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 제재?' 국내 게임사 떠는 이유

2022.03.24 16:27:51 호수 1367호

이래저래 손님 떨어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게임사들이 속속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중대형 게임사들은 대러 제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어설프게 특정 국가 제재에 동참했다가 얻을 불이익을 걱정하는 모양새. 하지만 일각에선 이러한 국내 게임사들의 태도로 인해 얻을 ‘글로벌 낙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유명 게임사들이 연이어 러시아에서의 게임 서비스와 관련 상품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국내 게임사들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러시아를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르고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할 때, 자칫 친러 기업이라는 글로벌 낙인이 찍혀 해외 이용자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비판 목소리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에픽게임즈가 러시아에서의 게임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5일, 대니얼 알레그리 액티비전 블리자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직원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에픽게임즈도 성명을 통해 “러시아와의 상거래를 중지하고 있다”며 “다만 이미 게임을 보유한 러시아 이용자가 게임에 액세스하는 것은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에픽게임즈 외에도 다양한 게임사들이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위쳐’와 ‘사이버펑크 2077’ 개발사 씨디 프로젝트 레드의 모회사 씨디 프로젝트는 러시아와 러시아 우방국 벨라루스에서 모든 게임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렉트로닉아츠(EA)는 ‘피파22’ ‘피파 모바일’ ‘NHL22’ 등 자사 스포츠 게임에서 러시아 대표팀 등을 삭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러시아에서 콘솔 게임기기인 ‘엑스박스’를 비롯해 윈도우 등 모든 제품의 신규 판매와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닌텐도는 러시아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디지털로 구매할 수 있는 ‘닌텐도 이숍’(eShop)을 유지 관리 모드로 전환했다.

현재까지 러시아 게임 서비스 중단을 공식 결정한 국내 게임사는 없다. 라이엇게임즈가 러시아에서의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는 미국 정부의 조치에 따른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 라이엇게임즈는 지난달 24일부터 미국 행정부 명령에 따라 ‘리그오브레전드’ ‘발로란트’ 등 자사 IP 게임의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 2일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SNS를 통해 세계 각국 주요 게임사를 상대로 러시아 제재 동참을 호소했다.

그는 글로벌 주요 게임기업의 실명을 직접 열거하면서 “러시아군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며 “유치원, 고아원, 병원까지 폭탄과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것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현대 국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이 세상에 폭력은 없어져야만 한다. 우리 목소리가 푸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우크라 호소에 대형 게임사 동참
‘K-게임’ 서비스 중단 결정 머뭇

그가 올린 게시글에는 블리자드, 닌텐도, 에픽게임즈 등 다국적 기업과 함께 국내 게임사로는 유일하게 크래프톤의 이름이 포함됐다. 크래프톤은 물론이고 NC와 넥슨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펄어비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중대형 게임기업은 모두 대 러시아 서비스 중단과 관련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게임사들이 러시아 서비스 제공 중단을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해외 의존도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게임업계는 내수시장이 작아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대형 게임사들의 실적에서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30% 대에서 많게는 80%를 웃돈다.

해외부문에서도 유럽은 북미, 동남아시아와 함께 국내 게임업계 실적을 뒷받침하는 3대 거점시장 중 한 곳이다. 국내 게임사들의 해외 누리꾼들의 싸늘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하는 이유다. 

특히 판호 발급 중단으로 중국 진출이 가로막히면서 러시아는 국내 게임업계가 무시할 수 없는 신흥시장으로 부상했다. 러시아에서 인기를 얻는 장르가 MMORPG라는 점도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요소로 볼 수 있다.


MMORPG는 국산 ‘K-게임’을 상징하는 장르다. 실제로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포트폴리오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은 대부분 MMORPG 기반이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엔씨소프트 ‘리니지2M’이 러시아 앱스토어 매출 각 2위와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게임사들이 현지 퍼블리싱 기업을 통해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제재 동참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등은 러시아 메일루(Mail.RU) 그룹과 협업 중이다. 엔씨소프트와 펄어비스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현지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민한 문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기업 입장에선 정치적 이슈가 있는 사안에 되도록 안 끼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면서 “미국에 기반을 둔 회사들이 아닌 이상 정치 이슈에 잘못 휘말려 중국 사드 때와 같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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