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장지선 기자 = 퍼즐의 전체 그림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퍼즐의 크기가 얼마만한 지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분양사기 의혹’으로 한데 묶여 있을 뿐이다. 첫 사건의 발생 시기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한 사람이 피해를 주장하면 어느새 그보다 앞선 시기에 피해를 본 사람이 등장한다. 최근 들어서야 여러 지역서 하나둘 나타난 조각으로 그나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피고를 징역 1년6개월에 처합니다. 도주 우려가 있어 법정 구속합니다.” 판사의 선고 이후 방청석에 앉아있던 몇 사람이 법정을 빠져나왔다. 일부는 서로 아는 사이였고 일부는 초면이었다. 그들 모두는 법정 구속된 피고인과 관계가 있었다. 집과 건물 그리고 돈으로 얽힌 지독한 악연이었다.
빙산의 일각
지난달 2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재판부는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홍모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빌라 분양 대금을 둘러싼 형사소송의 1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앞서 지난 3월14일 공판서 검사는 홍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판사가 검찰 측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 구형량만큼 선고한 것이다.
선고 당일 방청석에서 홍씨의 법정 구속 장면을 지켜본 이들은 “이제야 상황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홍씨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대부분 홍씨가 행한 분양사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한 피해자는 “(피해자를)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본 분이 있다”고 놀랐다.
<일요시사>는 2023년 2월 서울 성북구서 일어난 빌라 분양사기 의혹을 보도했다. 신축 빌라를 분양받는 과정서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렀지만 소유권을 이전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피해자는 매도인과 건축업자, 공인중개사 등을 고소했지만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로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10개월여 동안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는 홍씨 등이 신축 빌라를 추가로 올리는 과정서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바지’(가짜 소유주)를 앞세워 대출을 일으켜 건물을 세우고 공인중개사를 통해 중개, 분양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서 매수인이 돈을 다 내고도 소유권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피해자는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나아가 구속 수사 등으로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1년8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분양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 집회가 열렸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전농동을 비롯해 성북구 성북동, 경기 구리시 등에서 분양사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빠른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성북구 사건서 홍씨 등을 고소한 피해자는 6명이었다. 하지만 2년 뒤 서울경찰청 앞에 모인 피해자 수는 그 5배가 넘었다. 이들의 피해액을 합치면 100억원에 육박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지어 용두 2차 피해자는 ‘터파기’만 된 그야말로 토지 상태서 경매가 진행돼 돈을 날렸다.
한 피해자는 “사기범 일당은 계획적으로 계약금과 중도금을 착취한 채 1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남겼다”며 “범죄가 드러난 후 동대문경찰서의 수사만 믿고 기다려왔지만 1년이 넘도록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3년 7월 ‘인지 수사’ 형태로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피해자가 집회를 연 시기인 지난해 10월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별개 사건으로 법정 구속
전세사기 의혹으로도 피소
성북구 사건과 동대문구 사건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홍씨의 존재다. 두 사건의 피해자들은 홍씨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신축 빌라 분양 과정서 홍씨의 이름이 서류에 기재된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한 것은 홍씨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어느 쪽이든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성북구 사건의 고소 시점은 2022년 5월, 동대문구 사건의 피해자가 홍씨를 고소한 시점은 2023년 7월이다. 성북경찰서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 홍씨 등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피해자들이 경찰 수사를 촉구하면서 언론, 집회 등의 방법을 찾은 이유다.

더 놀라운 대목은 언론 보도나 집회가 이뤄질 때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동대문구 사건의 한 피해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피해자도 많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홍씨가 오랜 시간에 걸쳐 분양 일을 해온 만큼 피해자가 추가로 있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실제 한 피해자는 홍씨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간 피해자는 소유권이 신탁사로 넘어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피해자가 항의하자 홍씨는 ‘신탁을 말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약속 이행각서를 써줬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전세 계약을 종료하려고 했지만 보증금 문제로 2년 더 살게 됐다. 이 과정서 ‘신탁 등기 해지’ 등의 조건을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도록 등기부등본상의 소유주와 실소유주인 홍씨는 피해자에게 어떤 대답도 없었고, 보증금 반환도 진행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해당 빌라가 공매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피해자로서는 소유권이 제3자에게로 넘어가면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못 건지고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결국 피해자는 경매를 통해 해당 빌라를 낙찰받기에 이른다. 전세로 들어왔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졸지에 집주인이 된 셈이다.
앞서 홍씨는 피해자의 손해를 모두 책임지고 배상하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도 작성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각서와 마찬가지로 확인서 역시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조금도 이행되지 않은 것.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토교통부서 피해자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피해자는 지난해 7월 홍씨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큰 그림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홍씨는 법정 구속된 사건, 성북구·동대문구 분양사기 사건, 동대문구 전세사기 사건 외에도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피소된 사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달 공판이 예정돼있다고 한다. 홍씨 사정에 밝은 한 피해자는 “지금까지는 상황을 지켜본 피해자가 많았다. 형사 재판서 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추가 고소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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