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조국의 두 가지 실수

2025.09.22 10:35:30 호수 1550호

그때 그랬으면…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사과하기엔 늦었고 등판하기엔 일렀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정치 공백이 가져온 불안감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너무 성급했던 탓일까?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의 선택이 하나씩 엇나가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다시 출범했다. 당내 성 비위·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자유를 찾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중책을 맡게 됐다”며 “소통·치유·통합 등 세 가지 원칙에 따라 공동체적 해결을 위한 다양한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막힌 출구

당에서는 조 비대위원장의 조기 등판을 만류하는 이들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조 비대위원장은 “그것은 계산”이라며 “나는 그렇게 정치하지 않는다. 정치는 책임”이라고 자신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발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혁신당 김보협 전 대변인이 개인 의견을 SNS에 밝히면서 당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김 전 대변인은 “고소인이 주장하는 성추행·성희롱은 없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무죄추정의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고소 혹은 기자회견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일 뿐”이라며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주장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소인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고 당은 외부 기관 조사 결과를 100% 수용해 저를 제명 처분했다”며 “저는 그 외부 기관 보고서를 이른바 ‘피해자’의 진술‘만’이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다고 받아들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보보믿믿 보고서’라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성 비위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지만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그를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김 전 대변인의 발언에 혁신당에서도 당혹감을 내비쳤다. 혁신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전 대변인이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에 우려를 거듭 표해 왔다”고 밝혔다.

김보협 “성추행?” 해명 후폭풍
번져가는 불길, 어디부터 꼬였나

이어 “소명할 바가 있다면 수사 기관에 의견을 밝히면 될 일”이라며 “마치 피해자에게 들으라는 듯이 혐의를 부인하는 발언이 공표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강조했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 역시 “당 입장에서는 제명 조치를 했는데 이 상황에서 다시 이슈로 불거짐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문제에 대해 굉장한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조국만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는 당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화려한 복귀와 함께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려던 조 비대위원장의 앞날은 어디부터 꼬인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조 비대위원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던 순간을 꼽았다. 사면을 거절하고 잠시 잊혀진 채로 지냈더라면 출소 후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도가 높아졌을뿐더러 ‘조국의 강’을 완전히 건넜다는 명분까지 챙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다.

‘조국’혁신당이라는 당명을 유지한 채 8개월 동안 활동했으나 정당 지지율은 3%를 넘기지 못했다. 야당으로서의 날카로움도, 검찰개혁이라는 특정 이슈도 끌어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점수가 깎인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정치인은 잊혀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사람들이다. 선수가 높아질수록 나설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는데, 정무적 감각이 더딘 초선의 경우 무조건 언론에 노출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 성 비위 사건이 발생할 때 조 비대위원장은 ‘수감돼있었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관여할 수 없다던 사람이 이제 와선 어떤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라며 “결국 당 전체가 조 비대위원장에게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걸 보여준 꼴”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혁신당이 당명 개정을 포함한 당의 구조와 조직 문화 등 전면 개혁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궤를 같이한다. 광복절 사면을 통해 ‘오직 조국을 위한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낼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 첫 번째 패착이다.

최악 중 차악 골라도 결국 ‘악’
‘조국 불출마’ 승부수로 먹힐까

두 번째는 악재 속에서도 대권주자로서의 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조 비대위원장은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에 앞장서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당이 성추행 파문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어 “조급한 마음은 알겠으나 성 비위 사건을 매듭짓고 나서는 것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나온다.

모든 권력과 마이크가 조 비대위원장을 향하는 수직적 구조가 문제로 지목된다. 조 비대위원장이 성 비위 사건을 해결하는 한편 다른 의원들이 정치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등 투트랙 전략이 해결책으로 제시됐으나 ‘1인 정당’이라는 비판 속 역할 분담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 조 비대위원장의 행보에 이 대통령의 발자취가 겹쳐 보이면서 여전히 그가 대권의 길을 걷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 검찰의 탄압을 이겨내고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는 모습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강성 지지층 등을 이용한 팬덤 정치를 시도하려는 모습 또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성남시장 등을 지내며 굵직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국정 운영 능력이 검증됐다. 반면 초선인 조 비대위원장은 마땅한 정치적 유산도, 공간도 없다. 당 역시 ‘검찰개혁’ ‘윤석열 탄핵’을 목적으로 꾸려진 만큼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조 비대위원장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당권파와 이를 반대하는 비당권파의 물밑 다툼도 봉합해야 할 문제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당 대표던 시절 비명(비 이재명)과 친명(친 이재명) 간의 갈등이 숱하게 발생했지만, 혁신당은 12석에 그치는 군소 정당이기에 작은 분열도 크게 번질 우려가 제기된다.

‘조국 불출마’가 혁신당의 마지막 승부수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혁신당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 비대위원장의 선거 출마 여부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왕진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성 비위 사건 논란 여파가) 심각하다”며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조 비대위원장은 지방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 어느 쪽으로 나갈 생각이냐’고 묻자 서 의원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새로 고침

이어 “저희가 작은 당이기 때문에 민주당 등과 연대 협력을 논의(하거나), 조 비대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지방선거 중 어려운 곳에 뛰어들어야 하냐, 보궐선거에 나가 의원으로 복귀해야 하냐를 판단할 예정이었다”며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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