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낭만’은 옛말…‘최대한 비열’해야 성공?

2009.01.13 09:59:00 호수 0호

불황 속 헐벗고 굶주린 조폭들의 돈벌이 백태

신흥 돈벌이조차 신통치 않자 이권 다툼도 빈번
가짜잔치, 자해공갈 등 돈만 된되면 뭐든지…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들이 변했다. 아니 치졸해졌다고 해야 옳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것은 옛말이다. 명예보다는 돈이 우선이다. 속칭 양아치나 깡패들의 수입원에도 개의치 않고 기웃거리고 있다. 성매매 알선, 자해공갈, 주부도박단 운영 등 조폭들이 손대기엔 낯 뜨거운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코 묻은 돈이라도 뜯어 낼 태세다. 이처럼 조폭들이 각종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은 불황, 단속으로 굵직굵직한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불황의 여파는 주먹세계에도 어김없이 불어 닥쳤고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은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달라진 조폭들의 생존방식을 취재했다.



“의리와 낭만?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말입니다. 배가 고프면 동네 양아치보다 더 비열한 게 요즘 조폭들이니까요. 어쩌겠습니까. 다들 먹고 살기 위해 변하는데 조폭인들 별수 있나요.”

모 조직에 속했던 전직(?) 조폭의 말이다. 비아냥섞인 그의 말은 달라진 조폭들의 생존방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조폭들도 영화 속에 나오는 조폭들처럼 폼 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조폭들의 황금기는 추억 속으로 묻혔다. 굵직한 돈줄은 경찰 등의 단속에 막히고 새로 발굴한 돈줄은 경기침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조폭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어 밥그릇 챙기기 열전이 더욱 치열해졌다. 검찰이 감시 중인 조직폭력배는 2007년 기준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2006년 법무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관리대상 조직폭력단은 471개 파, 1만147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점점 늘어나는 조폭 수
밥그릇 싸움 치열해져


법원의 확정판결로 범죄단체로 간주되는 조직도 167개에 달했다. 관리대상에 오르지 않은 신흥조직이나 기존 조직의 하위 조직원까지 포함하면 조폭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러 가지 상황이 돈벌이를 어렵게 만들자 이를 타계하기 위해 조폭들은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를 하고 있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잘한 사업에도 거침없이 뛰어들어 푼돈이라도 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는 중고차사업. 이 업종에 뛰어드는 조폭이 생긴 이유는 돈벌이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중고차사업이 수익을 남기기 쉽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헐값에 들여온 차를 간단한 수리를 거쳐 몇 배로 팔아넘기는 것이 가능한 탓이다. 이를 노린 조폭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한 조폭 전문가에 따르면 몇 해 전부터 호남지역 조폭들이 중고차시장 장악을 위해 서울로 진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전문가는 “서울에 진출한 호남조폭의 수익지역은 또다시 명동시장과 강남시장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명동시장은 아직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S파 영향력이 우세하다”고 귀띔했다.

‘성인오락실’ 사업도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다. 오락실 등 게임장은 전통적으로 조폭의 먹잇감이었다. 큰 규모의 자금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사행성 게임장은 조폭들의 변함없는 돈줄이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게임장과 관련된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가짜잔치로 축의금 뜯어
낯 뜨거운 돈벌이

그런데 검·경찰이 단속활동을 벌여 오락기판매 범죄수익금을 몰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폭들의 돈줄을 차단하자 예전엔 건드리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게임장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직 간 이권다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수원에서 두 조직이 다툼을 벌이다 1명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도 성인오락실의 이권에 기인한다.

또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이와 관련한 조폭들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7월7일 오전 1시경. 당시 부산진구 초읍동 모 성인오락실 앞 도로에서 이 오락실의 이권을 놓고 서면파 11명과 부전파 30명이 흉기를 들고 집단난투극을 벌여 서로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서면파는 서면 중심가와 당감동 일대를, 부전파는 부전동과 초읍동 일대를 영역으로 활동하면서 이권 확보를 위해 서로의 영역을 넘보던 중 부전파가 관리하는 성인오락실에 서면파가 동업을 제의하면서 접근하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집단난투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락실에서 나오는 적은 규모의 수익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조폭들의 돈줄은 말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속칭 ‘여자 장사’로 돈을 버는 조폭도 적지 않다.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국내와 국외의 유흥업소에 여성들을 팔아넘겨 수익을 남기는 것. 최근에는 비교적 이름난 조직에 몸담은 폭력배들도 성매매알선으로 부당이익을 남기다 적발됐다.


부산의 칠성파 조직원인 박씨 형제도 이들 가운데 하나다.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칠성파 부두목이자 해운대지구 총괄자인 박모(41)씨를 구속하고 박씨의 친동생(39)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 형제는 지난 2004년 1월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4층 건물을 인수해 성매매 업소를 차린 뒤, 지난 5월까지 불특정 남성들로부터 6만원에서 20만원씩의 화대를 받고 여종업원들과의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 등은 성매매 영업을 통해 모두 4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으며, 여종업원들이 성매매 대가로 번 돈의 절반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하면 낯부끄러울 만큼 치졸한 수법으로 돈을 버는 조직원들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는 가짜 경조사를 만들어 축의금을 걷는 것. 가짜로 칠순잔치나 돌잔치 등을 만들어 조직원과 유흥업소 사장 등의 하객들을 부른 뒤 축의금을 챙기는 방식이다.

한 조폭 담당 경찰관계자는 “몇 해 전부터 조직의 윗선에 있는 폭력배들이 있지도 않은 잔치를 연다고 소문을 낸 뒤 축의금을 긁어모으는 일이 생기고 있다”며 “잔치에 와 자율적으로 축의금을 냈으니 처벌할 방법도 딱히 없어 헛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부산의 모 조직의 조직원이 어머니의 진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유흥업소 사장 등으로부터 축의금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잔치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하객들이 어머니를 찾자 한참 후에야 어디선가 어머니를 데리고 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진짜 잔치’라도 열리는 날은 조폭들의 대목이다. 행여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알지 못해 축의금을 받지 못할까봐 수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칠성파의 조직원이 돌잔치를 빌미로 수백명에게 거액의 축의금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칠성파 행동대원으로 알려진 김모(36)씨는 지난해 7월 중순 성인오락실, 유흥업소 업주 800여 명에게 ‘해운대 ㅇㅇ호텔에서 아들 돌잔치를 엽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돌잔치에 초대할 만큼 친분이 두텁지 않은 이들에게도 빠짐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축의금을 걷기 위해서였다.

이 문자를 받은 이들 중 상당수는 반 협박에 이기지 못해 축의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200여 명은 돌잔치에 참석해 직접 축의금을 건네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돌잔치를 빌미로 사실상 갈취를 했다고 보고 김씨를 불구속입건했다.

낯 뜨거운 돈벌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훗날 조직원으로 쓰려고 미리 데려온 미성년자 예비 조폭에게 노점장사를 시키고 번 돈을 갈취한 조폭들도 있었다. 호기심으로 조직에 들어갔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혹독하고 비열한 돈벌이를 보고 치를 떨어야 했다.


이 사건은 부산의 모 조직에서 벌어진 것. 조직원들은 부산 모 고등학교 3학년 강모(17)군 등 3명에게 조직생활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강군 등은 “조직생활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추운 겨울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계란빵 장사를 했다. 하루에 번 돈은 6~7만원. 이 중 사업자금 등의 명목으로 5000원에서 1만원을 제외하고는 조직에게 빼앗겼다.

자해공갈로 보험금을 타낸 조폭들도 꾸준히 적발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심지어 미성년자들까지도 손댈 만한 범죄에 조폭들이 가담해 부정한 돈을 챙겼다는 것은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다.

코 묻은 돈도 쓱싹
‘쪼잔’해진 조폭

최근의 조폭들은 또 사채업자와 손잡고 채무자들을 상대로 협박과 감금, 폭행, 성폭행 등을 일삼으며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불법 사채업자 뒤엔 조폭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활약상은 두드러진다. 이들 조폭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채무자들을 압박하고 돈을 뜯어내 사채업자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폭이란 것을 이용해 술값 등을 내지 않는 ‘쪼잔’한 조폭들도 판을 치고 있다. 그야말로 동네 ‘양아치’들이나 하는 수법까지 동원해 푼돈이라도 아끼려는 속셈이다.

지난해에는 경북 포항과 의성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유흥업소 등에서 공짜술을 마신 조폭들이 검거됐다. 포항 S파 조직원 P씨(43)와 의성 H회 조직원 K씨(39) 등 36명의 조폭이 그들이다.

이들은 포항의 한 유흥업소 업주에게 빌려준 돈을 갚으라며 감금한 뒤 폭행하는가 하면 유흥업소를 돌며 업주들을 협박해 1100만원 상당의 공짜술을 마셨다. 또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의성 유흥주점 업주들을 협박해 21차례에 걸쳐 3300만원을 뜯어내고 협조하지 않는 업주들에게는 집단폭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조폭들은 눈앞에 돈벌이가 있다면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체면도 벗어던진 이들의 돈벌이는 깊어가는 불황과 함께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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