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다. 영업사원들의 인센티브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검은 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돈은 병의원에 리베이트로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성실한 납세와 각종 사회환원사업을 통해 ‘클린 이미지’로 굳어진 유한양행이 비자금 파문에 휩싸여 충격을 더한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이 비자금을 조성해 병의원에 리베이트로 제공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업사원들의 상여금 등 인센티브를 빼돌려 거래처인 병의원에 전달했다는 것. <KBS>는 최근 유한양행 전 임원과 내부 영업사원의 폭로를 토대로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직원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올해 초부터 영업사원 8백여명에게 개인 영업실적에 따라 매월 1백∼4백만원의 특별상여금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지점은 지급하기로 한 상여금을 영업사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이 상여금은 한 통장으로 이체된 뒤 비자금으로 일괄 관리, 병의원에 리베이트 명목으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상여금 착취?
업계는 유한양행이 이런 수법으로 매월 40억∼50억원씩 1년간 5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앞서 올초 신제품 출시 이후 영업 과정에서 처방금액의 최대 1백%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병의원에 제공하고 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유한양행 측은 비자금이 아닌 영업비로 활용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 지점이 영업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원들의 성과급을 영업비로 사용한 것이지 본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거나 관리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 1월부터 지급한 특별성과급은 이같은 문제가 불거져 지난 6월 자체적으로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회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것을 안다. 그만큼 이번 일을 발판 삼아 개선점을 점검하는 등 클린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한양행이 리베이트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유한양행은 리베이트 제공을 통한 부당고객유인행위로 적발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10개 제약사의 이같은 위법행위를 적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백99억6천8백만원을 부과했다. 당시 유한양행은 21억1천9백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유한양행은 의료관련 학회의 세미나를 불법 지원하거나 현금·상품권 등 뇌물 제공, 골프접대 등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부터 2006년 9월까지 2천2백50개 병·의원에 항균제와 비염치료제, 당뇨병치료제 등의 신규진입(랜딩)과 처방 대가로 현금과 상품권, 의료기기 등을 뿌린 것.
2004년 모 병원에 자사제품 처방을 조건으로 1억5천만원 상당의 의료기기를 제공하는가 하면 한 병원 내분비내과 소속 의사에게 2백만원의 골프경비를 지원하는 등 2005년부터 2006년까지 5차례에 걸쳐 골프와 식사를 접대했다. ‘시판 후 조사(PMS)’를 빙자해 건당 3∼5만원 사례비도 지원했다. 모 대학병원 피부과 교수 7명이 참석하는 세미나엔 현금 60만원씩 지급했고, 미국 학회에 참여하는 의사 8명의 항공료, 숙박비 등 5천만원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유한양행의 비자금을 통한 리베이트 파문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유한양행의 비자금 조성 서류 등을 입수, 사건을 서울 남부지검 특수부에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업계 전체가 노심초사인 이유다. 검찰의 수사가 자칫 대형제약사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일부 제약업체는 ‘리베이트 후폭풍’을 우려해 영업사원들에 대한 입단속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유한양행 파문이 내부고발로 촉발된 탓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유한양행 수사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현 직원들뿐만 아니라 회사에 불만을 가진 전직 영업사원의 근황까지 살피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고 귀띔했다.
사실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약업계는 지난해 말 공정위의 리베이트 적발 이후 CP(공정거래자율경쟁프로그램)를 도입, 리베이트 근절 등 자성의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리베이트 관행은 끊이지 않았다. 이성남(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공정위 국감에서 공정위 적발 뒤에도 제약업체들이 종합병원에 1백억원을 제공하는 등 리베이트가 여전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리베이트 관행 여전
최영희(민주당) 의원도 지난 21일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관련 보험약 실거래가 조사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조사대상 1백2개 가운데 40개 기관에서 할인, 할증 등 실거래가 위반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병의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 10곳 중 4곳이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고 의약품을 거래한 셈이다. 이중 공정위 조사대상 제약사와 불법거래를 한 곳은 모두 7개 기관으로 유한양행 3곳(할인), 중외제약 2곳(할인), 국제약품 2곳(할증) 등이었다.
최 의원은 “제약사는 병의원엔 골프, 식사, 해외여행, 주유권 제공 등 처방과 관련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반면 약국에 대해선 대금결제시 할인, 할증 등으로 보상을 해줬다”며 “리베이트 신고포상제 도입 등 강력한 정책과 처분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제약업계의 리베이트는 신약개발 등 공공부분에 사용할 기업이윤을 로비 등 비생산적인 부분에 낭비하는 것과 같다. 이는 결국 의약품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유한양행 사태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뿌리 뽑힐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