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로구시설관리공단 ‘피눈물’ 해고 전말

2025.05.13 06:29:24 호수 1531호

모르는 일 맡기고 ‘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피눈물 나는 노력은 해고 통보로 돌아왔다. ‘돌봄 서비스’이라는 직무에 속아 들어간 자리엔 숫자와 결산, 각종 회계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 설명도, 고지도 없었다. 수습이 끝나자 자리는 사라졌다.



구로구시설관리공단(이하 구로공단)이 운영하는 아동 돌봄 시설서 회계 업무를 명시하지 않은 채 팀장을 채용한 뒤, 수습 기간이 끝나자 계약을 해지한 사례가 발생했다. 해당 시설에서는 신규 채용 직원에게 회계 업무를 전담시키고 수습 기간이 끝나자 해고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 채용

<일요시사>가 만난 A씨는 지난해 11월, 구로공단의 아동돌봄서비스 제공 팀장직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공고문에는 ‘아동 돌봄 서비스 제공’이라는 업무만 명시돼있었고, 회계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아동교육 관련 업무를 전담해 온 A씨는 이를 기존 업무 연장선으로 판단하고 지원했다.

그는 “공고에 회계 관련 문구가 한 줄도 없어 교육직 경력을 살려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A씨는 면접을 통과해 지난 1월에 입사했다.

문제는 입사 첫날부터 시작됐다. A씨는 전임자가 남긴 인수인계서 4~5장을 받고 회계 업무를 전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센터장이 ‘팀장의 주된 업무는 회계’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회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수인계 없이 곧바로 실무에 투입됐다. 예산편성, 결산보고, 종사자 급여 지급, 지출 증빙까지 사회복지시설 회계를 총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전임자는 이미 퇴사했고, 채용 공고서도 면접서도 회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회계를 해본 적 없는 A씨는 3주 뒤 센터장을 찾아가 “도저히 할 수가 없다”며 호소했지만, “잘해보자”는 센터장의 설득 끝에 업무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후 A씨는 개인 비용으로 관련 교육을 수강하며 업무를 따라갔다.

A씨는 “토요일에도 교육을 받아가면서 휴게 시간 한번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고, 거의 8시 넘게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면서 “그마저도 시간 외 수당을 줘야 한다기에, 6시에 퇴근 도장을 찍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공고 보고 ‘돌봄 서비스’ 지원
실상은 쏟아지는 ‘회계 업무’

피나는 노력 끝에 A씨에게 돌아온 건 계약 해지 통보였다. 회계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입사한 A씨는 수습 종료와 함께 해고됐고, 구로공단은 수습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A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A씨는 즉시 구로공단 측에 항의했고, 이사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인사 담당자와 면담했지만 A씨의 입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구로공단을 고용노동부 관악지청에 신고했다. 이에 관악지청은 채용 공고의 직무 기재에 문제가 있다며 ‘채용절차법 제4조(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 위반으로 구로공단에 시정조치를 내렸다. 관악지청은 “채용 광고에 담당 업무 내용을 포괄적으로 기재한 것은 분쟁 발생 소지가 있으므로 유의하라”며 행정지도를 진행했다.

이후 동일 직무에 대한 신규 채용 공고에는 회계 업무가 기재됐다. A씨는 “시정조치가 내려졌다는 건, 결국 잘못됐다는 의미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구로공단 측은 채용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로공단 측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설 특성상 관리자 역할을 맡은 팀장이 회계, 인사, 돌봄 등을 포괄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며 “면접 당시에도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계 업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회계 업무에 대해서는 “회계는 회계사 수준의 정밀한 업무가 아닌, 지출 입력과 같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대해 반박했다. “재무회계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해내려면 최소 1년은 실무에 부딪혀야 한다. 예산편성, 급여 지급, 지출 증빙 같은 시설 회계를 총괄해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단순 입력일 수 있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실제로 A씨가 지원했던 팀장직은 회계 업무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 사회복지시설의 회계는 단순한 행정 보조와는 다르다. 예산편성, 결산, 급여 관리, 지출 증빙, 보조금 회계 처리 등 전문성이 요구되며, ‘희망 이음’이라는 전용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해 구청에 보고까지 해야 한다.

A씨는 “실제로 구청서 보조금 회계의 정확성을 매달 검토하고 평가까지 진행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A씨는 “2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업무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놨다.

수습 끝나자 바로 해고
“채용절차법 위반” 지적

실제 근무하고 있는 다른 지역아동센터의 한 센터장 또한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센터장 B씨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난 수학 교사 출신이고 숫자에 대한 감각도 있는 편이며 회계학을 공부했지만, 복지시설 회계는 여전히 어렵고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고, 누군가 옆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업무 숙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씨는 “보통 회계 업무를 맡길 경우 최소한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선임자가 있는 구조로 뽑아야 한다”며 “사수가 없고, 회계를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 단독으로 책임을 지우는 건 매우 위험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회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무사나 회계사를 왜 뽑겠나. 숫자의 흐름을 읽고, 대차대조표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라며, “이 업무를 아무런 사전 안내도 없이 떠맡기는 구조는 분명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구로공단 내 다른 센터장들 역시 해당 문제를 수차례 구로공단에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센터장들이 채용 공고에 회계 업무를 기재해달라고 항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만약 회계 업무가 정말 단순한 업무라면, 왜 내부서도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겠느냐”고 지적했다.

A씨는 “해당 공고서 처음부터 담당 업무를 정확히 기재했다면 애초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 돌봄 업무를 기대하고 지원했지만, 실상은 회계 업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직접 회계 교육을 듣고, 주 업무가 회계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회계 자격이나 경력도 없는 사람을 뽑아놓고 업무 적응을 못했다고 자른 건 납득이 안 간다”고 토로했다.

사비로 공부

현재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그는 “6년을 근무하던 직장을 나와 힘들게 이직해서 미친 듯이 버텼는데, 돌아온 건 해고였다”며 “이렇게 중요한 업무를 고지 없이 던져놓고, 평가 기준도 없이 자르는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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