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노리고 모녀 살해한 40대, 2년전 부모 살해 들통
일가족 짜고 가출소녀 성매매업소 팔아넘긴 사건도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야 할 연말,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흉악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이라며 혀를 차게 만드는 강력범죄들이 드러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싸늘한 겨울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최근 벌어지는 엽기범행들을 보면 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범행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피붙이도 예외는 아니다.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공의 적’들이 도처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연말을 우울하게 만드는 인면수심의 공공의 적들을 꼽았다.
영화 <공공의 적>에는 현실에서 존재해선 안 될 흉악범이 등장해 관객들을 경악케 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영화니까…’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인륜도 저버린 패륜범죄가 뉴스에서 보도되고 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언젠가는 나도 당할지 모를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돈 때문에 혈육을 무참히 살해한 40대 남성의 사건이 드러나 세간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장본인은 충북 옥천에 살던 김모(42·무직)씨.
김씨가 경찰에 적발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당시 그의 죄목은 모녀살해였다. 그는 이날 새벽 1시경 옥천군 옥천읍 자신의 아파트 안방에서 술에 취해 잠든 부인 백모(35)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옆에 있던 세 살배기 딸을 목 졸라 살해했다.
보험금 1억 노리고
잔인하게 모녀살해
잔인하게 처와 어린 딸을 살해한 이유로 그가 경찰에서 진술한 것은 아내의 낭비벽이었다. 경찰에서 김씨는 “4000만원이 넘는 카드빚을 진 아내가 여전히 흥청망청 낭비하는 습성을 버리지 않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 평소에도 아내의 빚 때문에 부부싸움을 자주했다는 김씨는 이날도 싸움을 하다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딸을 살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딸이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큰 소리로 울어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무참히 모녀를 살해한 김씨는 범행 8시간 후 경찰에 전화를 걸어 “외출 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와 딸이 흉기에 찔려 숨져 있었다”고 태연히 신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로 그의 범행은 낱낱이 밝혀졌다. 조사결과 그는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자신의 말과는 달리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살해계획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1주일 전 범행에 쓸 흉기를 미리 준비해 집안에 숨겨뒀다. 또 범행과정에서 아내가 반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수면제를 탄 커피와 술을 먹이는 치밀함도 보였다. 범행일 전에도 수차례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잠드는 시간 등을 체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범행 뒤에는 흉기를 땅에 묻고 피가 묻은 옷가지를 불태우는 등 증거를 없앤 뒤 처남과 선배를 불러내 술을 마셔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그가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아내를 살해한 이유는 ‘돈’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달 부인명의로 생명보험을 가입하면서 보험금 1억원의 수령인을 본인으로 해 놓은 것이 범행의 목적을 암시한 것.
그러나 그의 죄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미 2년 전 돈 때문에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전적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옥천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김씨가 ‘2년 전 부모 집에 몰래 들어가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러 잠자던 부모를 숨지게 했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6년 6월10일 새벽 1시경 옥천군 옥천읍 소재 부모님의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가 거실 등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이 불로 안방에서 잠자던 김씨의 아버지(당시 85세)와 어머니(당시 75세)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소방관에게 구조돼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이틀 만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를 살해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숨진 부인과 결혼하기 전 모아뒀던 1억6000여만원을 소주방, 다방 등의 사업에 투자해 날린 김씨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부모님의 집이 욕심이 났다.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부모님의 집을 팔려면 부모님을 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그는 결국 집에 불을 질러 목적을 달성한 것.
부모를 살해했을 때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 2개월 전 휘발유를 구입해 승용차에 싣고 다니며 범행시기를 노렸다. 또 부모의 집에 들어가기 쉽게 주방 뒷문의 잠금장치를 몰래 풀어놓고 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사건이 벌어진 뒤 이웃 주민들의 진술로 김씨는 잠시 방화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부인이 “집에 같이 있었다”고 증언해 혐의를 벗었다. 결국 이 사건은 노인의 동반자살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그는 경찰에서 “허리통증으로 수술까지 받았던 어머니의 고생이 컸다”고 진술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뉘앙스를 풍겨 자살을 위해 노부부가 스스로 불을 질렀다는 추리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완전범죄로 끝날 뻔했던 살인사건은 결국 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처자식을 살해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모든 것이 밝혀진 뒤 김씨는 “부모님을 죽인 것이 너무 후회된다”며 뒤늦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2일 3년에 걸쳐 저지른 자신의 패륜행각을 재연하는 현장검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보는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영화보다 끔찍한 김씨의 행각이 잊혀지기도 전 또 하나의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른바 ‘가족 인신매매단’ 사건이다. 말 그대로 일가족이 힘을 합쳐 가출소녀들을 성매매업소에 팔아넘긴 믿지 못할 사건이 벌어진 것.
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 1일, 가출 청소년을 유인해 티켓다방 등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긴 혐의(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이모(45·여)씨 등 일가족 4명과 이들로부터 청소년을 넘겨받아 성매매를 강요한 업주 9명 등 13명을 구속했다.
부모도 돈벌이의 대상
유산 일찍 받으려 살해
이씨는 자신의 아들, 동생 등과 함께 가출소녀들을 팔아 넘겨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짰다. 역할분담도 철저히 했다. 아들(25)이 친구들과 함께 가출한 청소년들을 유인하면 이씨는 자신의 여동생(38)과 함께 청소년들을 팔아넘길 성매매 업주들을 물색했다.
이들은 경북 경산역과 대구역, 거제도 여객부두 등지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취직시켜 주겠다며 유인했다. 집을 나와 생계가 막막했던 청소년들은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이들의 말에 혹했다. 이들을 따라나선 소녀들은 모두 18명.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티켓다방 등 성매매업소의 업주들이었다. 이씨 일당은 업주들에게 1인당 400만원을 받고 경남 사천과 통영, 전남 목포 등의 업소에 소녀들을 팔아 넘겼다.
남성들에게 성을 팔게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소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매매를 해야 했다. 이들은 모텔 등에서 감금생활을 하며 낯선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화대를 챙긴 것도 아니다. 업주들은 지각비, 결근비 등의 명목으로 벌금을 매겨 화대를 뜯은 것은 물론 1인당 수백만원의 빚까지 떠안게 만들었다.
성매매를 한 소녀들 가운데 A양(15)은 임신을 한 몸으로 성매매를 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이씨 일당의 말에 혹해 경북 한 소도시의 티켓다방에 팔려간 A양은 모텔에 갇혀 하루에도 몇 명의 남성과 성매매를 했다. 심지어 성매매를 하는 과정에서 임신을 하고도 5개월가량 성매매를 강요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양은 배가 불러오자 경남 통영의 다른 업소로 팔려간 뒤 낙태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다시 손님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1년 동안 경북 김천과 전남 광주, 경남 사천, 통영, 거제 등의 티켓다방에 팔려간 A양은 현재 부산의 한 여성인권센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매매를 하는 동안 이씨 일당은 소녀들을 업소에 팔아넘기고 받은 돈과 직접 티켓다방을 운영해 벌어들인 돈으로 한 달에 수천만원의 이득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가 하면 이국땅에서 온 여성들을 속여 성매매를 강요하고 화대를 챙긴 일당도 적발돼 씁쓸함을 더했다. 김모(36)씨 등 일당은 “한국남자와 결혼시켜 주겠다”고 속여 러시아 여성들을 모은 뒤 취업 비자 등 서류를 꾸며 한국으로 데려왔다.
이들은 귀국과 동시에 본색을 드러냈다. 용산구 이태원동에 감금하다시피 합숙을 시키고 성매매를 강요한 것. 이씨 일당은 인터넷사이트에 ‘조건 만남 러시아 여성’이라는 광고를 올린 후, 이를 보고 연락한 남성에게 여성을 보내고 성매매를 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일당은 2006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러시아 여성 20여명을 1회당 15만~20만원씩에 성매매 시킨 뒤 화대를 챙겼다. 지난 6월 한국에 온 한 여성은 5개월여 동안 무려 300여 차례나 성매매를 했다. 이들이 수년 동안 챙긴 부당이득은 경찰추산으로 무려 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힘없는 장애인을 이용해 돈을 챙긴 장애인협회 간부 등이 적발돼 충격을 줬다. 장애인 명의로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아 웃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
장애인, 노점상 등
힘없는 이들 등쳐먹어
경기도 용인경찰서는 지난 3일 모장애인협회 전 이천지회장 전모(56)씨 등 협회 간부 4명과 건설사 분양담당자 박모(36)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부동산 브로커 김모(40)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브로커 김씨는 2006년 4월 한 건설사가 시공한 김포 장기지구 아파트의 무주택 영세장애인 특별공급분 24가구를 빼돌려 공인중개사 김씨 등에게 가구당 2500만~2300만원씩 모두 1억5000만원의 웃돈을 받고 판 혐의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전씨 등 장애인협회 간부들에게 1200만원을 주고 분양관련서류를 빼낸 뒤 장애인들의 명의로 아파트를 공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파렴치한 범행은 24명의 장애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등쳐 돈벌이를 한 사건은 또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점상들을 협박해 수억원을 갈취한 것. 더군다나 범인은 노점상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전국노점상총연합 광성지부 간부 박모(40)씨 등이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노점상들에게 자릿세 명목으로 수억원을 갈취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로 박씨(40)를 구속하고 회원 이모(59)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 등은 2006년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광진구 일대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신모(32)씨 등 9명에게 “자릿세를 내지 않으면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협박하는 등의 수법으로 모두 2억4000여 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전노련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박씨는 물론 전노련 회원 누구도 협박을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실 속에 존재하는 공공의 적들은 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러 충격을 던졌다. 소외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는 연말의 의미가 인면수심의 범죄자들로 인해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울한 세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