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명품, 자부심이 아닌 ‘분노와 좌절’

2024.02.13 14:50:39 호수 0호

‘사치품’이라는 말에 ‘죄의식’이 묻어 있었다면, ‘명품’이라는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명품 가방을 ‘외국회사의 자그마한 파우치’로 표현하며 실체를 은폐한 KBS 기자 덕분에, 명품의 주된 역할이 ‘공동체 한 편의 분노와 좌절감을 쌓는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명료해진 듯하다.



지난 7일, 사전 녹화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대담이 공개됐다. 윤 대통령은 고령화, 핵무장, 의료개혁, 저출산 문제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야권에선 “연극 한 편” “KBS, 홍보대행사 전락”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서 누리꾼들도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사치품이 명품으로 이름을 바꾼 최근의 현상은, 탐욕과 사치를 죄악시했던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의 표현이다.

대다수 사람이 생활 물자의 절대적 결핍 상태서 해방된 국가들에서, 자본은 시장확대를 위해 대중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왔는데, 그 핵심은 개인적 욕망의 실현에 드리워진 죄의 그늘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소비능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미덕인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고, 결국 성공했다.


지금은 명품을 소비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가 없는 시대다. 오늘날 명품은 도덕적 금제서 해방된 욕망의 표상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그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 물건들의 주된 역할은 여전히 공동체 한편에 분노와 좌절감을 쌓는 것이다. 명품의 시대는 공동체 붕괴의 시대일 수도 있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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