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쇼’로 끝난 1백 시간 ‘깜짝쇼’
‘대물’을 타깃으로 포스코와 GS그룹 간 맺었던 동맹이 깨졌다. 두 회사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지난 9일 극비리에 손을 잡으면서 깜짝쇼를 연출하더니 얼마 못 가 입찰 마감 당일인 13일 전격 파경을 선언했다. GS그룹이 인수전 막판에 발을 뺀 것. 연합에서 결별까지 불과 4일이 걸린 셈이다. 긴박하게 전개됐던 이들의 만남과 이별 뒷얘기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해봤다.
9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입찰 4일 전인 이날 깜짝쇼가 연출됐다. 한화그룹, 현대중공업그룹과 4파전을 벌이던 포스코와 GS그룹이 전격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 두 회사가 매각공고를 기점인 지난 8월초부터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한 결과였다.
이 시점을 전후해 이동희 포스코 부사장과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향후 경영권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물론 물밑작업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인수팀 직원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만 진행상황을 보고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과 허 회장이 지난 7일 컨소시엄 구성에 최종 사인을 하면서 2개월여를 끌던 협상은 마무리됐다. 양사는 “양측이 동시에 제안했다”고 강조했지만, 포스코와 GS그룹 중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았다.
10일 오전.
양사의 컨소시엄 구성 공식 발표가 있었다. 포스코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이사회를 열어 대우조선 인수를 위해 GS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GS그룹은 앞서 9일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을 통과시켰다.
양사는 떠들썩했다. 두 회사 안팎에선 ‘따 놓은 당상’이란 말까지 나왔다.
언론도 포스코-GS그룹 컨소시엄이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인수전을 진두지휘한 양사 경영진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좋은 파트너”라고 서로를 치켜세웠다.
두 회사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해 외자유치를 확대하고 조선과 철강·에너지 산업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손잡았다”고 연합 배경을 설명했다.
11일 오전.
두 회사 실무진들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최종 인수가 막판 조율을 위해서였다. 통상 M&A 컨소시엄 구성시 노출 등을 우려해 가격 협상은 맨 나중에 논의한다.
이때부터 불협화음이 나기 시작했다. 양측이 제시한 가격에 큰 차이가 있었다. 포스코는 높은 금액을, GS그룹은 적정한 금액을 주장했다.
포스코의 자금력은 후보군 어디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막강했다. 반면 GS그룹의 주머니 사정은 포스코에 비해 녹록치 않은 게 사실. 포스코는 “얼마가 들든지 인수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GS그룹은 “비싸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12일 오후.
양측의 실무진간 마라톤 회의가 계속됐다. 많은 대화를 했지만 상당한 가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경영권이나 자금조달 등 다른 부분에선 합의가 됐고, 입찰가격만 남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렇게 입찰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포스코와 GS그룹 인수팀 실무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꼬박 밤을 새웠다.
13일 오전.
입찰 마감 당일까지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이 회장과 허 회장이 협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정대로라면 환담을 나눠야 할 자리였다.
그러나 두 회장의 회동도 벽을 허물지 못했다. 이 회장과 허 회장도 인수가에 대해 “높이자”, “낮추자”라고 맞섰다.
사령탑 간 담판은 1시간 넘게 이어져 오후 1시를 넘겼다. 결국 이 회장과 허 회장은 아무런 성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찰 마감이 2시간 남짓 남았을 때다.
전격 연합전선 구축 선언 “따 놓은 당상”떠들썩
4일 뒤 “없었던 일로”…인수금액 막판조율 실패
13일 오후.
등 돌린 두 회사는 각기 다른 쪽을 향했다. 포스코는 오후 3시 마감시간에 임박해 그대로 포스코-GS 컨소시엄 명의로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에 입찰 제안서를 접수했다. 같은 시간 GS그룹은 긴급이사회를 열고 컨소시엄 참여 여부를 저울질했다. 이날 오후 6시 GS그룹은 이사회 결정을 밝혔다.
“양사 간 입장 차이로 대우조선 매각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포스코가 입찰서를 제출한지 3시간 만에 인수전을 포기한 것이다. GS그룹은 포스코에도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컨소시엄 결렬 이후 양사의 분위기는 엇갈렸다. 포스코 측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불만을 쏟아냈고, GS그룹은 “그럴 만했다”고 서운한 반응을 보였다. 두 회사는 모두 ‘4일 풋사랑’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지난 16일 산업은행의 제안서 무효 처리 결정이 내려진 포스코는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다. 반면 한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잔칫집’ 표정이 역력하다. 이를 바라보는 GS그룹은 씁쓸하기만 하다.
GS그룹 ‘M&A 굴욕’
준비만 하다 ‘날 샐라’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로 GS그룹의 인수합병(M&A) 굴욕이 이어지고 있다.
GS그룹은 2년 전부터 대우조선 인수를 준비해 왔다. 대우조선 전담 M&A TFT를 구성하고 M&A전문가를 영입했다.
허창수 회장도 수차례 인수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그는 “그룹이 도약할 수 있는 매물이 있다면 언제든지 M&A에 뛰어들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그룹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인수전 막판에 포기를 선언, 대외적으로 이미지와 신뢰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뿐만 아니다. GS그룹은 그동안 굵직한 M&A에 뛰어들었다가 번번히 실패했다.
하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유진기업보다 높은 금액을 써 놓고도 고배를 마셨다.
그룹 출범 직후인 2005년엔 인천정유(현 SK인천정유) 인수전에 나섰으나 SK에너지에 무릎을 꿇었다.
올해 초 대한통운 인수를 검토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