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귀족계에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있다?’
사회 부유층 계모임 ‘다복회’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고 있는 가운데 계주 윤모씨 외 핵심 배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다복회를 실질적으로 쥐락펴락한 ‘제2, 제3의 계주’가 있다는 계원들의 진술이 쏟아지고 있는 것. 윤씨를 든든히 받쳐준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을 모으면 다복회 운영에 막후 역할을 해온 인물로 2∼3명이 지목된다. 경찰도 같은 이유로 이미 잠적한 2∼3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과연 다복회를 움직인 ‘실세’들은 누구일까.
다복회 멤버들의 실체는 아직 미스터리다. 특히 계주들 사이에서 계주인 윤모씨 외에 다복회를 실질적으로 쥐락펴락한 ‘제2, 제3의 계주’가 있다는 진술이 쏟아지면서 핵심 배후가 또 다른 사안으로 떠오른 형국이다. 경찰도 도피 중인 공범들의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윤씨 단독 범행으로 보이엔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다복회 중심엔 윤씨가 있다. 경찰은 지난 14일 윤씨를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1990년대 후반 인테리어 업종에 종사하다 2000년 초반 패션의류 업종으로 전업했다.
여가수 남편 A씨 주목
이후 강남에 W음식점을 연 윤씨는 2002년 6월 고향친구 등 13명으로 계금 3000여만원의 계모임을 결성·운영한 뒤 점차 계 규모를 늘려가다 2004년 5월부터 계명을 ‘다복회’라 짓고 회원 100여명에 10개의 계를 만들어 번호계, 낙찰계 등의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윤씨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낙찰계와 번호계에 가입하면 많은 이익이 있고 이만한 돈벌이가 없다”, “일반 사업하는 것보다 10배의 이익이 있다”, “낙찰금을 받을 시 이를 빌려주면 4부 이자를 지급하겠다”라며 계원들을 모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식으로 윤씨는 현재까지 120여개의 계를 운영해오면서 계원 300여명으로부터 한 구좌당 250∼2500만원씩 계 불입금을 징수했다. 이렇게 모인 총 계금은 2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유층 연루 사실에 대해 “다복회 계원들이 많고, 대부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가입했기 때문에 계원들의 신분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또 다른 타깃은 윤씨를 도와 다복회를 꾸린 박모씨다. 경찰은 박씨가 계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계주 대행으로 계원들의 불입금 수신 및 관리를 총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씨는 “다복회 결성 시점인 2002년부터 최근까지 박씨와 함께 다복회를 운영했다. 나는 계원들의 가입을 맡고 박씨가 자금 관리를 총괄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잠적한 박씨는 다복회의 구성원과 운영방식, 채권채무 등을 담은 다복회 관련 일체 장부와 서류를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계원은 “윤씨가 착복한 수천억원의 계 불입금 중 상당부분이 귀신같이 없어졌다”며 “계원들은 이 돈의 출처와 행방을 찾기 위해 혈안인데 대부분 박씨가 뒤로 빼돌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복회 피해자들은 윤씨와 박씨의 배후 인물들도 주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A씨의 행각이 도마에 오른 상태. 유명 여가수의 남편으로 알려진 A씨는 다복회 핵심 연루자로 지목되고 있다. 100억원대 땅부자로 알려진 이 가수는 연예인들을 다복회에 끌어들였다가 문제가 터지자 쌈짓돈으로 곗돈을 갚아줬다는 후문이다.
A씨는 경찰에 체포 직전 윤씨를 납치·감금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돈을 받지 못한 다복회 회원 2명과 이들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으로부터 지난 11월2일 경기도 양평에 있는 계원의 별장에 납치·감금됐었다”며 “계 운영권을 넘겨주고 빚을 갚겠다는 공증을 해주고서야 3일만에 풀려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더구나 윤씨는 납치 당시 이들에게 다복회 관련 장부도 빼앗긴 것으로 알려졌다. 계원들은 2006년까지 서울 역삼동 모 호텔 룸살롱을 운영한 A씨가 강남을 주활동 무대로 한 조직폭력배라고 입을 모은다.
한 계원은 “A씨는 현재 사채업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복회 초기부터 지금까지 윤씨와 박씨의 뒤를 봐줬다”며 “윤씨가 계 운영이 어려워지자 사채를 이용한 것도 A씨를 통해 모두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계원도 “윤씨는 항상 조폭들을 대동했는데 A씨의 수하로 알고 있다”며 “윤씨가 이들을 통해 사채시장에 돈을 돌렸기 때문에 사라진 돈의 행방도 A씨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멤버들 신원 밝혀지나
A씨와 함께 또 다른 배후로 개인 사업가인 B씨도 거론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대형음식점을 운영하다 최근 폐업한 B씨는 다복회 창립 멤버로 2002년 윤씨가 계를 운영하던 초기 수십억원의 자본금을 대준 것으로 전해진다. 다복회 계원들로 구성된 ‘피해자대책위원회’가 집계한 피해 현황엔 B씨의 피해 사실도 기재돼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윤씨와 박씨 등 몇몇 인물로는 절대로 수천억원대의 돈을 관리할 수도 없고 빼돌릴 수도 없다”며 “조폭, 사채업자 등 배후에서 다복회를 움직인 다수의 사람들의 공조로 수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다복회 계원들의 신원엔 관심이 없다. 수사는 ‘민사불간섭’원칙에 따라 윤씨 등 계주의 사기·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제2, 제3의 계주’들의 실체가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번 강남 귀족계 사건의 전모도 전면 재구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