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추상미술 거장 김기린

2025.09.10 15:41:56 호수 1548호

안과 밖 그리고 경계 위의 감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부산 해운대구 소재 데이트갤러리에서 김기린의 개인전 ‘안과 밖, 그리고 경계 위의 감각(Inside and Outside, and the Sensation upon the Threshold)’ 전시를 준비했다. 김기린은 단색화의 선구자이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불린다.



2021년 작고한 김기린은 미술가 가운데 드물게 인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1961년 프랑스 파리 디종대학교에서 미술사 학사 과정을 시작으로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와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미술 학사와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음악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 니스 이티네레르 화랑, 파리 자크 바레르 화랑 등 해외에서도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쳤다. 디종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예술문화센터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김기린은 <어린 왕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생텍쥐페리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에 갈 정도로 시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언어의 한계를 느껴 글 대신 그림으로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점은 기본 조형 요소 중 하나로, 무수한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맞닿으면 면이 된다. 김기린은 “점은 시작일 수도, 끝일 수도, 또한 선도 되고, 형태도 되고, 그 안에는 시간도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작품 속 점이 내포하는 무한한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김기린의 작품에서 단일 색조의 화면에 입체적인 점이 반복적으로 배치돼있는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캔버스나 종이에 큰 붓으로 한국의 오방색(흑·백·적·황·청)을 기반으로 한 유화물감을 여러 겹 칠하고 중간 크기의 붓으로 가로와 세로로 선을 그어 세밀하게 계획한 구역에 규칙적이면서 조직적으로 점을 찍는다.

시와 문학에 심취 프랑스로
언어의 한계 그림으로 표현

하나의 점을 완성하기까지 30번가량 찍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수행한다. 유화물감을 켜켜이 쌓는 과정에서 시간과 온도에 따라 발생하는 물감의 밀도와 농도의 차이, 미묘하고 지속적인 점의 움직임으로 화면 속에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김기린은 음악에서 색을 본다. 그는 “맨델스존에서는 노란색, 차이콥스키에서는 회색, 베토벤에게서는 녹색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회화가 단순히 시각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청각, 정서, 지각이 교차하는 다층적 예술 경험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김기린은 점과 레이어, 반투명한 색, 흐릿한 경계 등을 통해 ‘보이되 완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회화적으로 구현했다. 그의 화면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성찰하게 하는 감각적 장으로 기능한다. 관람객은 그 안에서 가시성과 불가시성, 안과 밖이 얽히는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김기린의 예술은 단색화의 정신성과 행위성, 촉각성을 토대로 한 실존적 탐구로 이어진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와 장 폴 사르트르 등이 제안한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제목과 작업 과정까지 연결해 철학적인 모습을 면밀하게 드러냈다.

데이트갤러리 관계자는 “김기린의 회화는 단순한 단색의 평면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과 존재가 층층이 쌓이며 형성된 시각적 시간의 구조다. 그 안에서 점은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고 겹침 속에서 기억을 환기하며 사유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발생시키는 매개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색을 보다

그러면서 “그의 점은 더 이상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발현되는 시간의 단위이자 감각이 사유로 전환되는 지점, 그리고 회화가 침묵 속에서 말을 거는 방식”이라며 “(김기린은) 화면 속 사각형에서 부재를 통해 우리 주변에 무엇을 더욱 풍부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작가의 고유한 표현에서 비롯된 이번 전시를 통해 요동치는 운율 속 각기 다른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다음 달 2일까지.(자료·사진 ⓒ데이트갤러리

<jsjang@ilyosisa.co.kr>

 

[김기린은?]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과 졸업(1960)
프랑스 디종대학교 미술사학과 수학(1961~1965)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수학(1965~1968)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졸업(1971)

▲개인전
‘무언의 영역’ 갤러리현대(2024)
‘김기린’ 신도문화공간(2018)
‘Kim Guiline- Selected Works: 1967·2008’ 리만머핀(2017)
‘김기린’ 갤러리현대(2016)
‘김기린’ 통인화랑(2008)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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