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전기차 충전구역, 왜?

2025.07.01 15:58:36 호수 1538호

설치는 유예 삭제는 허용?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기차 충전구역 의무 설치가 유예된 가운데, 일부 아파트에서 이미 설치된 충전 전용 구역을 없애거나 일반 주차구역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제도를 유예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전기차 소유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2022년 1월 개정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아파트와 공중이용시설에 전기차 충전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100세대 이상인 공동주택과 주차면 수가 50면 이상인 공중이용시설이 대상이다.

유명무실 충전기

신축시설과 공공 기축시설의 경우 전체 주차면 수의 5% 이상, 기축 시설(2022년 1월28일 이전 건축 허가)은 2%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 충전구역 설치 기한은 국가·지자체 소유 시설은 2023년 1월27일까지, 공중이용시설은 2024년 1월27일까지, 공동주택은 2025년 1월27일까지인 것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이후 인천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하고, 전기차 충전 시설에 대한 안전 문제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를 계기로 정부는 지난해 1월, 전기차 충전구역 의무 설치를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산업부는 이에 따라 2026년 1월27일까지 전기차 충전구역 의무 설치를 유보한 상태다.

설치 유예 배경에는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와 더불어 강화된 소방시설 기준으로 인해 설치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충전 시설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공동주택 단지들을 위해 충전구역을 갖출 수 있도록 이행 기간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충전구역에 대한 단속 기준도 세워졌다. 전기차 충전구역에 일반 차량을 주차하는 경우 최대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 아파트에 설치된 충전 시설 수량이 입주자 등의 전기차 대수를 초과하면, 초과 수량의 범위에서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의무 설치 내년 1월까지 유보
일반차 주차장으로 속속 전환

그러나 설치 유예가 이뤄지면서 전기차 충전구역을 일반차량 주차구역으로 바꿔 사용해도 문제가 없게 됐다. 유예 기간 동안 충전구역 의무 설치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설치 비율이 의미가 없어졌고, 기존 전기차 충전구역을 내연기관 주차구역으로 변경해서 일반차량이 주차하더라도 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일부 아파트에서는 이미 설치된 충전 전용구역의 바닥 표식을 지우고 일반 구역으로 전환해, 일반차량의 주차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화성시의 한 아파트는 2023년까지 법정 기준 비율에 맞춰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했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구역 설치 기한이 유예되면서 이미 설치된 전기차 충전구역의 바닥 표식을 지우고 일반주차구역으로 사용했다. 해당 구역에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돼있었다.

충전기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지만 전용구역 표시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충전용 주차구역의 기능은 상실한 상태였다.

현행법상 전기차 충전구역으로 인정받으려면 충전기가 설치돼있고, 바닥 도색 또는 표지판으로 ‘전기차 전용’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충전구역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할 시에는 일반 주차구역으로 간주한다.

“손 놨나…취지 어긋나”
“충전구역 부족” 호소

따라서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주차구역으로 사용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전기차 소유주들은 충전구역이 부족한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주차보다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데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보니, 충전기 앞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 충전기가 있는 주차 공간에 일반차량이 주차하게 되면 전기차 소유주들은 충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충전기가 있음에도 충전을 하지 못하게 돼 결국 충전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 A씨는 “기존 의무비율(2%)을 채우고 있던 충전 전용구역 중 일부가 바닥 표시를 제거하면서 일반 차량이 주차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며 “설치 유예는 충전구역 미설치 아파트를 위해 충전구역을 갖출 수 있도록 기한을 미뤄준 것인데 이미 설치된 곳을 바꿔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자동차과 담당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설치 유예 기간으로 인해 일반 주차구역으로 사용해도 과태료 부과 대상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는 충전구역 설치를 유예한 취지와는 어긋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청 관계자의 입장은 다소 상이하다. 한 시청 주차행정 담당자는 “의무 설치 기준을 충족하는 충전 전용구역의 바닥 표식을 임의로 지우고 일반 구역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무 설치 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을 지우는 것은 상관없지만 비율 내의 구역을 지우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답변이었다.

혼란만 가중

이처럼 국가기관과 지자체 간 해석의 차이가 존재해 실제로 어떤 행위가 위법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워 과태료 부과 기준에 대한 혼란이 생기고 있다. 정부는 유예 기간 종료 전까지 설치비용 지원, 충전 시설 인증 완화 등 제도 보완을 예고한 바 있지만, 설치 유예에 따라 발생한 상황에 대한 별도의 대응 방안은 없는 상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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