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예측과 전망으로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 칭송받던 미네르바의 정체가 드러났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미네르바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 또한 거세다. 진짜 미네르바가 맞느냐는 의혹부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 정치권의 찬반논쟁, 처벌대상 유무의 논란 등 수많은 이슈들을 만들어 낸 것. 또 마녀사냥, 학벌지상주의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미네르바가 몰고 온 후폭풍을 추적했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 공개된 후 사회 곳곳에서 거센 후폭풍
진위논란서 민주주의 후퇴까지…외신도 놀란 미네르바사태
경제에 대한 날카로운 예측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준급의 글 솜씨로 인터넷 세상을 넘어 현실경제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친 미네르바.
월스트리트 출신의 ‘고구마 파는 노인네’라는 설정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미네르바의 실체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미네르바로 물망에 올랐지만 검찰이 밝힌 미네르바는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자 박모(30)씨였다.
그의 충격적인 등장에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그간 떠돌았던 미네르바에 대한 수많은 억측들이 잠재워지기는커녕 더욱 거센 후폭풍이 몰려와 각계각층을 뒤흔들고 있다.
진짜 미네르바 맞아?
박씨가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사업법 위반)로 긴급 체포된 지난 7일부터 끊임없이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미네르바의 진위 여부다.
그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가 시작된 곳은 예상과는 달랐던 박씨의 현재 모습이었다. 금융업계에서 풍부한 실무를 경험한 사람일 것이란 그동안의 예측과 달리 전문대 출신의 젊은 무직자라는 박씨의 실체가 모두를 경악케 한 것.
또 미네르바의 지인이라고 주장했던 아이디 ‘readme’가 지난 12일 ‘진짜 미네르바는 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글을 올려 진위논란에 가세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신동아>에 게재된 미네르바의 인터뷰 내용이 잡힌 박씨와는 다르다는 것도 진위논란에 한몫을 하고 있다. 실체가 밝혀진 후 더욱 가열되고 있는 진실게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
이번 미네르바 사건은 박씨의 법정출두 자체만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과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자신의 생각과 예측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 법의 잣대를 들이댈 사안이냐는 것. 표현의 자유를 훼손시키고 민주주의를 수십년 전으로 후퇴시켰다는 우려감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검찰은 “‘정부가 외환 환전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정부가 달러 매수를 중단하도록 긴급명령을 내렸다’는 등의 내용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많은 네티즌들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앙갚음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제2의 미네르바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이버 망명족
미네르바 사태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표현의 자유를 찾아 해외 사이트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인터넷에 개인 의견을 쓴 것에 대해 사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이버 논객으로 이름 날리던 이들은 자신의 글을 삭제하거나 절필선언을 한 뒤 자취를 감추고 있고 일부 네티즌들은 서버가 해외에 있는 사이트로 글 쓸 공간을 찾아 떠나는 ‘사이버 망명’을 감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이버 망명족이 탄생한 것은 지난해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수사가 시작될 당시에 생긴 현상으로 미네르바 사건은 더 많은 네티즌들을 이동시키고 있다.
어김없이 등장한 마녀사냥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 인물에게 집중공격을 하는 마녀사냥은 이번에도 나타났다. 표적이 된 것은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인 김모씨.
네티즌들은 김 판사의 얼굴사진과 생년월일, 출신학교, 경력 등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급속히 확산시키는가 하면 다음의 아고라 청원란에는 ‘미네르바 구속영장 발부한 김 판사를 탄핵합시다’라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마녀사냥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네티즌의 요구를 무색하게 하는 ‘사이버 테러’라는 자숙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실히 보여준 학벌 공화국
미네르바 검찰 출두 소식에 언론들은 앞 다퉈 ‘공업고등학교, 전문대 출신의 30대 무직자’라는 타이틀로 박씨를 소개했다. 이는 미네르바 진위여부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 정도의 해박한 지식과 글 솜씨를 가진 사람이 겨우 전문대 졸업이란 학벌을 가질리 없다는 것.
수년간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박씨의 말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네르바의 글을 칭송했던 일부 전문가들은 그의 학벌과 경력이 드러나는 순간 ‘논리적인 글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실력보다는 간판이 우선시되는 뿌리 깊은 병폐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학벌이 온라인에 의견 표시하는 데 제약이라도 되나. 앞으로 온라인에 의견 표시하려면 최종학력과 직업을 쓰고 글을 게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건 어떤가”라는 말로 학력지상주의를 조롱했다.
외신들도 앞 다퉈 보도
외신들도 미네르바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AP, 로이터, AFP 등 주요 통신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외신들은 미네르바 구속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9일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황당뉴스(Oddly Enough)’에 올렸다. 로이터는 “정부가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해 부정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9일 “한국 인터넷에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호소하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비판이 잇따랐다”고 보도했다.
AFP는 “그의 글은 정부의 경제 정책과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정부를 화나게 했다”는 기사를 실으며 미네르바 사건을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