있다.

유동성 파티가 남긴 숙취는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인류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저금리’라는 달콤한 마약에 취해 있었다. 저금리 시대를 더 굳건하게 만든 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다. 그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은 그야말로 대놓고 수도꼭지를 틀어 시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돈의 가치가 휴지 조각처럼 가벼워진 자리에는 자산 가격의 거품과 끝을 알 수 없는 부채의 탑이 쌓였다. “내일의 성장을 오늘 빌려 쓴” 오만함은 저금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됐다.

이 방만한 유동성 확장이 에너지 가격 폭등이라는 실물 경제의 충격과 만난다.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촉발된 원유 및 가스 가격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가격표의 숫자를 바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생산 원가 전체를 밀어 올리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뇌관을 때린다.

이미 고환율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공급망 붕괴로 인한 에너지 비용 가중은 치명적이다. 저금리에 길들여진 경제 주체들에게, 이제 돌아오는 청구서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불어나게 생겼다.

질문은 간명하다. 세계는 고금리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글로벌 분업 체계는 패권 국가의 인질로 굳어지는가.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에 의존했던 ‘글로벌 공급망’이 고금리 환경에서는 물류비용과 이자 비용뿐 아니라 환율상승까지 삼중고를 겪게 만든다는 얘기다.

한 세대 전, 두 자릿수 금리가 보편적이었던 시절은 기억에서 사라진 듯하다. 당시의 고금리는 성장의 과실을 나누기 위한 조절 장치였다면, 지금 마주한 고금리 흐름은 전혀 맥락이 다르다.

30년 전의 경제는 부채보다 자산이 많았고, 인구 구조는 젊었으며, 무엇보다 ‘성장’이라는 우상향의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가계부채가 임계점을 넘었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잠재 성장률은 바닥을 치고 있다.

30년 전의 금리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부채로 쌓아 올린 가상 현실의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의 고금리가 저축의 기쁨이었다면, 오늘의 고금리는 파산의 공포다.

이 비극의 발단에는 패권적 욕심을 위해 군사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하는 제국주의적 광기가 있다.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침략 제국주의는 에너지 패권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짓밟고, 전 세계 서민들의 삶을 볼모로 잡았다. 민주주의적 질서 뒤에 숨겨진 본질은 ‘자원 약탈’과 ‘지정학적 독점’이다.

제국의 총구는 이란을 향하고 있지만, 그 탄환은 한국의 화물차 운전사에게, 비료 가격에 시름하는 농민에게, 높은 물가와 대출 이자에 잠 못 드는 소시민의 가슴에 박히고 있다. 군사력을 통해 시장을 통제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행태는 문명의 진보가 아니라 야만으로의 퇴행이다.

미국만을 위한 패권 유지와 파괴적 군사 행동이 인류가 공들여 쌓아온 분업 구조와 상생의 생태계를 단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환상의 끝이 보인다. 저금리와 저유가라는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금리는 더 이상 일시적인 변동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상수(常數)가 된다는 얘기다. 30년 전의 고금리 환경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국가의 실질적인 ‘관리 능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에너지 주권을 외면하고 패권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안주했던 대가는 가혹하다. 이제라도 우리는 나프타와 가스에 종속된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력을 다져야 한다. 침략 제국주의가 뿜어내는 화약 냄새가 전 세계의 식탁과 물류를 위협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지독할 정도의 생존 전략이다. 

<ack39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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